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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국악과 대중이 만나는 장, 그 흥겨운 마당을 짓는 쌍둥이 자매 이예랑, 이사랑
글쓴이 tntv 등록일 [2013.03.06]



국악명문가 출신의 트로트 가수

“작년엔 정말 하루도 안 쉰 것 같아요. 축제면 축제, 콘서트, 음악회, 가야랑을 찾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 갔거든요. 그렇게 다니면서 느끼는 건 가야금은 어떤 무대에도 잘 어울린다는 거예요.”“가야금은 프리즘 같은 악기예요. 무지개처럼 각양각색의 매력을 갖고 있거든요. 그런 가야금의 모든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은 게 우리 가야랑이에요.” 이예랑, 이사랑 쌍둥이 자매로 이루어진 가야금 가수‘가야랑’. 누가 쌍둥이 아니랄까봐 죽이 척척 잘도 맞는다. 1월초까지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며 강행군을 해오다 이제야 좀 여유가 생겨 실컷 쉬며 재충전을 하고 있는 요즘이다.

가야랑은 2008년 국악과 트로트를 접목시킨 퓨전음악으로 가요계에 등장해‘신세대 트로트 가수’,‘쌍둥이 듀오’로 큰 관심을 받았다. 특히 SBS‘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해 아이돌 가수들에게 가야금을 가르쳐주며 이슈가 되기도 했다. 동시에 이예랑, 이사랑 자매의 화려한 이력에도 관심이 모였다. 언니 이예랑은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의 마지막 제자이자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예능보유자인 강정숙 선생의 이수자로서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가야금 콩쿠르에서‘최연소 대통령상’을 수상한 촉망받는 연주자다. 동생 이사랑은 서울대 인류학 석사로서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재원이 며, 성남시립 국악관현악단 상임단원을 지냈다. 어머니는 가야금 연주자이자 대학교수인 변영숙 여사이며 한양대 국악과 교수, KBS 국악대상 수상자인 이모들까지 그야말로 국악계의‘엄친딸’로 자랐다.



오해와 편견의 벽을 넘어 뛰어든 가요계

‘뭐가 부족해서 트로트를 해?’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죠. 사실 아직 전통음악계는 보수적인 면이 있고 일각에서는 가야랑은 국악의 전통을 버렸다고 말씀하세요. 하지만 가야랑이 국악을 하는 후배들에게 좋은 길을 열어줬다고 격려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요. 실제로 저희 뒤로 많은 젊은 국악인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다양한 장르의 팝뮤직과 잼을 시도하고 있고요. 이런 모습을 보면 참 뿌듯해요.”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이 깊었던 만큼, 그들 역시 쉽게 시작한 길은 아니었다. 우연한 기회에 MBC‘얼쑤 우리가락’진행을 맡아 MC로 활동하던 중정의송 작곡가의 눈에 띄어 가수 데뷔 제의를 받았지만 가야금 연주자로서의 자긍심과 전통음악에 대한 고고한 철학으로 가득 차 있었던 예랑씨의 반대는 완강했다.

그런 뒤로 2년이 지났을 때였다. 우연치 않게 정의송 작곡가가 만든 월드컵 응원가를 듣게 됐고 그를 오해해 무례하게 행동했던 과거의 일을 사죄하기 위해 정의송 작곡가를 찾아갔던 것. 그는 기다렸다며 그들에게 주려고 만들어놨던 곡을 들려줬다.“사랑이가 저한테 그랬어요. 가야금을 대중화시키려면 대중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가요가 수준이 낮다고 무시하면 가야금은 언제나 박물관 속에 갇혀 있는 음악일 뿐이라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제 자신이 음악을 하는 사람이면서 음악에 높고 낮음이 있다고 생각했었다는 걸요.”스승인 황병기 선생의 격려도 예랑씨의 결심을 도왔다. 그는 예랑씨가 가수 데뷔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우리 예랑이가 한다면 마이클잭슨 보다 낫겠다’고.

어렵게 결정한 데뷔였던 만큼 더 열심히 활동했다. 그‘열심’은 가야랑을 알리려는 것이 아니라 가야금과 국악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언니는 어딜 가나 가야금을 전도(?)해요. 대기실에서도 가야금 해본 적 있냐고 가수들에게 말을 걸어요. 가야금 해보고 싶다고 먼저 다가오는 친구들도 많고요.‘국악은 올드해’라고 말하던 아이돌 가수들이 이젠 머리 질끈 묶고, 손톱도 싹둑 자르고 가야금 배우러 와요.”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에게, 또 출연자들에게, 공연장에 찾아온 관객들에게, 만나는 사람마다 가야금을 전도하는 가야랑. 그들은 가야금으로 국악의 아름다움을 알릴 뿐만 아니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어한다. “제가 솔로곡을 연주하는데 객석에서 한 아주머니가 통곡을 하시는 거예요. 나중에 왜 우시냐고 여쭤봤더니 제 손을 꼭 잡으시면서 그 무엇도 위로해주지 못한 상처를 가야금 연주로 치유 받았다면서 고맙다고 하시는데 저도 같이 울었어요.”어디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름조차 모르지만 음악은 마음을 열게 하고 서로 소통하게 해준다.

그리고 가야랑이 전한 희망은 엄청난 에너지로 되돌아와 더 신나게 국악을 전하러 다닐 수 있게 해준다.“행사를 마치고 오면 몸이 녹아버릴 것 같이 힘들어요. 그런데도 다시 연습실에 나가요. 8시부터인데 가보면 6시 반부터 와계시고요, 레슨이 끝나고 나서도 10시, 11시까지 안 가고 계속 연습하시는 거예요. 그분들의 열정을 보면서 제가 배우는 게 더 많아요.”실패를 겪고 삶을 버리려 했던 사람, 우울증으로 3년이나 치료를 받았던 사람, 두개의 손가락으로 가야금 연주에 도전한 사람, 가야금을 통해 한 가족이 된 사람 등. 가야랑은 그들에게서 가야금이 얼마나 큰 치유의 힘을 가졌는지 깨닫는다. 그리고 전통의 또 다른 이름이 힐링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배운다.



희망과 나눔의 도구, 가야금

그동안 가야랑은 크고 작은 무대에서 가야금을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 국가 귀빈들이 내한했을 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뮤지션으로 공연을 하기도 했고, 터키에서‘코리안 페스티벌’이라는 제목으로 흑해 연안을 투어하는 단독콘서트를 하기도 했다. 특히 해외공연에서 가야랑은 한류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나이, 성별, 국적과 언어의 벽을 넘어 음악으로 소통하고 한국의 문화를 알릴 수 있다는 것이 가야랑에게는 돈이나 명예와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가야랑이 기획사나 홍보해 주는 사람 하나 없이 험난한 가요계에서 이만큼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가야금을 희망과 나눔의 도구로 만들고자 하는 이예랑, 이사랑 두 자매의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해외공연을 다니면서 한국은 가야금이라는 악기가 있어서 너무 좋겠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어요. 물론 뿌듯하지만 그만큼 어깨도 무거워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하는 가야랑은 2013년에도 많은 계획을 갖고 있다. 3월 21일부터 남북휴전 60주년을 맞아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21개 동맹국을 순회하는 콘서트를 가수 비, 싸이와 함께 진행할 예정이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마카오, 캄보디아, 라오스 등 동남아 투어콘서트도 계획되어 있다. 조금 멀게는 우리 전통음악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줄 수 있는 책을 펴내고도 싶고, 가야금을 소재로한 아름다운 음악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은 작은 꿈도 있다. 그렇게이예랑과 이사랑, 가야랑은 가야금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한다.

하루아침에 다 바꿀 수는 없어도 발로 뛰는 만큼, 만나는 사람들에게 만큼은 가야금에 대한 관심을 심어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가야랑은 가슴 뛰는 강행군을 계속할 것이다.

글. 성혜경 사진. 엄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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