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층이고, 전 세계에서도 5번째로 높은 빌딩인 롯데월드타워가 이달 초 개장했다. 123층, 555m. 포탄처럼 매끈하게 솟은 모습이 무슨 기념비 같다. 빌딩 바로 아래에서 카메라를 대면 한 화면에 빌딩이 잡히지 않을 만큼 높고 크다.
롯데월드타워가 문을 열면서 잠실역 부근은 그야말로 ‘롯데타운’이 됐다. 타워를 비롯해 롯데월드 어드벤처, 롯데몰,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등…. 쇼핑과 관광의 랜드마크가 됐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될 게 하나 있다. 롯데월드타워와 석촌호수를 잇는 사거리 한가운데 있는 삼전도비(三田渡碑·사진)다.
사적 제101호인 삼전도비는 조선 인조 17년(1639)에 세워진 비석이다. 대리석을 다듬어 만든 몸돌과 지붕돌, 이를 떠받치는 귀부(龜趺)로 구성돼 있다. 몸돌의 높이 3.95m, 폭 1.45m, 두께 0.39m이고 지붕돌과 귀부를 합친 높이는 무려 5.70m에 달한다. 주변의 고층 건물만 아니라면 충분히 눈에 띄는 규모의 비석이다.
삼전도비에는 치욕스러운 역사가 담겨 있다. 병자호란(1636) 때 청나라에 패배해 굴욕적인 강화협정을 맺고 청 태종의 요구에 따라 그의 공덕을 기린 항복 문서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본래 명칭도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다.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조공을 바치던 여진족은 명나라가 어지러운 틈을 타 후금을 건국했다. 이후 더 세력을 넓히고 국호를 청으로 바꾼 뒤 조선에 신하로서의 예를 갖출 것을 요구했다. 조선이 반발하자 청 태종이 10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왔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항전했지만 압박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척화삼사(斥和三士)인 윤집·오달제·홍익한을 적진으로 보냈고, 한강 남쪽의 삼전도에서 적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삼전도비의 비문은 당시 부제학 이경석이 지었고, 글씨는 도총관 오준이 썼다. 비석 앞면의 왼쪽에는 몽골 글자, 오른쪽에는 만주 글자, 뒷면에는 한자로 적혀 있다. 이런 예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 17세기 만주어 및 몽골어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삼전도비는 치욕적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동안 여러 차례 수난을 당했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지고 조공관계가 단절된 후 강물에 수장됐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13년 일본에 의해 다시 세워졌고, 1945년 광복 직후 주민들이 다시 땅속에 묻었으나 1963년 홍수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후 1983년 전두환정부 당시 송파구 석촌동 289-3번지로 이전됐다가 고증을 거쳐 2010년 비석이 서 있던 원래 위치인 석촌호수 인근 송파구 잠실동 47번지에 자리 잡았다.
삼전도비는 분명 지워버리고 싶은 역사의 증거다. 광복 후 주민들이 땅속에 묻어버린 심정이 바로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굴욕의 역사라 해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안다. 또다시 치욕을 당하지 않도록 기억하고 반성해야 한다.
기자가 삼전도비를 찾은 날은 석촌호수 산책로에 벚꽃이 만개한 때였다. 삼전도비는 이 산책로 바로 옆, 롯데월드타워가 바라보이는 곳에 서 있었다. 벚꽃 산책로를 즐기는 인파는 넘쳐 났지만 삼전도비에 관심을 보이는 관광객은 손을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삼전도비는 400년 가까운 세월을 이겨냈듯 묵묵히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글·사진 =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