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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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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인천역 모습 지금도 눈에 선해”...4,50년대 인천역서 일한 기관사 오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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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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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tv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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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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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인천역 모습 지금도 눈에 선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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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0년대 인천역서 일한 기관사 오익환 어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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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철도의 본고장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열차인 경인선이 1899년 인천역에서 노량진까지 처음 놓여졌고, 인천에서 첫 출발했다. 비록 일본이 조선을 수탈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철도의 역사는 인천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도의 역사는 인천의 근·현대를 아우르는 자산이자 인천가치재창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오익한 어르신(90)은 해방후 1946년 이후 인천역을 기억하는 기관사다. 그는 1946년도에 인천역에서 보조기관사로 일했다. 충남 아산이 고향인 그는 1942,3년인 일제 강점기에 경남철도주식회사 라는 개인철도 회사에서 보조 기관사로 일을 시작했다. 경남철도주식회사는 일본인 소유의 개인철도 회사로 천안~장항, 천안~ 장호원을 오가는 철도를 운영했다. 이 철도는 1945년 해방을 맞으면서 국유화가 되었고 그도 공무원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는 1946년 인천으로 전근을 올 수 있었다. 당시엔 보조 기관사였다. 보조기관사의 역할은 기관사가 기차 운행을 할 때 옆에서 무연탄을 때고 기관사를 도와주는 일이었다. 당시 만해도 증기기관차였기에 무연탄을 열심히 떄야 열차가 달릴 수 있었다. 보조 기관사로 일하던 그가 정식 기관사가 된 것은 1947 년경이다. 기관사 시험에 합격한 후 서울의 용산철도학교 기관사과에 가서 6개월간 교육을 받고 정식 발령을 받았다. 발령지는 인천역이었다. “당시 인천역~서울역까지 기관차를 몰았는데 첫 기관사가 되었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당시에는 기관사 대우도 좋았었어요.” 그때 기관차는 지금처럼 좋은 기차가 아니었다. 일본이 남기고 간 기차는 깨끗하지도 않았고 시설도 형편없었다. 오 어르신은 하루에 한번 정도 기관차를 몰고 서울을 갔다 오곤 했다고 기억했다. 1946년 인천역은 일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석탄을 싣고 기차가 달렸기 때문에 석탄을 때는 사람, 재를 치우는 사람까지 인천역과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모든 일을 사람이 하던 시대였다. 기관사만 해도 십여 명 씩 됐다.
증기기관차는 인천에서 서울까지 가는데 5톤 이상의 무연탄을 싣고 달렸다. 소요 시간은 2시간 정도 걸렸다. 지금처럼 역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열차는 빨리 달리지도 못했다. 당시 열차역으로는 인천, 상인천, 부평, 소사, 오류동, 영등포, 노량진, 서울역으로 이어졌다. 그가 철도청에서 일하면서 인천역에만 있지 않았다. 일 잘하는 직원으로 알려지면서 발탁되어 서울역부근에 있던 서울철도국에서 사령부 주임으로 근무했다. 직장 때문에 서울로 출퇴근을 했지만 항상 집은 인천이었다. 주로 인천역이 가까웠던 북성동, 송월동에서 주로 살았다. 그는 눈썰미가 좋고 일을 잘해 우수기관사로 뽑혀 상도 여러차례 받았다. 오 어르신은 6.25 전쟁당시에도 인천역에 있었다. 인천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전쟁이 터졌다는 소리를 들었고 황해도 연백 부근에서 포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상부로부터 열차에 군인들과 군 차량을 싣고 운송하라는 명령을 받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다. 처음엔 대구로 내려갔다 다시 부산으로 군인들과 군 차량을 싣고 움직였다. 그때 고생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오 어르신은 철도청에서 일하면서 증기기관차와 디젤기관차를 몰았다. 디젤기관차는 6.25이후 미군들이 들어오면서 들어왔다. 그러면서 점차 디젤기관차가 대세가 되었다. 그는 1980년 초에 철도청에서 퇴직했다. 지금도 가끔 인천역에 가면 옛 시절 열차를 운전하며 서울을 오갔던 풍경이 생각난다. 지금도 운전대를 잡으면 신바람나게 운전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긴다. “요즘 열차는 시설도 너무 좋고 깨끗해서 우리때와는 비교를 할 수 없어요. 세상이 너무 좋아졌어요.”
오 어르신은 10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 노년을 혼자 지내고 있다. 동양방직 사택이었던 그의 집은 일제 강점기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송월동은 인천역과 가까워서 오래도록 살고 있는 동네입니다. 인천역에 가면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글, 사진 이용남 ‘I-View’편집위원
| | 원문보기 http://enews.incheon.go.kr/publish/php/articleview.php?idx=11997§ion=8&diaryDate=2017-03-09&chapter=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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