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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세계 3대 박물관 에르미타주, 300만점 다 보려면 5년 걸려
 





세계 3대 박물관 에르미타주, 300만점 다 보려면 5년 걸려



오랜 역사를 자랑하듯 러시아 상트페테부르크에는 아름다운 세계 명작과 유명 건축물이



존재한다.



램브란트,고갱의 작품부터 에르미타주 박물관, 레닌그란드 교향곡까지 보유한 이 곳은





그야말로 예술의 향연이다.


  • 박현주 피아니스트·엔터엠 대표 
  • 편집=오현주

[HUMANITIES]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영국 대영 박물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이코노미조선

‘성(聖)표트르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는 1703년에 시작된다. 원래는 스웨덴이 점령한 곳으로 니엔(Nyen)이라 불렸다. 1862년 차르로 등극한 표트르 대제는 서유럽과 교역할 수 있는 해상로 확보에 러시아의 사활이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에 이 지역은 꼭 필요했다.

마침내 스웨덴과 대북방 전쟁(Great Nor-thern War·1703)을 벌여 승리했고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를 건설하며 새로운 도시의 시작을 알렸다.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 이름은 표트르 대제를 기념하며 붙인 것 같지만 사실은 서구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그의 개혁정책이 담겨있다. 우선 상트(Sankt)는 유럽 문화의 뿌리가 되는 라틴어로 성자를, 페테르(Peter)는 네덜란드어로 ‘베드로’를 뜻한다. 부르크(burg)는 독일어로 ‘도시’를 의미한다. 페테르는 본래 그리스어로 ‘돌·반석’이라는 뜻이다. 18세기 당시 유럽 도시 대부분이 돌로 만든 석조 도시였으므로 나무 중심의 목조 도시였던 러시아를 석조 도시로 바꾸고 싶었던 대제의 염원도 담겨있다.

페테르부르크는 운하의 아름다운 곡선이 매력적인 인공도시다. 이 인공도시를 만드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우선 러시아 전역에서 돌을 구해 날라 늪을 메웠고 여러 곳의 물길을 모이게 해서 인공적으로 운하를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약 3만명의 희생도 뒤따랐다. 마침내 물길 따라 생긴 수많은 운하와 500여개의 다리 사이로 붉은색 화강암이 즐비한 건물들이 들어선 페테르부르크의 모습이 완성되자 1712년 표트르 대제는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이전했다.

렘브란트·고갱 등 전 세계 명작의 향연

모스크바의 중심에 붉은 광장이 있다면 페테르부르크의 중심엔 네프스키 대로가 있다. 4.5㎞ 길이의 대로는 피의 구세주 성당, 카잔성당,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비롯, 푸시킨 동상, 예카테리나 여제 동상, 러시아 국립 박물관까지 페테르부르크의 300년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다. 페테르부르크는 한마디로 차르에 의해 만들어졌고 예술가에 의해 숨 쉬는 도시다. 표트르 대제에 이어 예카테리나 2세는 페테르부르크 문화의 상징인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만들었는데, 박물관의 모태가 된 것은 러시아 차르들의 거처였던 겨울궁전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 내부. /이코노미조선

로코코 양식으로 지어진 이곳은 입구 중앙 계단부터 화려하다. 영접홀인 문장관에는 8㎏의 황금을 입혀 러시아의 부를 자랑했다. 벽면과 천장을 황금으로 입힌 ‘황금의 방’도 유명하다. 18세기 영국에서 가져온 공작새 시계, 러시아의 국장인 쌍두 독수리 문장 아래 금으로 만든 대 옥좌가 위용을 자랑하는 곳은 1812년 나폴레옹의 침공을 막아낸 영웅들의 방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정식명칭은 국립 예르미타시 미술관이다. 영국의 대영 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예카테리나 여제의 개인 컬렉션 소장을 위해 겨울궁전 옆에 ‘소(小)예르미타시’와 ‘구(舊)예르미타시’를 건설한 것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라파엘 화랑, 예르미타시 극장을 추가했고 1799년부터 1851년까지 니콜라이 황제가 신(新)예르미타시를 만들어 지금은 모두 5개의 부속 건물로 돼 있다. 이 안에 300만점이 넘는 방대한 유물이 전시돼 있어 1점당 1분씩만 관람해도 5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에르미타주의 하이라이트는 ‘회화관’이다. 렘브란트, 루벤스를 비롯해 일리야 레핀, 마티스, 샤갈, 고갱의 작품들이 너무나 많이 방치(?)돼 있어 이들이 모두 진품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그림은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다.

성경에 실린 유명한 이야기로 방탕하게 살았던 아들이 거지 꼴로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재회하는 그림이다. 아들을 받아주는 아버지의 표정이 매우 인상적인데, 깊은 체념과 고독이 묻어있다. 렘브란트가 이 작품을 그린 시기는 죽기 9년 전인 1660년으로 아버지의 표정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듯 보인다.

이 작품과 함께 흔히 연상되는 그림은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의 ‘이반 뇌제, 자신의 아들을 죽이다’이다. 아들을 죽이는 폭군의 표정에는 분노 대신 회한이, 죽어가는 아들의 얼굴에는 용서가 담겨 있다. 예카테리나 여제가 세운 페테르부르크의 황실 미술학교 출신인 레핀은 네덜란드 인상파의 대가 렘브란트를 숭배해 화가로 성장해 가는 동안 많은 영향을 받았다. 레핀의 또 다른 걸작인 ‘볼가 강의 뱃사람들’에서도 힘든 노역에 지친 뱃사람의 눈빛에는 울분 대신 강인함과 지혜가 서려 있는데, 레핀은 이 작품 하나로 러시아의 사실주의 대표 화가로 성장했다.

전쟁 중 시민 위로한 레닌그라드 교향곡

페테르부르크의 역사와 예술 다음으로 음악을 살펴볼 차례다. 페테르부르크의 또 다른 이름인 레닌그라드 교향곡을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이 곡은 러시아의 모차르트로 불리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가 1941년 작곡했다. 그 이듬해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됐다. 작곡 당시 페테르부르크는 공산당 치하였으므로 우리나라에서 쇼스타코비치의 레닌그라드 교향곡 연주는 한동안 금지됐다. 나치의 침공을 받아 포위된 도시 레닌그라드에서 이 작품을 작곡했던 그는 “잠시 쉬는 동안 화가 나서 거리에 나가면 내가 이 도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게 된다”고 했다.

쇼스타코비치의 7번째 교향곡인 레닌그라드 교향곡은 4악장으로 구성됐다. 연주시간도 무려 80분으로 대규모의 관현악 편성 또한 자랑할 만하다. 8대의 호른, 트럼펫·트롬본·튜바 각 6대씩, 2대의 하프, 60여명의 현악 연주자들도 등장한다.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의 폭압과 히틀러의 공격에 희생된 시민들을 위해 4개의 악장에 ‘전쟁’ ‘추억’ ‘조국의 광활함’ ‘승리’라는 부제를 각각 붙였다. 900일간의 전투 속에서 죽음과 맞닥뜨린 채 사투를 벌이는 레닌그라드 시민을 버티게 해 준 음악 7번 레닌그라드 교향곡은 그들에겐 위로이자 용기, 영혼의 양식이었다.

요즘 들어 쇼스타코비치의 작품들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로 알려진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도 좋지만 페테르부르크에는 역시 레닌그라드 교향곡이 제격이다.

<본 기사는 이코노미조선 185호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