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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문화유산 답사기]무왕의 꿈 미륵사지를 기다리며
글쓴이 tntv 등록일 [2017.04.28]



무왕의 꿈 미륵사지를 기다리며

2017.04.22. 12:20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보이는 메인 문화유산 사진 중 노을에 잠겨있는 아름다운 석탑 사진을 기억하시나요? 바로 국보 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입니다. 전북 익산 금마면에 위치한 미륵사지는 601년 백제 무왕 대에 창건되었다고 여겨지는 백제 최대의 사찰입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백제 무왕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서동과 선화공주의 설화의 주인공이죠! 기사의 제목을 '미륵사지를 기다리며' 라고 한 이유는, 미륵사지는 현재 긴 보수와 발굴조사의 대장정을 거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륵사지 전경 ⓒ 국립 미륵사지 유물 전시관 홈페이지

  미륵사는 현재는 서탑과 당간지주(깃대를 지탱하기 위해 당간 옆에 세운 기둥)만이 남아있기에 '미륵사지'라고 불립니다. 미륵사지의 조사는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지속적해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미륵사지의 발굴과 복원의 역사는 한국 고고학의 역사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백제의 불교 문화와 미술사, 고고학적 발굴과 복원의 성과 등을 내면서 한국의 불교, 고고학, 미술사학, 건축학 등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유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우리에게 백제의 탑으로 친숙한 미륵사지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복원 중인 미륵사지 석탑 현장 ⓒ 홍승연

  초봄에 방문한 미륵사지 석탑은 일부만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미륵사의 모습은 현재 잠시 보수공사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미륵사지의 석탑에 대한 조사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루어졌으나, 해방 후 정부 주도로 동탑지를 시작으로 하여 본격적인 발굴 및 복원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00년대 이전의 미륵사지 석탑은 기존 재료와 복원 재료와의 부조화 등으로 인해 취약하고 조악한 복원 상태를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붕괴할 가능성까지 거론됨에 따라서 1999년 국가 문화재 위원회로부터 재복원 사업이 진행 중입니다. 미륵사의 복원은 2017년 7월 중에 석탑 6층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사진으로 보는 미륵사지 석탑 (국립 미륵사지 유물 전시관) ⓒ 홍승연

  미륵사지의 발굴조사와 2만여 점의 출토 유물을 통해서 그 특유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백제가 가람배치를 수용했으나 기존 목탑 대신 중앙 목탑의 동서에 석탑을 건축했다는 점에서 매우 특수합니다. 하나의 원(院)에 금당 하나와 탑 하나를 짝지어서 세 곳에 나란히 놓은 독특한 배치였고, 가장 큰 목탑을 중심으로 양옆에 9층에 이르는 석탑이 있었다고 추정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국보 11호 미륵사지 석탑은 그 구조에 있던 6층 서탑입니다! 현재 복원중인 미륵사지 서탑 바로 옆에는 모조 미륵사 석탑이 풍경 소리와 함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모조 석탑임에도 불구하고 그 규모와 형식은 백제의 불교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현재는 볼 수 없는 미륵사지 석탑 ⓒ 홍승연

  <삼국유사>에 의하면 미륵사는 선화공주의 요청으로 지명법사의 도움을 받아 용화산 앞 큰 연못을 메워서 세워졌습니다. 미륵사의 건물지는 땅에서 나오는 습기를 막기 위해 석조기둥으로 건물을 떠받친 공법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문헌을 통해 보았을 때, 풍부한 건축 지식을 지닌 지명법사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네요.

미륵사지 전경 ⓒ 국립 미륵사지 유물 전시관 홈페이지

   미륵사지 복원 및 발굴 현장 바로 옆에는 국립미륵사지 유물 전시관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미륵사의 발굴 역사와 백제의 발전된 불교 문화의 수준을 보여주는 유물들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제시되어있습니다. 발견된 유물로는 화려한 장신구, 유리, 진주, 향로, 도기 등이 있었습니다.

출토 유물 (장식품과 유리) ⓒ 홍승연

  미륵사지에서 발굴된 2만여 점의 유물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심초석 안에서 발견된 사리병과 봉안 기록이 적혀있는 금판이라고 생각됩니다. 석탑 해체 과정 중에 발견된 사리장엄구는 현재는 백제 세계유산 등재 기념으로 전국의 박물관에 순회 전시를 돌고 있어서 아쉽게도 볼 수 없었습니다. 사리병의 양식은 6세기 부여 왕흥사지에서 발견된 사리병을 계승하고 있으며, 수나라의 사리함 문양 제작 기술을 독창적으로 계승하고 있어 미술사적인 의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사리봉영기에 미륵사를 건립한 것이 백제 대귀족 좌평 사택적덕의 딸인 사택왕후라고 기록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륵사의 창건 설화로 알려져 있었던 삼국유사의 기록과 달랐습니다. 즉 미륵사가 무왕의 왕비 선화 공주에 의해 건립되었다는 견해와 다르므로, 이에 대해서 선화공주의 실재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미륵사의 건립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발굴 결과에 따라 다양한 가능성이 추가로 제기될 것으로 보입니다.

미륵사 출토 사리장엄구 ⓒ 문화재청 홈페이지

  미륵사지는 한국의 고고학, 역사학, 미술사학, 불교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서 큰 의의를 가지는 유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현재 미륵사지 석탑은 복원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본래의 늠름하고 장엄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잠시 기다려야 하지만, 무사히 완전하게 복원된 미륵사지 석탑의 모습을 기대해보겠습니다. 

<출처>

국립 미륵사지 유물 전시관 http://iksan.museum.go.kr/home/
문화재청 http://www.cha.go.kr/cha/idx/Index.do?mn=NS_01
문화재청,「다시 태어나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복원 공사 착수」, 『문화재청』 2013.

<제9기 문화재청 대학생 기자단 홍승연 기자(stian9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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