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유적 발굴 본격화 우려 목소리
신라 왕궁터인 경주 월성(사적 16호) 내부의 발굴 모습.
신라 1000년 역사를 간직한 경주의 주요 유적지들이 대규모 발굴조사로 하나같이 부산스럽다.
지난 3일 찾은 경주는 그야말로 ‘발굴 중!’이다. 핵심 유적 곳곳에 울타리가 쳐있고 ‘문화재 발굴조사 중’이라는 간판 너머로는 파낸 흙이 무더기로 쌓여 있다. 발굴이 벌어지는 곳만도 신라 왕궁터인 월성의 내외부, 황룡사터, 동궁과 월지 일대, 고분이 모여 있는 쪽샘지역 등이다. 여기에 월성과 남산을 잇는 다리인 월정교는 우람한 모습을 드러내며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신라의 역사문화 상징 지역인 옛 왕경 일대가 거대한 발굴현장이 된 것이다.
문화재청과 경북도·경주시가 2014년 ‘신라왕경 핵심 유적 복원·정비사업 추진단’을 구성, 추진 중인 8개 유적 대상의 ‘신라왕경 핵심 유적 복원·정비사업’이 3년째로 접어들면서 나타나는 모습이다. 문화재청은 이 사업의 일환으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중심으로 학술조사단을 꾸려 이들 발굴을 주도하고 있다.
발굴조사 중인 월성의 해자 일대.
발굴이 본격화되면서 고고학·역사학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계속되고 있다. 발굴조사가 유적 보존이나 학술적 자료 확보보다는 복원 중심 개발론자들의 요구를 뒷받침하는 하나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걱정이다. 조사와 분석을 담당할 전문인력의 한계 속에 주요 유적을 동시에 발굴하고, 복원 시한을 전제로 두면 “졸속적이고 무리한 속도전 같은 발굴조사”가 되리란 지적이다.
실제 월성의 내부에서는 통일신라시대 건물터 등 많은 유구·유물이 발견됐고, 그 유구 밑에는 신라시대 문화층이 존재한다. 한 고고학자는 “발굴을 신라 문화층까지 한다면 통일신라시대 유구는 들어내야 하는데 이는 곧 파괴”라며 “당장 이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 후에 발굴을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경주시나 개발론자들은 이 같은 사안을 생각하지 않고 복원에만 관심을 둔다”고 덧붙였다.
복원 근거가 없거나 부실한 상황에서 상상으로 세워지는 건축물이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것도 학계의 비판 대상이다. 이들 건축물은 일회성 볼거리일 뿐 천년고도 경주의 정체성을 잃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상상 속의 다리”라는 지적을 받아온 월정교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황룡사지 한쪽에 세워진 ‘황룡사역사문화관’에서는 여전히 황룡사 9층목탑 복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 월성 입구 ‘신라왕궁영상관’에서는 ‘신라 왕궁 이렇게 복원되다’라는 플래카드 아래 신라 왕궁과 황룡사 9층목탑, 당시 왕경지구 복원 모습을 상영 중이다. 경주의 한 학자는 “지난해 황룡사목탑 복원·왕경지구 내 각종 건물 복원 등을 내용으로 한 ‘신라왕경 핵심 유적 복원·정비사업 종합기본계획’이 문화재위원회에서 퇴짜를 맞았지만 여전히 홍보하고 있다”며 “시민들은 기본계획대로 복원되는 것으로 아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월성을 방문해 ‘복원·정비사업에 예산과 인력을 최대한 투입해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해달라’고 한 이후 사업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복원공사 중인 월정교 모습.
전문가들은 졸속 발굴을 막고, 경주의 문화적 정체성 확립 등을 위해서는 발굴조사가 개발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문화재청이 확실한 행정력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는 “발굴조사단원들은 복원계획을 전제로 한 발굴에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며 “문화재청은 외부의 압박에 맞서 장기적·체계적인 발굴과 정밀한 학술적 분석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복원·정비사업 추진에 대한 문화재위원회 역할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문화재위원회의 조그만 결정도 역사적 파문을 낳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역할의 엄중함을 새삼 되새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경주시와 복원을 강조하는 측은 ‘신라왕경의 골격을 복원해 천년고도 경주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역사문화 자원의 가치 증진과 활용 기반 구축’이라는 이 사업의 취지를 강조한다. 경주시 관계자는 “문화재 보존이란 명분 아래 개발이 지체되는 등 피해를 보고, 복원·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 천년왕도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며 “왕경 복원은 경주를 거듭나게 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신라왕경 복원·정비특별법’을 추진 중인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도 그동안 “보존 중심의 관리정책과 재원 부족으로 역사 도시로서의 상징성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며 신라왕궁 복원을 주장하고 있다.
보존과 학술적 의미를 강조하는 전문가들과 복원·개발을 중시하는 경주시가 대립하는 양상에 대해 한정호 교수(동국대 경주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는 “왕경 복원 사업은 학술적으로 볼 때 이뤄질 수 없는, 이뤄져서도 안되는 사업이라고 본다”며 “하지만 경주시의 분위기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경주시 입장에서 복원사업은 곧 예산 확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한 교수는 “이 사업 예산은 무리한 발굴보다는 개발 지체로 피해를 본 시민들을 지원하는 쪽으로 전환돼야 한다”며 “복원도 기술 발전에 따른 가상현실을 활용한 복원 등을 생각할 수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