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방송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홈으로 | 즐겨찾기등록 |  +관련사이트 
문화재방송 한국 " Since 2008. 2. 1 "
[공지]왼쪽 상단 VJ 金鐘文을 클릭하시면 50 여 년 전 KBS 기자로 활동하던 당시의 영상과 1인 5역으로 제작, KBS 1TV에 방송됐던 프로그램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 왼 쪽 아래의 유튜브 바로가기를 클릭하시면 문화재 관련 동영상을 더 많이 보실 수 있습니다. [문화재방송 캠페인]선조들의 숨결 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hudownwbe wojodown nuebfile monjdown yesnkdown lpmedown jneepudw mndownfile bafdownco yabiqedown amehdown fadowntero evnhdown
HOME >
문화재뉴스 >
무형문화재 >
유형문화재 >
기타문화재 >
영상문화 >
역사기행 >
유네스코세계유산 >
문화재연감 >
유튜브 바로가기 >
PageNo : 01
제 목 '핏빛 공화제' 조선 1천명 처형…영국은 부관참시
글쓴이 tntv 등록일 [2017.03.22]



[숨은 역사 2cm] '핏빛 공화제' 조선 1천명 처형…영국은 부관참시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국가 최고 법인 헌법 제1조 1항에 나오는 말이다.

이 조항은 국민이 국가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뜻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도심 광장에서 자주 인용됐다.

공화제는 군주가 아닌 국민 대리인이 통치하는 체제다.

민주주의 선진국 영국보다 조선에서 먼저 공화제를 준비했다.

조선에서 공화제 씨앗이 싹튼 것은 유럽 종교개혁 무렵인 1580년대다.

왕정 폐지를 설계한 인물은 전라도 출신 선각자 정여립이다.

당대 최고 석학인 이이와 성혼이 인정할 정도로 서인에서 촉망받는 인재였다.

관운도 좋아 탄탄대로를 달렸으나 어느 순간에 급제동이 걸린다.

당파를 서인에서 동인으로 바꾼 것이 화근이었다.

서인에서는 '철새정치'라는 맹비난을 쏟아냈다.

선조까지 가세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인근인 전북 진안 죽도에서 대동계를 조직했다.

양반과 천민을 따지지 않고 누구나 평등하게 참여하는 단체다.

교육 내용은 매우 파격적이었다.

"귀천의 씨가 따로 없다. 천하는 백성의 것이지 임금의 것이 아니다"라는 가르침이 그렇다.

누구나 군주를 대신해 백성을 대표할 수 있다는 공화제 사상이다. 대동계는 방위 역량도 갖췄다. 계원들은 매달 한 번씩 모여 말타기, 활쏘기, 검법 등을 연마했다.

임진왜란 5년 전 전남 여수 해안에서 살상과 약탈을 일삼은 왜적을 무찌르기도 했다.

정여립 상상화.
정여립 상상화.

왜적은 관군도 제대로 대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대동계의 군사력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대동계는 전라도와 황해도를 중심으로 크게 확대됐다.

학문뿐 아니라 무예도 출중한 정여립의 개인 역량 덕분이었다.

공화제를 설계하고 준비하던 대동계에 어느 날 갑자기 피바람이 몰아친다.

대동계가 한양 침공을 준비한다는 고발장을 선조가 접수한 탓이다.

관군이 대응에 나서자 정여립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살했다.

공화제 설계자가 죽었는데도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했다.

동인의 영수 이발 일가족이 몰살당한 것을 비롯해 1천여 명이 숨졌다.

대동계와 무관한 사람도 무수히 처형됐다.

조선판 마녀사냥은 무려 3년간 지속했다.

학살극을 주도한 인물은 수사본부장을 맡은 송강 정철이다.

독립운동가 신채호는 정여립을 동양 최초의 공화주의자라고 평가했다.

크롬웰.
크롬웰.

영국은 비슷한 시기에 공화정을 도입했으나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당시 영국 왕 찰스 1세는 청교도를 탄압하면서 의회와 심한 대립각을 형성했다.

대다수 의원이 청교도를 믿었기 때문이다.

왕과 의회는 세금, 전쟁, 의원 체포, 의회 해산 등을 놓고 사사건건 부딪쳤다.

양측은 타협점을 찾지 못해 내전에 돌입했다.

전쟁 초기에는 왕을 지지하는 왕당파가 우세했으나 2년 뒤에는 전세가 뒤집혔다.

지주 출신 올리버 크롬웰이 등장한 것이 반전 계기였다.

그는 청교도 신자와 직업군인으로 구성된 철기군을 이끌고 왕당파를 격파했다.

1648년에는 찰스 1세를 공개 처형하고서 그 이듬해에 공화정을 선포했다.

크롬웰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을 단일 영토로 묶어 통치했다.

귀족과 교회에서 토지를 몰수해 재분배하고 중등교육을 강화했다.

청교도혁명이 완승한 것이다.

크롬웰은 운동경기와 춤, 음주, 도박을 금지하는 등 엄격한 도덕 통치를 했다.

공화정은 이름뿐이었고 사실은 군부독재 정부였다.

1653년에는 의회를 해산하고 종신 호국경(계엄사령관)을 맡아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다.

공화정은 크롬웰이 죽고 나자마자 사라지고 왕정으로 대체됐다.

공포정치에 불만을 가진 국민이 찰스 2세를 왕으로 추대했다.

찰스 2세는 즉위 1년만인 1691년 대대적인 보복극을 벌인다.

의회 투표로 크롬웰 반역을 확정하고서 무덤을 파 관을 부수고 목을 잘랐다.

크롬웰의 목은 장대에 꽂혀 웨스트민스터 성당 홀에 걸렸다.

주요 추종자들은 교수형을 당했다.

크롬웰 머리는 약 300년간 방치됐다가 1960년 모교인 케임브리지 시드니 서식스 대학에 묻혔다.

영국은 조선과 달리 공화정 도입에 성공했는데도 많은 피를 흘렸다.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민주주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설파한 것은 핏빛으로 얼룩진 공화제 역사를 의식한 발언인 듯하다.

junepen@yna.co.kr
원문보기
http://www.yonhapnews.co.kr/culture/2017/03/16/0906000000AKR20170316131600797.HTML


 

주소: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석바위로 53번길 17 | 이메일:tntvkr@nate.com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인천 0101529' 등록
Copyright(c)tntv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