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 암각화 훼손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화계는 1971년 암각화 발견 이후 40여년간 물에 잠겼다 드러나는 악순환을 막기 위한 보존대책을 촉구해왔다. 대책 논의는 1990년대 말 시작됐다. 2003년에는 국무총리실, 문화재청, 울산시 사이에 일정 부분 합의까지 했지만 무산되면서 실제 보존조치는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과 관리주체인 울산시는 암각화 훼손이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보존방안에 대한 이견으로 10여년째 공방만 계속하고 있다. 총리실은 이를 중재해내지 못하는 무능력을 보이고 있다. 한번 파괴되면 복구가 불가능한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이나 역사·문화의식 부족도 한몫한다는 게 문화계의 지적이다.
10여년째 암각화 보존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변영섭 고려대 교수(고고미술사)는 11일 "관계당국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당장 보존조치를 하지 않아 더 화가 난다"며 "우선 사연댐의 수위를 낮춰 암각화가 물에 잠기는 것만이라도 막은 후에 다른 논의들을 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술사학자로서 볼 때 울산시는 댐 수위를 낮춰 우선 암각화를 구하려는 전향적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존방안을 놓고 문화재청과 문화계는 댐의 수위를 낮추는 수위 조절론을, 울산시는 댐 수위를 낮출 경우 생활용수가 부족해진다는 이유로 암각화 앞에 제방을 쌓아 물길을 변경하는 생태제방을 주장하는 상황이다.
문화재청은 수문을 설치해 60여m를 오르내리는 사연댐 수위를 52m로 낮춰 유지하면 암각화가 잠기지 않아 보존된다고 강조한다. 수문을 설치하면 암각화 앞의 대곡천도 그대로 흐르는 등 주변 역사·문화 경관이 훼손되지 않는다. 역사·문화 경관 및 자연환경 보존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도 핵심 조건이다. 문화재청은 반구대 암각화와 인근의 '천전리 각석'(국보 147호), 주변 역사·문화 경관을 묶어 '대곡천 암각화군'이란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이미 2010년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된 상태다.
반면 울산시는 암각화 앞에 제방을 쌓거나 대곡천 상·하류에 차수벽을 막아 물길을 돌리자고 주장한다. 주변 환경은 훼손되겠지만 물 부족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울산시 관계자는 "사연댐과 대곡댐에서 연 15만t의 용수를 갖고 온다"며 "수위를 낮추면 물 부족이 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물 부족 여부를 놓고 울산시와 문화재청은 서로 다른 주장을 편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국토해양부도 사연댐 수위를 낮추더라도 단기적으로 용수공급량은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냈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수문을 설치, 암각화를 보존한 뒤 용수 확보방안을 논의하자고 했지만 울산시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회는 지난해 수문 설치 설계비 예산으로 30억원을 책정했지만 울산시의 반대로 불용처리됐다.
울산시 관계자는 "현재 수리모형실험을 통해 수위조절, 생태제방 등의 효과를 검증하고 있다"며 "오는 22일 최종 용역결과가 나오면 문화재청과 협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그러나 역사·문화 경관이나 생태계를 훼손하는 생태제방 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양측 중재를 위해 그동안 국무총리실이 나섰지만 조정에 실패했다. 지난달 열린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김황식 전 총리는 "관계자 모두의 냉철한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며 미해결 국정 현안과 정책과제로 암각화 보존문제를 지목하고 해결되지 않은 것에 유감을 표시했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문제는 결국 박근혜 정부로 넘어갔다.
문화재청과 문화계는 오히려 새 정부에 기대를 걸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 시절 암각화 보존을 위해 전문가들과 직접 만난 데다 대선 공약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또 당선 이후에도 대통령직인수위 업무보고 때 문화재청 보고를 첫날에 배정하는 등 문화재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인 바 있다. 변 교수는 "보존의 명분과 필요성, 적절한 방안 등은 다 나온 상태로 결정만 이뤄지면 된다"며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지난달 국회 청문회에서 "반구대 암각화 보존에 대해 지금까지 문화부, 문화재청의 적극적인 자세가 부족했다"며 "울산시민의 청정수도 확보하고 암각화도 보존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책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도재기·백승목 기자 jae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