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복천동 53호 고분(1989년 발굴)을 보존한 야외전시관에서 김두철 부산대 교수가 내부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무덤 바닥 한가운데 일렬로 놓인 덩이쇠(철정)들이 보인다. 부산=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1600년 묵은 ‘처녀분’ 열리다
“철도레일 같은 게 바닥에 쭉 깔려 있다!”
1980년 11월 말 야심한 밤 복천동 22호 고분 발굴 현장. 무덤의 뚜껑돌(개석·蓋石)들 사이에 박힌 돌멩이 하나를 조심스레 빼낸 뒤 손전등을 비춰 보던 김두철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동행한 신경철 당시 부산대 조교(현 부산대 명예교수)와 조영제 부산대박물관 학예연구원(현 경상대 교수)도 한참 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구멍 아래로 가야의 대표적 교역품이자 화폐였던 덩이쇠(철정·鐵鋌)가 마치 레일처럼 무덤 바닥에 줄지어 깔려 있었다. 굽다리 접시(고배·高杯)와 그릇받침(기대·器臺) 등 각종 제의용 토기들도 잔뜩 쌓여 있었다. 김두철의 회고. “어둠 속에서 아릿하게 보이던 가야무덤은 그저 신비하단 말밖에는…. 잔영이 오래 남았는지 그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날 낮 발굴팀은 내부를 아주 잠깐 볼 수 있었다. 무덤 뚜껑돌을 덮고 있는 진흙을 꽃삽으로 긁어낼 때 돌멩이 하나가 툭 떨어지면서 살짝 구멍이 난 것. 주변 인부들을 의식해 발견 사실을 비밀로 해두고 조사원들만 야간에 따로 모인 것이다.
○ 두근두근 ‘덮개돌’ 들어낸 순간
1980년 복천동 고분 발굴현장에서 작업자들이 3t 무게의 무덤 덮개돌을 도르래로 들어올리고 있다. 부산대박물관 제공
복천동 11호분 안에서 발견된 ‘금동관’.
복천동 11호 고분 옆 부곽(10호분)에서 출토된 ‘말투구(마주)’.부산=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