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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科 합계 56범… '자칭 애국자' 4人의 노인 도둑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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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tv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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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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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科 합계 56범… '자칭 애국자' 4人의 노인 도둑들범인들, 국민참여재판 요구…주범 70·66세 형제지간…애국하려 원정?
평균 나이 62세인 노인 절도단 4명이 한·일 외교관계에 미묘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이 일본에서 훔쳐온 국보급 불상이 옛날 한국에서 약탈당한 것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 이후다. 불상은 회수됐지만, 일본에 반환되지 않고 있다.
한국 법원이 "불상이 일본에 간 경위가 밝혀질 때까지 돌려주지 마라"는 가처분 소송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일본은 정부 대변인이 나서서 한국 정부에 신속한 반환을 촉구했다.

↑ [조선일보]
문제의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동조여래입상과 고려시대의 금동관음보살좌상. 이 중 국보급인 동조여래입상은 이미 1974년에 일본에서 1억엔 가치로 평가된 일이 있다.
논란이 제기되자 인터넷에선 '애국자론'이 등장했다. "약탈품을 찾아온 개념 있는 도둑들"이란 것이다. "떳떳한 방법은 아니지만,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검거된 도둑들도 뜻밖의 반응에 으쓱한 듯하다. 경찰에 따르면 "일본이 빼앗아간 것을 찾아온 게 무슨 잘못이냐" "우리 문화재가 잘 보존되기를 바란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중 3명은 "억울함을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겠다"며 국민참여재판을 요구했다.
이들은 애국자인가? 아니면 그냥 잡스러운 도둑인가? 검찰의 기소 기록과 과거 재판기록, 증언을 통해 '도둑들의 진면목'을 살펴봤다.
◇셰퍼드를 독살하고 문화재 도둑질
이번 불상 도둑질과 관련해 검거된 사람은 모두 9명. 대마도로 건너가 불상을 직접 훔친 도둑은 4명이다. 이들의 나이는 각각 70·66·60·50세. 최고령 2명은 대구 출신 형제다. 나이가 든 만큼 경력도 화려해 이 4명의 전과를 다 합치자 56범에 달했다. 모두 국내에서 저지른 범행이다.
경찰이 주범으로 보는 인물은 절도단의 최고령자인 김모(70)씨. 고물수집상·다방 등을 하다 도벽에 빠져들어 그동안 '별' 13개를 달았다. 상습범에게 내려지는 청송교도소 보호감호처분도 두 번 받았다. 그래도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
김씨의 판결 기록을 보면, 2002년 1~2월 그는 제주에서 공범 2명과 밤에 차를 타고 다니며 주인이 없는 수퍼마켓이나 할인매장 7곳을 절단기로 따고 들어가 외제 담배를 훔쳤다. 청송교도소 보호감호를 마치고 나온 지 일주일 뒤였다. 두 번째 청송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나온 1년 뒤인 2005년 8월에는 대낮에 경북 포항에서 발전기 가게를 털었다. 김씨의 전공은 주로 밤 시간대에 떼를 지어 빈집과 가게를 터는 '특수절도'였다.
형의 특기가 '떼도둑'이라면, 친동생 김(66)씨의 전공은 문화재털이. 1999년 원주의 한 박물관에서 그는 전시돼 있던 연적을 가짜로 바꿔치기하는 방법으로 훔쳤다. 2000년에는 충남 일대를 돌며 명문가의 사당에 모셔진 영정들을 훔치다 붙잡혔다. 그가 훔친 영정 중에는 조선 세종 때 공조판서인 최용소 선생의 영정도 있었다. 2005년 경남 거창에선 2억6000여만원어치의 문화재를 훔쳤다. 그 속에는 권당 7000만원에 이르는 고문서도 있었다.
동생 역시 보호감호 선고를 받고 형이 다녀온 청송교도소를 거쳤다. 동생의 전과는 11범. 이들을 검거한 대전경찰청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부친이 고미술품 거래를 했다는 사실 외에 이들이 일생의 절반을 왜 도둑질로 보냈는지 알려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절도단 4명 중 최연소인 경북 구미 출신 김씨(50)는 문화재 절도를 위해 개를 독살한 경력도 있다. 2009년 전남 영광의 한 고가(古家)에서 문화재 600점을 훔칠 때 그는 살충제를 섞은 고기를 먹여 독일산 셰퍼드를 즉사시켰다. 김씨는 과거 국내 문화재를 털 때 한옥의 지붕 기왓장을 뜯어내고 침입했다. 이번 대마도 불상 도둑질 때 사용한 수법이다. 그는 최연소이지만 전과(18범)가 절도단 중 가장 많다.
나머지 한 명인 강모(60)씨는 전과 14범. 대부분 절도다. 그는 검거되지 않아 수배 중이다.
◇여러모로 만만한 대마도 노려
네 사람이 대구의 한 다방에서 모인 것은 작년 8월. 붙잡힌 3명 중 2명은 경찰에 "(최고령자) 김씨가 주도했다"고 진술했으나, 본인은 "동생이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그 자리에서 "큰 것 한 건 하고 손 씻자"며 의기투합했다. 그때 점찍은 것이 '대마도 불상'이었다. 이들은 이 불상이 한국에서 건너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경찰은 '애국적 동기'의 가능성을 일축했다. 경찰이 꼽는 '대마도 원정'의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현지의 문화재 관리가 느슨하다는 점. 일본은 개인이 가진 문화재의 경우 개인이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 두 불상도 사찰이 무인(無人) 시설에 보관하고 있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한국은 사찰과 유적의 문화재가 모두 인터넷에 등록돼 훔쳐도 유통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둘째 대마도엔 한국 관광객을 위한 한글 표지판이 많아 활동에 불편함이 적다는 점. 이들 4명은 일본어를 못한다.
돈이 문제였다. 대마도 원정을 위해선 국제여객선을 타고 가 대마도 현지에 숙소를 잡아야 했다. 절도 장비를 나르고 불상을 운반하기 위해선 렌터카도 필요했다. 그런데 주범인 김씨 형제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다. 나머지 2명도 극빈자였다.
이들은 경남 창원의 장모(51)씨를 끌어들였다. 창원 지역 사업가인 장씨는 조직원 12명인 조직폭력단 P파 고문을 지낸 인물. 폭행 등 전과가 18범이다. 1996년 결성된 P파는 1999년 마산 크리스탈 호텔 앞에서 상대 조직원을 잔혹하게 살해해 악명을 떨쳤다. 절도단 맏형 김씨가 장씨에게 받아낸 돈은 4000만원. 훔친 불상을 국내에서 처분하는 '장물아비' 역할도 맡겼다.
훔친 불상의 국내 반입을 맡은 사람은 풍속죄 등 전과 5범의 손모(60)씨. 일본 시장에서 골동품을 들여와 부산·경남 일대 경매장에 팔아온 업자였다. 지난 10년간 200여 차례나 일본을 왕래해 부산항 직원들과 안면이 있었다.
◇고령에 과로… 주범, 답사 중 졸도
절도단 4명은 작년 8월과 9월 대마도 현지의 사찰과 신사를 두 번 답사했다. 두 번 답사한 이유는 첫 답사에서 최고령자인 김씨가 폭염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대마도 병원에서 10여일을 입원했기 때문. 그는 고지혈·고혈압·협심증 등 지병을 앓고 있었다.
이들이 '거사'를 위해 대마도에 들어간 것은 작년 10월 초. 그리고 6일 대마도를 종단하면서 사찰과 신사 등 3곳을 털어 불상 2개를 훔쳤다. 최고령자 김씨가 망을 보고 나머지 3명이 침투해 불상을 훔치는 방식이었다.
이들은 훔친 불상을 대마도에 와있던 '장물아비' 장씨에게 넘겼다. 장씨는 배편으로 대마도에서 후쿠오카로 건너가 불상을 손씨에게 넘겼다. 손씨는 경찰에서 "후쿠오카항에 X-레이 투시기가 없어 후쿠오카에서 부산으로 반입하는 것이 용이했다"고 진술했다.
손씨는 부산항에서 "싸구려 모조품"이라고 둘러댔다. 당직 문화재 감정관도 "모조품"이라고 판정했다. 국보급 불상은 이렇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밀수를 택하지 않고 통관을 당당하게 거친 것이 나중에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일본 정부의 통보를 받고 행방을 쫓던 경찰이 모양이 같은 두 불상이 부산항을 통해 반입된 기록을 확인한 것이다. 경찰은 손씨를 잡았고, 이후 장씨, 절도단 순으로 줄줄이 엮여 들어갔다. 불상이 경남 창원의 장씨 소유 창고에서 발견된 것은 지난 1월 17일. 그후 지금까지 한국 문화재청이 보관하고 있다.
◇오리발… 용감한 형제의 분열
손씨, 장씨에 이어 경찰에 붙잡힌 최고령 김씨는 결백을 주장했다. "불상을 같이 옮겼을 뿐 훔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직접 절도 현장에 들어가지 않은 그는 "숙소에 있다가 절도 현장에서 1㎞ 떨어진 곳에서 바람을 쐬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대마도에 간 것도 "일본 민속품을 싸게 사기 위해 동생 일행과 동행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동생이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뒤이어 붙잡힌 동생은 "3명이 훔치는 동안 형이 망을 보며 현장을 지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형 김씨는 "딴 사람도 아닌 친동생이 왜 자꾸 나를 끌고 들어가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하고 서운하다"고 경찰에 토로했다.
주범 오명을 뒤집어쓸 위기에 처한 형제는 치열하다. 두 사람은 재판부가 선임해준 무료 국선변호인을 마다하고 저마다 사선(私選) 변호인을 선임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 형제에겐 수사 과정에서 단 한 명의 면회자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사식(私食)은커녕 입을 내복마저 없어 '장물아비' 장씨에게 부탁해 옷을 몇 벌을 받았다고 한다.
수사팀 관계자는 "절도범들이 '애국' 운운하는 건 한마디로 궤변"이라고 말했다. "훔친 것 자체가 잘못됐지만 훔친 뒤 애국할 생각이었다면 박물관이든 문화재청이든 불상을 슬쩍 갖다놔야지 왜 창고에 숨겨놨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장물아비 장씨는 잡히기 전 이리저리 판로를 알아보던 중이었다.
조선일보 | 이길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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