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우혜 작가‘나의 아버지’기획
화해 - 핏빛고발 상반된 두 모습
“1945년 윤동주와 송몽규가 일본에서 옥사한 후 시신 수습…. 두 부친의 방식이 너무 달라 기이할 정도였다.”
시인 윤동주의 조카이자 소설가인 송우혜 작가가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산문화’ 봄호에서 기획한 특집 ‘나의 아버지’ 시리즈를 통해 민족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안타까운 죽음과 그에 얽힌 가족사를 상세히 전했다.
고종사촌 사이인 윤동주와 송몽규는 같은 해(1917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고, 평생을 ‘단짝’처럼 지내다 1945년 일본 후쿠오카(福岡) 감옥에서 옥사했다. 유학 중이던 1943년 일본의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돼 2년간 옥고를 치르다 원인 모를 이유로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송우혜는 윤동주와 송몽규 부친의 교육관이 남달랐으며, 이것이 시신 수습 과정에서 매우 상반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윤동주의 부친 윤영석은 아들 윤동주가 의사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윤동주는 ‘연전 문과’ 지망생이었기에 부친과 마찰을 빚었다. ‘물 사발이 밖으로 휙휙 날아갈’ 정도로 험악했다는 것이다.
송우혜는 “부친의 문과 진학 반대가 놀랍게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내성적인 윤동주는 부친의 격렬한 반대를 겪으며 오히려 문학에 대한 소명의식을 더욱 선명하게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윤영석은 또 일본에서 수습한 아들의 유골 중 일부를 일본을 떠나기 전 현해탄에 뿌리고 기도했다. 아들을 죽인 원수의 나라에 한 행동치곤 좀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이에 대해 송우혜는 “이 일을 이해하려고 오랫동안 묵상하다가 품고 있는 뜻을 납득했다. 윤동주의 부친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화해하는 시간이 오기를 간절하게 원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송몽규의 부친 송창희는 아들의 유골이 바닥에 튀자 “원수의 땅에 뼛가루 한 점도 남기지 않겠다”며 뼈가 튄 흙까지 쓸어담아 귀국했다. 민족주의자로서 끝까지 일본어를 배우지 않았을 정도로 강직했던 면모가 엿보인다.
송우혜는 “송몽규의 부친은 역사의 푸른 하늘을 강력하게 꿰뚫는 피어린 고발을 실행한 것”이라며 “두 분 아버지의 아픈 삶에 경의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