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민중의 징비록 (1)
임진왜란 7년의 전란이 끝나면서
전쟁을 이끈 유성룡은 안동으로 낙향해
전란의 원인과 전쟁 중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다.
내일을 대비하지 못하고 눈앞의 것만 쫓다가
참혹한 전쟁을 겪었던 정부의 관료로서
후세에게 자기 반성과 경계의 당부를 담아
6년에 걸쳐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앎대로 실행하라'
지식인으로 평생 가슴에 새긴
이 경구를 다하지 못한 아쉬움을 그 책에 담고
3년후 세상을 떴으니 징비록은 그의 공적 유서이다.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고
유성룡은 안동에서 책을 저술했는데 가끔은
이순신이 전사하지 않고 유성룡은 조정에 남아
전후 조선을 그들이 이끄는 판타지를 그려본다.
이순신이 군사를 이끌고 도성으로 가고
수많은 백성들이 환호하며 따르고
도망자 하성군의 목이 광화문에 내걸린다.
전주 이씨 왕조가 무너지고
덕수 이씨 왕조가 세워지면서
백성이 하늘인 나라가 일어선다.
하성군, 광해군, 능양군의 세 임금의 시대를
'혼돈의 삼군시대'로 분류하는 이유는
이들이 나라를 다스린 82년 동안 백성이
512만명에서 152만명으로 줄은 데 있다.
전쟁과 혼란 중에도 백성은 안중에 없고
왕의 욕망만 채우던 이 시대를 지내면서
백성 10명 중 3명만이 겨우 살아 남았으니
혼돈 중의 혼돈의 시대가 아닌가.
나라면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았을까 두렵고
내가 그려보는 판타지가 더더욱 안타깝다.
이순신과 유성룡이 오래 살았다 하더라도
그들이 내 판타지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그들의 배움이 그 길을 쳐다볼 수도 없게 했다.
그들은 '임금이 곧 나라' 라고 배웠고
이를 제대로 실천하는 게 삶의 전부였으니
조선의 '왕중심 교육'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이방원은 정몽주를 조선건국의 적으로 죽이고도
정몽주를 충신 중의 충신으로 따르게 하면서
임금을 위해 죽는 게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라 가르치게 했다.
이런 조선의 교육이 지금도 남아
나라와 국민을 위해 죽는 게 아니라
임금을 위해 죽은 정몽주를
만고의 충신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35년간 나라 없는 백성으로 살았던
우리 역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나라 없는 백성은 있을 수 있어도
백성 없는 나라는 있을 수 없다고 깨우친다.
임금보다 나라가 중하고
나라보다 백성이 더 중요하니
백성이 곧 나라의 근본인 것이다.
유대인은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살았지만
나라는 없었어도 백성이 살아 남았기에
백성의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었다.
몽골족은 원나라를 만들어 100년간
만주족은 청나라를 세우고 260년간
중국인을 지배하며 땅을 넓히고 문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중국을 떠난 후
중국 땅에서 그들이 이뤘던 찬란했던 역사는
누구의 역사가 되었는가.
몽골과 만주족에게는 조상의 역사겠지만
지금 그 땅에 살고 있는 중국인에게는
그 역사는 중국 역사의 일부분일 뿐이다.
일제 강점기 역사가 우리의 역사이듯이.
하늘이 듣고 보는 것은
백성을 통하여 듣고 보는 것이니
땅을 다스리는 사람은 백성을 공경해야 한다.
맹자 서경에 나오는 이 가르침을 따라
백성이 나라의 근본인 민본주의(民本主義)를
조선의 건국 이념으로 정도전은 내세웠다.
그러나 왕권주의자인 이방원이 그를 죽이고
왕권 신봉자인 정몽주를
신하들이 따를 최고의 모범으로 세우면서
조선은 왕을 위해
백성이 있는 나라가 되었다.
이렇게 임금이 나라의 근본이 되자
지식인들은 배움의 길을 백성에 두지 않고
임금에게 충성하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조정에 나가 치국(治國)을 하기 전에
하늘이 듣는 백성의 소리에 귀를 열기 보다
땅의 왕의 소리를 듣고
왕을 섬기는 길을 찾아 나섰다.
아무리 못난 왕이라도 그를 위해서
자신을 먼저 다스리는 수신(修身)을 하고
왕을 부모처럼 섬기도록 제가(齊家)를 한 후
왕에게 나아가는 게 배움을 이루는 길이었다.
이렇게 200년간 다져온 조선의 성리학은
임진년 전쟁 직전에 전성기를 맞이했고
그 중심에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가 있었다.
이황과 이이의 성리학 이기론 논쟁은 뜨겁지만
백성의 삶과 소리는 논쟁의 담 바깥에 있었고
그 담의 높이는 그들의 학문의 깊이만큼 높았다.
백성이 근본인 나라였다면
백성의 반을 외적이 난도질 하도록 놔두고
제 혼자 살려고 외국으로 도망가려던 하성군을
최소한 파면시킬 길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임금에게 충성하는 것만 배운 관료들은
도망가는 하성군을 왕으로 받들어 충성하고
임금은 아들을 자기를 대신해 전선으로 보냈다.
어느 아비가 뒤에 안전하게 숨어있으면서
자식을 죽음의 전쟁터로 내모는가.
짐승도 그렇게는 안 한다.
당시 광해군의 나이 18 살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학도병 나가기에도 어린
미성년 아들에게 세상 무거운 짐을 모두 맡기고
임금인 아비는 제 목숨 살릴 궁리만 했다.
그런데 광해군에게 맡긴 분조(分朝)가
신하들의 도움으로 전쟁 수행을 잘 하면서
민심이 하성군을 떠나 아들에게 향했다.
이에 당황한 하성군은 갖가지 방식으로
광해군과 조정 신하들을 괴롭히며
8번이나 양위소동의 '퇴위 파업'도 벌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자식도 백성이기에
임금은 자식을 전선에 대신 보내도 되고
뜻을 따르지 않으면 자식도 죽였던 것이다.
유성룡은 징비록을 쓰기 전에
임금이 하늘인 나라가 아니라
백성이 하늘인 나라로 가는 길을 찾아야 했다.
혹독한 전쟁의 혼돈 속에서 나라를 구한 것은
임금을 생전에 한번도 본 적 없는 백성이
최일선으로 나가서 나라를 지킨 덕이었다.
백성의 나라였던 것이다.
로마에서 가장 포악한 황제로 네로를 흔히 꼽는다.
64년 기름창고 사고로 로마에 대화재가 일어나자
네로는 혼란스러운 민심을 잡기 위해
소수인 그리스도교에 뒤집어 씌워 학살한다.
로마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혈통으로
공경받던 거룩한 황제의 혈통이었지만
로마의 근본은 황제가 아니라 시민이었기에
로마시민은 그를 황제 자리에서 파면시켰다.
그가 68년 갈바의 반란으로 쫓겨나 죽으면서
로마를 건국한 황실 혈족출신 황제는 사라지고
황제 자리는 더 이상 핏줄을 따르지 않았다.
로마역사에서 가장 번영되고 평화로웠던
5명의 훌륭한 황제가 다스리던 '5현제 시대'는
그렇게 혈통을 버리면서 만들어졌다.
조선에서는 임진왜란 일어나기 86년 전에
연산군을 몰아내고 새 임금을 세웠는데
왜 이때는 하성군을 몰아내지 못했는가?
조선이 적서를 따지며 중요시 하던 혈통으로도
연산군은 성종의 정비의 자식으로 적자였고
하성군은 중종의 후궁이 나은 서자의 아들이다.
연산군은 어머니를 위한 복수로 양반을 죽였지만
하성군은 백성의 반을 전쟁으로 몰아 죽였다.
연산군을 폐한 명분이라면
하성군은 수없이 폐하여도 마땅했는데
이황과 이이를 따르던 유학자들에게는
백성보다 왕이 먼저였고 왕은 무치(無恥)였다.
유성룡의 징비록의 시작은 그가 진정으로
백성을 아끼는 지식인이고 정치인이었다면
전쟁 발발의 원인을 찾기 전에 먼저
국난의 책임을 묻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나라를 지켜내지 못한 것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을 지켜내지 못한 것이니
백성을 잘 돌보지 못한 것이
관료들의 가장 큰 불찰이고 죄악인 것이다.
나쁜 임금을 위해 선량한 백성이 목숨을 바친
'혼돈의 삼군시대' 의 책임을 그래서
나빴던 왕들뿐만 아니라 무조건 왕을 따랐던
당대 지식인들이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
백성의 삶과 동떨어진
명리(命理)뿐의 성리학으로 제자들을 키워낸
이황과 이이에게 책임을 묻는 이유이다.
그들의 가르침을 추종한 후학들은
백성의 삶보다 명분을 쫓아 당쟁을 만들었고
당쟁은 그들을 하성군의 배향공신으로 높이어
조정 관료들의 꿈인 종묘 공신당에 들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영예가 아니라 치욕이다.
나눠먹기로 자기들 스승을 배향공신으로 만들면서
그들은 나라를 명분만 쫓아 나뉘어 싸우게 하고
끝내 외적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오늘날 유학을 하는 이들에게
돌을 맞을 각오로 말한다.
임금을 위한 충성에 최고의 가치를 둔
정몽주와 이황과 이이를
이제는 우리 후세 교육에서 버려야 한다.
임금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은
오늘날 기득권을 옹호하게 하고
DA 300
가진 것을 끝까지 지키려 하는 삶을 만들었다.
권력자 이름을 넣은
'XXX를 사랑하는 모임' 이나
'친○' 또는 '친△' 라 칭하는 모든 계파는
나라와 국민보다
권력에 대한 충성에서 나온 것 아닌가.
참된 애국과 충성은
나라의 근본인 국민을 최우선 가치에 두고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에게 충성하는 것이다.
500년전에
유학자 유성룡의 징비록이 나온 후
민중이 쓴 징비록이 나온 이유이다.
오늘 이를 어떻게 살릴 지를 살펴보고
내일의 희망 노래를 함께 부르자.
원문보기
http://news.joins.com/article/214807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