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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삶으로 보는 역사 : 4-1 새로운 기회의 문
글쓴이 tntv 등록일 [2017.04.25]



삶으로 보는 역사 : 4-1 새로운 기회의 문
삶으로 보는 역사 :  4장 새 노래를 부르다
 
<1> 새로운 기회의 문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원장 수녀가 견습 수녀 마리아를
폰트랩 대령집에 가정교사로 보내며 노래한다.
 
모든 산을 다 올라보아라.
Climb every mountain.
 
용기를 북돋기 위해 이렇게 노래한 후
수녀원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 하는 그녀에게
수녀원장은 또 이렇게 말을 잇는다.
 
신이 한쪽 문을 닫을 때에는
어느 곳엔가 창문을 열어 두신다.

When the Lord closes a door,
somewhere he opens a window.
 
마리아는 닫힌 수녀원 문을 나서면서
새로운 삶에 대한 걱정으로 두려워 하다가
이 말에 용기를 내어 자신감을 찾아
길위에서 가방을 흔들며 즐겁게 노래한다.
 
나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I have confidence in me.
 
같은 길을 걷는 이들로 이뤄진 공동체에서
미지의 사람들과의 삶으로 들어가기 위해
용감하게 폰트랩 대령집의 문을 두드린다.
 
한쪽 문이 닫히면 어딘가 창문이 열려있다.
수녀원에서 대령집으로 가는 길에서 부른
이 노래는 그 집 정원에서 또 한번 나온다.
 
수녀로 폰트랩 대령을 사랑하는 자신이 두려워
마리아는 수녀원이라는 고치 속에 몸을 숨기지만
원장의 깨우침으로 다시 대령집으로 돌아간다.
 
그 집 정원에서 대령과 사랑을 서로 확인하고
독신의 문을 닫고 결혼의 문을 열면서
새 생활에 대한 희망을 담아 이 노래를 또 부른다.
 

폰트랩 대령집으로 가는 길에 'I have confidence in me'를 부른다.


삼전도에서 청(淸)의 신하로 항복한 조선 조정은
오랑캐라고 여기던 여진족에게
처참하게 패한 치욕을 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무조건 복수해야 한다고 외쳤고
복수의 문을 명(明)이 열어 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명나라는 이미 닫혀진 문이었고
청은 새롭게 열린 창문이었는데
열린 창은 보지 못하고 닫힌 문만 보고 있었다.
 
행복의 문이 하나 닫힐 때면
다른 문 하나가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닫혀있는 문을
너무 오래 바라보느라
우리를 향해 열려있는 문을 보지 못하곤 한다.

 
헬렌켈러가 닫힌 문만 바라보다
열린 문을 보지 못한다 했는데
청에 항복한 조선이 그러했다.

어리석은 이는
감정을 풀 복수의 길을 찾지만
현명한 이는
원인을 찾아 이길 길을 찾는다.
 
희망을 잃은 이들은 닫힌 문을 보며 한탄하고
희망을 찾는 이들은 새로운 문을 두드리는데
다행히 청에서 새로운 창문을 본 이들이 있었다.
 
본래 여진족은 갈족, 말갈족, 선비족이
함께 융합되어 이루어진 부족으로
중국의 5호 16국 시대에 화북을 통일하고
'북위'를 세워 떨치다가 요동으로 이동했다.
 
거란이 요(遼)를 설립할 때에는
거란의 일파로 있다가 요동에서 만주로 이동했고
송(宋)대에 금(金)을 세워 중국 북부를 장악한 후
거란을 여진에 통합해 하나의 민족으로 커져갔다.
 
김용의 소설 영웅문의 '사조영웅전'에서 보면
곽정은 몽골 초원의 '징기스칸'의 보호를 받고
양강은 금 왕실의 '완안홍렬'의 아들로 큰다.
 
이들이 성장한 후 의형제이면서 서로 싸우듯이
몽골의 '원'과 여진의 '금'은 중국을 놓고 싸우다
1234년 여진이 만주와 함경도로 패해 이주한다.
 
원나라 통치하에서 여진이 함경도로 와 거주하고
이성계 선조는 전라도에서 함경도로 이주하면서
이성계가 무장으로 회령지방 여진을 이끌었으니
조선 건국의 문이 여진에서 났다고도 할 수 있다.
 
세종대왕은 함경도에 6진을 설치하고
경상도 주민을 함경도에 이주시키면서
함경도 거주 여진을 조선으로 융합시키고
함경도를 조선의 영토로 확고하게 굳혔다.
 
여진은 옛 부여에서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거주 지역이 다르고 문화 차이는 있었지만
우리 한민족과 얽혀서 살던 부족이었다.
 
여진의 정치 우두머리를 '칸'이라고 하는데
신라의 '마립간'이라는 말과 어원이 같다 하고
신라의 왕씨 김(金)과 여진의 나라 이름 금(金)도
근원이 같다 하는 주장이 있는 것도 이와 통한다.
 
1586년 누르하치가 여진 부족을 통합하고
부족 이름을 만주족으로 바꾸고 '후금'을 세울 때
그들은 조선을 자신과 다른 민족이라 하지 않았고
1592년 왜란때는 조선에 원병 파병을 제안했다.
 
그들이 청을 세우고 중국을 통치할 때도
한족, 몽골족과 만주족의 융합정책을 쓰면서
청은 조선을 만주족으로 분류했었다.
 
그러나 조선은 여진족을 오랑캐라 부르고
임진왜란시 누르하치가 도와주겠다 할 때도
오랑캐의 도움은 받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조선 조정이 여진을 거부하고
여진과의 연결을 부정하는데 적극적이었던 것은
태조 이성계로부터 기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성계가 함경도에서 개경으로 진출할 때
고려의 적인 여진과 연관성이 문제가 되자
그가 적극적으로 이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의형제였던 여진 족장 퉁두란은
후금 시조 누르하치와 같은 부족이라 말하고
누르하치의 본적도 함경도 회령으로 적고 있다.
 
중국에서 만주족은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보듯
일본의 허수아비 정권인 만주국이 멸망한 후
소수민족이 되어 만주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1천만명 정도가 만주족으로 등록하고 있으나
이미 그들의 문자와 문화는 거의 사라지고
지금은 중국에서 한족으로 동화되어 가고 있다.
 
중국의 소수민족 동화정책은 참으로 집요한데
1990년대 초 중국 서남부 운남성에 갔을 때
중국 동북부 흑룡강성에서 온 조선족을 만났다.
 
흑룡강성에서 나고 자라 거기서 대학을 나왔으나
정부가 민족 혼합을 위해 운남성에 직장을 주면서
명절에 고향 부모를 만나러 가기도 힘들다고 했다.
 
지금 중국이 벌리고 있는 동북공정으로
언젠가는 연길의 조선족자치구도
중국에 동화되어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탓하면서
지난 역사의 꽉 닫힌 문이 열리기를 바라기보다
내일로 가는 창문을 열고 대응할 길을 찾아야 한다.
 
만주족의 청이 중국 한족의 명을 정복할 때
조선은 인구가 약 500 만명 이었는데
만주족은 대략 50 만명 수준이었다.
 
당시 중국 인구는 1억5천만명 이었으니
만주족은 10배 많은 조선을 신하로 두고
300배 많은 중국의 인구를 다스렸다.
 
그들은 단순히 지배한 게 아니라
260년 통치 동안 영토를 50% 이상 넓히고
문화는 중국 역사상 가장 발달한 시대를 이끌어
오늘날 중국 번영의 밑거름을 만들었다.
 
조정이 닫힌 문만 바라보고 있을 때
청을 통해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고 
조선이 살 길인 '실학'을 닦은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당시 권력층이 아니라
백성의 생활을 더 낫게 하는 길을 연구하면서
오랑캐라 무시하던 청에게서 실학을 배웠다.
 
우리는 늘 우리나라가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있다고 말하는데
생각을 바꾸어 보면 우리는
끼여 있는 게 아니라 그 중심에 있다.
 
300배 큰 인구를 다스린 청을 보고 찾은 실학에서
인구가 우리보다 20배 많은 중국과
2배 많은 일본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
현실에 바탕을 둔 새로운 문을 찾아야 한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가 자신감을 갖고
즐겁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 듯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면 새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위기는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 주고
그 길은 새로운 노래를 부르게 한다.
 
혼돈의 과거에 매달리면
미래로 떠날 문을 보지 못한다.
 
곧 새 정부가 들어서는 데
혼돈의 과거의 문을 닫고
희망의 내일의 새 노래를
함께 부를 길을 찾아 나서 보자.

J플러스의 게시물은 중앙일보 편집 방향 및 논조와 다를 수 있습니다.

원문보기
http://news.joins.com/article/21460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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