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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통계를 보면 북한의 11.1%에 해당하는 113만 명의 인구가 전쟁을 통하여 사망하였고,
양측을 합하여 250만 명이 사망하였다.
80%의 산업시설과 공공시설과 교통시설이 파괴되었고,
정부 건물의 4분의 3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으며 가옥의 절반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다.
3년 1개월에 걸친 한국 전쟁은 한반도 전체를 폐허가 됐고,
참전한 외국의 병력에까지 극심한 해를 입었다.
그 밖에도 약 20만 명의 전쟁미망인과 10여만 명이 넘는 전쟁고아를 만들었으며
1천여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victerkim 



약 400여구의 시체가 대전 교도소에서 발견되었다. 

북한군이 후퇴하면서 교도소에 수감했던 국군포로, 민간등을 모두 학살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무덤을 직접 팠다. 왼쪽의 사람은 종군 기자다. .

 

1950년 10월 금봉산의 공산에서 발견된 60여구의 민간인 시체. 이들은 북한군에 의해 타살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인명피해       

민  간  인

군    인

경    찰

합    계

991,068명

988,920명

16,816명

1,996,804명

 

    ◆ 군      인

구      분

국    군

UN 군

북 한 군

중 공 군

사      망

147,039명

  35,737명

520,000명

900,000명

부      상

709,975명

115,068명

406,000명

-

실      종

131,907명

   1,554명

-

-

총      계

988,920명

152,359명

926,000명

900,000명

 

     ◆ 재산피해

학교 및 주요건물

사찰 및 교회

대.소도시

촌락 (읍, 면)

22,437개소

5,236개소

50개소

5,400개소

 

출처 - 네이버 지식in

 

미군과 영국군, 그리고 우리 국군들의 시신. 합동 매장을 위해 시체를 모아두었다. 장소는 북한 지역 고토리.
12월 8일






 

11.  How a man died on the way to Maeson Dong.

September 2, 1950. Sgt. Turnbull. (Army)

전사자 모습 

20.  A small South Korean child sits alone in the street,

after elements of the 1st Marine Div. and South Korean Marines invaded the city of Inchon,

in an offensive launched against the North Korean forces in that area.

September 16, 1950. Pfc. Ronald L. Hancock. (Army)

어린 소녀가 길가에 앉아 울고 있다.

29.  A Korean family mourns their murdered father, victim of the

wholesale murder at Chonju by North Koreans.

September 27, 1950. M. Sgt. E. T. Tarr. (Army)

북한군에 의해 대량 학살된 시신 옆에서 오열하고 있는 한국인 

47.  A wounded chaplain reads a memorial service over

the snow-covered bodies of dead Marines. Koto-ri, Korea.

December 3, 1950. Cpl. W. T. Wolfe. (Marine Corps)

부상당한 목사님이 전사한 해병들을 위해 추도식을 거행하고 있다.

32.  Scene of war damage in residential section of Seoul, Korea.

The capitol building can be seen in the background (right).

October 18, 1950. Sfc. Cecil Riley. (Army)

 서울의 주거지의 파괴된 모습. 멀리 중앙청이 보인다. 

40.  An aged Korean woman pauses in her search for salvageable

materials among the ruins of Seoul, Korea.

November 1, 1950. Capt. C. W. Huff. (Army)

폐허가된 서울에서 할머니가 쓸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 

41.  Korean women and children search the rubble of Seoul for

anything that can be used or burned as fuel.

November 1, 1950. Capt. F. L. Scheiber. (Army)

아주머니와 아이들이 땔감을 찾고 있다


44.  Homeless, this brother and sister search empty cans for morsels of food,

and try to keep warm beside a small fire in the Seoul, Korea, railroad yards.

November 17, 1950. Pfc. Fulton. (Army)

아이들이 먹을 것을 찾고 있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작은불 옆에 있다. 


[운영자 칼럼]  우리를 감동시킨 전쟁고아 아버지들

 

 6월이 오면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사람들이 많다.

6.25 전란을 겪으며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고통 받은 사람들이다. 

그 많은 비극의 주인공 가운데 전쟁고아 만큼 슬픈 추억을 지닌 사람들이 어디 있으랴 !

 

   6.25 전란으로 약 10만 여명의 전쟁고아가 생겼다는 기록이다.

포화 속에 버려진 이 많은 어린이들을 돌본 세 분의 전쟁고아 아버지 얘기가 우리를 감동시킨다.

 

  한국민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첫번 째 감동의 주인공은 한국전쟁 영화 '전송가'의  딘 헤스 대령이다.

이제 고인이 된 할리우드 스타 록 허드손이 주연을 맡아 1956년에 제작된 영화가 '전송가'다.

딘 헤스 대령은 1950년 7월 초부터 이듬해 5월말까지 약 11개월 동안 250여 회 출격한 한국전쟁의 영웅이다.

그의 전투기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친히 써 준'신념의 조인(鳥人)'이 새겨져 있었다.

헤스 대령은 1.4 후퇴 당시 브레이즈델 목사가 보호 중이던 907명의 전쟁고아를 김포공항을 통해 제주도로 공수하는 작전을 수행했고, 일본에서 비행기로 식량을 공수해 이들을 보살폈다.

 

  1999년 83세의 헤스 대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전쟁고아들을 위해 헌신한 구순의 황은순 여사(영화 전송가에서 순이역으로 나온 실제 주인공, 휘경여고 창립자,작고)와 60대 초로의 전쟁고아 출신들이 감격의 해후를 한 장면이 보도되어 전 국민을 감동시켰다.

한국 공군 창설과 육성에도 공을 세워 대한민국 무공훈장을 받았다.

  대구 공군부대 헤스 대령 기념비

<대구 공군부대의 조촐한 헤스 대령 기념비>

 

 2006년 8월 8일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재단 사무실에서 피부색이 다른 두 노인이 얼싸안고 발을 동동 굴렀다.

당시 76세의 조지 F 드레이크 박사와 63세의 조우연씨다.

 

  조씨가 6.25 전쟁 중 동생 둘과 장충동 고아원에서 고생할 때 드레이크 병사를 만났다.

1952년 통신병으로 한국에 파병된 드레이크씨는 6살 짜리 어린 여자 아이가 2살 짜리 동생을 등에 업고 음식을 구걸하는 모습을 봤다. 굶주리고 피부병으로 뒤덮혀 있는 어린이들을 데려다가 씻기고 먹였다. 
아이들은
일주일 만에 건강해져 그를 보고 활짝 웃었다. 

 

  드레이크씨는 부대원들로부터 성금을 모아 수백명 고아를 직접 돌보는 한편 한국의 전쟁고아를 도와 달라는 편지를 미국 시민들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군 복무 틈틈히 6개월 동안 1000여 통 이상의 서신을 썼다고 회고했다. 

미국 시민들로부터 200여 만달러를 받아 고아들을 돌보았던 그는 제대한 후에도 20여톤의 각종 물품을 한국 고아원으로 보냈다.

 

  드레이크 박사는 2006년 8월 14일부터 3일 동안 광주시청에서 6.25 전쟁 중 전쟁고아들을 직접 촬영한 사진 등 2000여점의 전쟁고아 돌보미 자료를 전시했다.

 이 때 박광태 광주시장은 드레이크 박사에게 명예 광주시민증을 수여했다.

  <박광태 광주시장이 시민증 수여>

<명예 광주시민증을 받고 있는 드레이크 박사>

    대다수 한국민들이 1000여 명의 전쟁고아를 수송한 주인공은 헤스대령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영화 '전송가'의 실제 주인공은 고(故)러셀 브레이즈델 목사다.

  이 역시 감동의 드라마다.

 

 브레이즈델 목사는 6.25 전쟁 발발 직후 미 제5공군사령부 군목(중령)으로 배속됐다.

그는 당시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아이들은 병에 시달리고 해충으로 뒤덮혀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죽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고 회고록에 썼다.

그와 미군, 자원봉사자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고아들을 돌보는데 몰두했다. 하루에 50여명 이상의 고아들을 사회복지시설로 데려간 날도 있었다.

  그 해 11월 중공군 참전에 따라 피란행열로 뒤덮혔을 때 브레이즈델 군목은 후방으로 떠나는 군 부대 차량 등에 고아들을 실어 보냈지만 서울엔 여전히 1000여명의 고아들이 남아 있었다.

그는 이 고아들을 인천으로 옮겼으나 해양수송이 불가능,  다시 김포로 이동 시키는 등 초인적인 노력을 기우렸.다.  적군이 서울에 들이닥치기 직전인 12월 20일,  그는 극적으로 미 공군의 작전책임자를 만나 제주도로 향하는 C-54 수송기 16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전쟁고아들의 성공적인 수송작전은 브레이즈델 군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브레이즈델 군목(우측 아래)이 비행기에서 아이들을 안아 내리고 있다>

 -광주 충현원 소장 사진-

  이와같은 브레이즈델 군목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영화 '전송가' 개봉이후 헤스대령만이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유명해졌다.  브레이즈델 군목은 이에 대해 말이 없었다.  영화 수익금이 고아 돌보는데 쓰여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 해 초 자신의 회고록 '전란과 아이들, 그 일천 명의 아버지'가  나오면 그 판권을 옛 고아원 체험시설을 복원하는 광주 충현원에 주도록 유언을 남긴뒤 97세의 나이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숨졌다.  

 

  한국의 '쉰들러 리스트'인 브레이즈델 목사의 아들 카터 브레이즈델(72)씨가 얼마전 한국을 찾았다. 

지난 5월 1일 광주 충현원에서 열린 고 러셀 브레이즈델 목사의 추모식과 회고록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

그는  "하나의 좋은 행동은 또 다른 좋은 행동을 낳는다.  옳다고 생각하면 누가 뭐라던 그 일을 하라"는 아버지의 회고록 내용도 공개했다.

 

   우리에게 감동을 준 세 분의 전쟁고아 아버지들은 소리없이 한국민들에게 충고한다.

 한국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한만큼 '입양 후진국'이란 불명예를 씻고, 전 세계 분쟁국가에서 제2, 제3의 한국인 '전쟁고아 아버지'가 나와야 한다고-.

 



비목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산 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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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목의 작가 한명희는
1939년에 태어난 충북 중원에서 태어났다.
6·25전투가 치열했던
강원도 화천에서 군 생활을 하였다.

이후 작곡가 장길남의 요청으로
비목은 작곡가와 작사가의 마음의 일치가
아픔을 함께 나눈
우리나라의 대표 가곡이 되었다.

작가 한명희는 군 생활 중
남북한 군의 치열했던 격전지 능선에서
개머리판은 거의 썩어가고
총열만 남아있는
카빈총 한 자루를 주워 왔다.

깨끗이 손질하여 옆에 두곤
그 주인공에 대하여 가없이 죽어간 이들의 아픔을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그들을 향한 공상을 한없이 이어갔다고 한다.

죽이고 죽는 산은 피로 물들었고
총에 맞아 죽어가는 동료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면서
그 동료를 방패로 앞에 두고
싸워야 하는 기막힌 전쟁 상황!
이들에게 무덤은 오히려 사치였다.

사회도 모르는 젊은 나이에...
이들은 그렇게 죽어갔다.

세상도 나가보지 못한 이들의 죽음은
부모 형제 동생들의 가슴에 남아
평생을 울면서 살아왔다.
그 고통을 이기고 이기며 살아온 60여년의 세월!

이 시대에 우리나라는 세계정상에 섰다.
하지만 이들의 피눈물을 얼마나 알며 이들의 고통은
어디에서 보상받나?

우리는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세계 속에 우리를 우뚝 세워 피워보지도 못하고 죽어간
저들의 고통을 잊게 해드리자.

- 소 천 -



유월의 이땅에 산하!
젊음을 불사르는 한 많은 이들의 유월에 산하
그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 많은 긴밤을 오열하고 있다.

- 그대가 있어 오늘 우리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