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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국보 ‘반구대 암각화’ 보존은커녕 90% 멸실 위기
글쓴이 tntv 등록일 [2013.03.14]


국보 ‘반구대 암각화’ 보존은커녕 90% 멸실 위기

문화재청·울산시 갈등 10년… 총리실 중재도 실패

보존 방안이 10여년째 표류하면서 선사시대 바위그림이자 세계 최초의 고래잡이(포경) 유적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가 사라지고 있다.

경향신문 취재팀의 현장 답사 결과 반구대 암각화 300여점 가운데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은 20~30점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구대 암각화의 멸실은 암각화 앞으로 흐르는 대곡천의 하류에 사연댐이 건설돼 반구대가 1년 중 절반 이상 물에 잠겼다 드러났다를 반복하는 '물고문'으로 침식되면서다. 그러나 주관부처인 문화재청과 관리주체인 울산시는 10여년째 보존 방안에 이견을 보이고,
국무총리실은 이견조정에 실패하면서 암각화 보존 대책마련에 손을 놓고 있다.

지난 6일 취재팀과 함께 현장을 조사한 변영섭
고려대 교수(고고미술사), 암각화 전문가인 김호석 화백 등은 "반구대 암각화의 상태는 서울 남대문의 기둥이 불타고 있는 상황에 비교될 만큼 엄중하다"며 "관계당국은 댐 수위를 낮춰 암각화 보호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반구대 암각화가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되고 있다. 1970년대의 사진(왼쪽)에는 눈·코·입 등으로 구성된 가면 형상이 뚜렷하지만 지난 6일 찍은 사진(오른쪽)은 새겨진 형상이 닳아 흐릿하다. | 김호석 화백 제공

현재 반구대 암각화는 발견 당시인 1970년대 사진, 탁본과 현장에서 암각화를 비교해야만 형상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크게 훼손됐다.

30여년째 반구대 암각화를 찾고 있는 김 화백은 "이제 올 때까지 온 것 같다. 발견 당시와 비교해 보면 그림의 훼손은 물론 암각화 바위의 표면이 떨어져나간 것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반구대 암각화 전망대'를 찾는 관광객들도 암각화 그림이 닳아버려 망원경으로도 식별하기 어렵다며 당국에 보존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보존책으로 문화재청과 문화계는 사연댐 수위를 낮출 것을 요구하지만, 울산시는 생활용수 부족을 내세워 암각화 앞에 생태제방 설치 등을 주장하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대곡천 변 가로 10m, 세로 3m의 바위면에 포경이나 사냥 장면, 고래·가마우지·호랑이·사슴 같은 바다 및 육지동물 등 3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신석기~초기 철기시대(기원전 7000~2000년 전후) 작품으로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과 풍습을 담은 최고의 걸작품이란 평가를 받으며 미술사·종교·고고학·인류학 등의 귀중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도 등재돼 있다.

 

 

“암각화 상태, 남대문과 비교하면 기둥들이 불타고 있는 셈”

물길로 찾아 들어가 직접 확인해 본 반구대 암각화

경향신문 취재팀의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 답사는 지난 6일 오전 11시부터 2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멀리는 7000여년 전
신석기시대 때부터 그려지기 시작한 반구대 암각화는 '바위 위에 새겨진 선사시대 역사'라 불린다. 하지만 1년 중 6~7개월을 물에 잠겨 있어야 하는 '비운의 문화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변영섭
고려대 교수(고고미술사)와 한국화가 김호석 화백, 김현원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생화학교실) 등과 함께한 취재팀은 육로가 아니라 물길을 헤쳐 암각화를 직접 만나기로 했다.

■ 지워지고 있는 그림들

사연댐 관리사무소에서 6인승 보트를 타고 댐을 가로질러 대곡천 상류로 거슬러 오른 지 10여분, 물길 몇 굽이를 돌자 대곡천의 왼쪽에 암각화가 있는 절벽이 나타났다. 오른쪽으로는 전망대가 보였다. 암각화 앞에는 물이 빠지면서 드러난 2평 정도의 공간이 있었다. 보트에서 내리자 아직 질척거릴 정도로 미끄러웠다.

답사팀은 암각화 앞에 섰다. 암각화를 처음 본 김현원 교수가 불만을 터뜨렸다. "변 교수님, 김 화백님,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요!"

그랬다. 그 유명한 고래나 호랑이, 가면 등의 그림을 눈으로 식별하기는 어려웠다. 고래잡이에 나선 선사시대 사람들이 탄 배를 그려놓은 그림도, 고래 3마리가 꿈틀거리는데 그중 한 마리는 두 줄기의 물을 내뿜는 그림도, 우리 속에 갇힌 사슴이나 씩씩한 호랑이, 바위를 쪼아 새긴 표범도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닳아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300여개의 그림 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형상은 겨우 20~30개에 불과했다. 1970~1980년대의 사진과 위치를 비교해 꼼꼼히 살펴봐야 겨우 형상을 알아볼 정도였다.

그림 (1) 부분 : 우리와 고래(왼쪽이 과거, 오른쪽이 현재 사진)

변 교수와 김 화백은 반구대 암각화의 상황을 복구공사가 마무리 중인 남대문(
숭례문)에 빗댔다. "이 암각화를 서울에 있는 남대문과 비교하면 남대문 기둥들이 불에 활활 타고 있는 셈이죠. 그런데도 당국자들은 불을 끌 생각은 하지 않고 아직도 자신이 옳다고만 다투고 있어요. 도대체 말이 되는 겁니까."

"한반도 역사의 첫 페이지, 우리 문화재의 맏형이 이렇게 사라지고 있어요."(변 교수), "선사시대 사람들의 사유체계가 집약된 그림, 한국미의 원형이 지워지는 이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김 화백). 일행들 속에서도 "말라 버린 이끼자국들 좀 봐" "물에 잠긴 띠가 허옇게 그대로 있네" 등의 말이 툭툭 튀어나왔다.

그림 (2) 부분: 호랑이와 표범(왼쪽이 과거, 오른쪽이 현재 사진)

김 화백이 훼손 전 사진자료들을 한 뭉치 꺼내 바위면 구석구석을 대조해나갔다. "어, 여기도 희미해졌잖아." "이곳은 금방 지워져 없어지겠네." 그의 탄식이 연신 이어졌다. 한국전통미술의 현대적 계승자이자 성철·
법정 스님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상화 작가로 유명한 그는 한국미의 원형질을 탐구하기 위해 1980년대부터 반구대 암각화를 찾았다. 몽골 등 세계 곳곳의 암각화가 그려진 곳을 답사하기도 한 그는 '한국 암각화의 도상과 조형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김 화백은 "암면의 형상들이 없어지는 것도 큰 문제지만 아예 암각화 바위 자체가 곳곳에서 떨어져 나가는 등 훼손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암각화 하단과 상단 곳곳에서 바위 조각들이 흔들리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암질이 물에 약한 진흙 퇴적층인데 물에 잠겼다 드러났다가 반복되니 훼손이 진행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는 "정말 보존조치가 시급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현원 교수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너무 훼손돼 깜짝 놀랐다"며 "어떻게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보존조치가 이뤄지지 않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반구대 암각화 실상을 책 저술 등 온갖 방법으로 알리고 각성을 촉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림 (3) 부분 : 가마우지(왼쪽이 과거, 오른쪽이 현재 사진)

■ 가치 높은 반구대 암각화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대곡천 변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12월 문명대
동국대 교수가 이끄는 동국대 박물관조사팀이 발견해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발견 6년 전인 1965년 이미 대곡천 하류에는 울산공업단지 등에 필요한 용수공급을 위해 사연댐이 조성돼 반구대 암각화는 40여년 동안 1년 중 절반 이상을 물에 잠겨야 했다. 신석기~초기철기시대 새겨진 암각화 300여점은 선사시대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로 그동안 국제학술회의 등이 열리는 등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가 과거 유물인 것만은 아니다. 현대에도 세계적 관광자원은 물론 각종 디자인 등으로 응용, 활용되고 있다. 암각화 인근에 2008년 설립된 울산암각화박물관에는 하루 평균 300여명의 관람객이 찾고 있다. 울산시는 반구대 암각화를 다각도로 스토리텔링의 소재로 만들어 축제 등에 활용 중이다.
한국조폐공사는 지난달 '한국의 문화유산 시리즈 기념 메달' 중 '한국의 수렵·벽화 이야기 시리즈'의 첫번째로 반구대 암각화 기념메달을 출시했다. 프로축구 울산은 올해 시즌티켓을 디자인할 때 반구대 암각화를 기본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문화재청-울산시 ‘암각화’ 이견 조정 안돼… 새 정부에 기대감

문화재청 “사연댐 수위 낮춰야” 울산시 “생태제방을”

반구대 암각화 훼손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화계는 1971년 암각화 발견 이후 40여년간 물에 잠겼다 드러나는 악순환을 막기 위한 보존대책을 촉구해왔다. 대책 논의는 1990년대 말 시작됐다. 2003년에는 국무총리실, 문화재청, 울산시 사이에 일정 부분 합의까지 했지만 무산되면서 실제 보존조치는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과 관리주체인 울산시는 암각화 훼손이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보존방안에 대한 이견으로 10여년째 공방만 계속하고 있다. 총리실은 이를 중재해내지 못하는 무능력을 보이고 있다. 한번 파괴되면 복구가 불가능한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이나 역사·문화의식 부족도 한몫한다는 게 문화계의 지적이다.

10여년째 암각화 보존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변영섭 고려대 교수(고고미술사)는 11일 "관계당국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당장 보존조치를 하지 않아 더 화가 난다"며 "우선 사연댐의 수위를 낮춰 암각화가 물에 잠기는 것만이라도 막은 후에 다른 논의들을 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술사학자로서 볼 때 울산시는 댐 수위를 낮춰 우선 암각화를 구하려는 전향적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존방안을 놓고 문화재청과 문화계는 댐의 수위를 낮추는 수위 조절론을, 울산시는 댐 수위를 낮출 경우 생활용수가 부족해진다는 이유로 암각화 앞에 제방을 쌓아 물길을 변경하는 생태제방을 주장하는 상황이다.

문화재청은 수문을 설치해 60여m를 오르내리는 사연댐 수위를 52m로 낮춰 유지하면 암각화가 잠기지 않아 보존된다고 강조한다. 수문을 설치하면 암각화 앞의 대곡천도 그대로 흐르는 등 주변 역사·문화 경관이 훼손되지 않는다. 역사·문화 경관 및 자연환경 보존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도 핵심 조건이다. 문화재청은 반구대 암각화와 인근의 '천전리 각석'(국보 147호), 주변 역사·문화 경관을 묶어 '대곡천 암각화군'이란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이미 2010년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된 상태다.

반면 울산시는 암각화 앞에 제방을 쌓거나 대곡천 상·하류에 차수벽을 막아 물길을 돌리자고 주장한다. 주변 환경은 훼손되겠지만 물 부족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울산시 관계자는 "사연댐과 대곡댐에서 연 15만t의 용수를 갖고 온다"며 "수위를 낮추면 물 부족이 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물 부족 여부를 놓고 울산시와 문화재청은 서로 다른 주장을 편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국토해양부도 사연댐 수위를 낮추더라도 단기적으로 용수공급량은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냈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수문을 설치, 암각화를 보존한 뒤 용수 확보방안을 논의하자고 했지만 울산시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회는 지난해 수문 설치 설계비 예산으로 30억원을 책정했지만 울산시의 반대로 불용처리됐다.

울산시 관계자는 "현재 수리모형실험을 통해 수위조절, 생태제방 등의 효과를 검증하고 있다"며 "오는 22일 최종 용역결과가 나오면 문화재청과 협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그러나 역사·문화 경관이나 생태계를 훼손하는 생태제방 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양측 중재를 위해 그동안 국무총리실이 나섰지만 조정에 실패했다. 지난달 열린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김황식 전 총리는 "관계자 모두의 냉철한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며 미해결 국정 현안과 정책과제로 암각화 보존문제를 지목하고 해결되지 않은 것에 유감을 표시했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문제는 결국 박근혜 정부로 넘어갔다.

문화재청과 문화계는 오히려 새 정부에 기대를 걸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 시절 암각화 보존을 위해 전문가들과 직접 만난 데다 대선 공약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또 당선 이후에도 대통령직인수위 업무보고 때 문화재청 보고를 첫날에 배정하는 등 문화재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인 바 있다. 변 교수는 "보존의 명분과 필요성, 적절한 방안 등은 다 나온 상태로 결정만 이뤄지면 된다"며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지난달 국회 청문회에서 "반구대 암각화 보존에 대해 지금까지 문화부, 문화재청의 적극적인 자세가 부족했다"며 "울산시민의 청정수도 확보하고 암각화도 보존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책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도재기·백승목 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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