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국의 서원' 이어 또 철회… 예비심사 최하위 '불가' 판정받아
지자체 마구잡이식 등재 신청에 제동
서울시가 5년 넘게 추진해온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무산됐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예비심사에서 낙제점을 받아 자진 철회한 '한국의 서원'에 이어 2년 연속 세계유산위원회에 후보를 올리지도 못하게 됐다. 일부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마구잡이 등재를 추진하던 움직임에도 제동이 걸렸다.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 MOS·이코모스)가 이달 초 유네스코에 제출한 평가 보고서에서 한양도성에 대해 '등재 불가(Not to inscribe)' 판정을 내렸다"며 "세계유산위원회 본회의에서 등재 불가가 결정되면 해당 유산은 재신청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등재 신청을 자진 철회했다"고 21일 밝혔다. 우리나라가 신청한 문화유산이 이코모스 예비심사에서 최하위 등급인 '불가'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통상 이코모스는 심사 후에 '등재 권고' '보류' '반려' '불가'의 4가지 권고안 중 하나를 결정한다. 2등급인 '보류'는 본회의에서 뒤집을 수 있지만 '반려'는 가능성이 희박하고, '불가'는 등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양도성, 탁월한 보편적 가치 부족"
한양도성은 1396년 축조된 이후 620년 동안 서울을 지킨 성벽이다.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세계유산 등재신청서를 지난해 1월 유네스코에 제출한 뒤 지난해 9월 이코모스 전문가팀의 현장 실사를 받았다.
서울시 등은 한양도성이 △성리학과 풍수를 근간으로 축조됐고 △600년 넘게 지속적으로 관리해왔으며 △시기별 축성 기술의 특징이 잘 남아있다는 점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코모스는 "세계유산에 등재된 다른 도시의 성벽과 비교했을 때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충족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서울시는 한양도성 복원에 예산 327억원을 투입하고 관리 전담부서인 한양도성도감을 설치하는 등 '등재 프로젝트'를 가동해왔으나 결국 준비 부족으로 최하위 등급을 기록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마구잡이식 지자체 등재 열풍 자제해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코모스의 등재 심사도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등재 대상을 고르고 신청서를 낼 때 더 면밀하고 치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유산은 12건. 1995년 석굴암과 불국사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처음 올린 데 이어,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까지 모두 11건의 문화유산과 1건의 자연유산(제주도 화산섬과 용암동굴)을 보유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면 관광자원 창출 등 이점이 있기 때문에 전국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고려시대 남한강 유역의 불교사원 유적'(강원도 원주시), '대한민국 피란수도 부산유산'(부산광역시), '강화 해양관방유적'(인천광역시 강화군·경기도 김포시) 등 문화재청에 공식 신청한 사례만 20건이 넘는다. 지자체장이 "유네스코에 신청하겠다"고 '선언'한 경우는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남원 가야유적군, 거제 포로수용소, 충남 천주교 유적, 대구 팔공산 불교유산, 경북 세종대왕자 태실 등이 지자체가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유산들이다.
이건무 전 문화재청장은 "유네스코 등재 기준은 점점 까다로워지는데도 올림픽 메달 따듯 달려드는 건 예산 낭비만 초래할 따름"이라며 "정말 가치 있는 유산을 보호하고 전승하려는 의식부터 키워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