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방송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홈으로 | 즐겨찾기등록 |  +관련사이트 
문화재방송 한국 " Since 2008. 2. 1 "
[공지]왼쪽 상단 VJ 金鐘文을 클릭하시면 50 여 년 전 KBS 기자로 활동하던 당시의 영상과 1인 5역으로 제작, KBS 1TV에 방송됐던 프로그램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 왼 쪽 아래의 유튜브 바로가기를 클릭하시면 문화재 관련 동영상을 더 많이 보실 수 있습니다. [문화재방송 캠페인]선조들의 숨결 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hudownwbe wojodown nuebfile monjdown yesnkdown lpmedown jneepudw mndownfile bafdownco yabiqedown amehdown fadowntero evnhdown
HOME >
문화재뉴스 >
무형문화재 >
유형문화재 >
기타문화재 >
영상문화 >
역사기행 >
유네스코세계유산 >
문화재연감 >
유튜브 바로가기 >
PageNo : 01
제 목 '군함도' 뉴욕 타임스퀘어 광고 사진 오류...일본인들에게 탄광이란?
글쓴이 tntv 등록일 [2017.07.27]



'군함도' 뉴욕 타임스퀘어 광고 사진 오류...일본인들에게 탄광이란?

글 | 신상목 전 외교관/일식당 운영

본문이미지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옥외 전광판을 통해 광고된 ‘군함도의 진실’ 영상./ 유투브 캡쳐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옥외 전광판의 ‘군함도의 진실’이란 홍보 영상 속 탄을 캐는 노동자가 강제 징용된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서 모라는 사람의 뉴욕 타임스퀘어 광고 사진 오류에 대해,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하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 많다. 석탄을 캐는 탄광 이야기는 일본인들에게는 정말로 민족의 애환을 담은 근대화 스토리이다.
 
조선시대에 탄광이 있었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는가? 금은동광 기록은 있어도 탄광 기록이 있는가?  석탄이 최중요 지하자원이 되고 자본가들이 미친 듯이 탄광을 찾아 나선 것은 18세기 후반 이후이다. 증기기관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일본은 19세기 후반 메이지시대에 들어서서 재벌들이 탄광을 미친 듯이 개발한다. 검은 다이아몬드였다. 미쓰이, 미츠비시, 스미토모... 석탄 산업에 뛰어들지 않은 재벌이 없었다. 도시노동자, 농어촌 노동자가 미친듯이 탄광으로 빨려들어갔다. 인권, 노동권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 돈 좀 후하게 준다 하니 탄광에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대신, 정말로 열악한 노동환경이었다. 현대인들은 절대로 그 환경에서 단 1시간도 일을 못한다. 갱도를 파고, 버팀목을 대고, 발파를 하고... 이걸 다 사람 손으로 했다. 그러다 갱도가 무너져 돌에 깔려 죽고, 공기가 부족해 숨이 막혀 죽고. 온도가 너무 높아 옷을 입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남녀 모두 훈도시 한 장 걸치고 벌거벗고 일했다. 죽음을 불사하고 그런 노동을 한 이유는 하나다. 돈을 후하게 주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수년 만에 목돈을 쥘 수 있는 노동 공간은 거기밖에 없었다. 
 
일본인들에게 탄광은 근대화의 기초이지만, 눈물 범벅이의 애환의 역사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탄광 스토리에 익숙하다. 탄광마다 기념관을 짓고 희생된 자의 넋을 기리는 추도 공간을 마련하고, 무엇보다 국민들이 그 기억을 잊지 않도록 감사와 안타까움과 애도의 마음을 후세에 전한다.
 
조선의 탄광 개발은 열강의 침투로 시작되었다. 19세기말 프랑스, 러시아, 독일 등에 석탄채굴권을 이권으로 팔면서 시작된 역사이다. 노동권이 전무하던 시절에 자본가에 의해 개발되는 광산이니 얼마나 노동환경이 열악했겠는가. 일본에 의해 합병된 이후 조선광업령이 내려지고 총독부의 행정지도가 미치면서 그나마 근로기준이 조금씩 나아졌다.
 
2차대전 말기에 자본가가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탄광 노동을 강요하고 억압하고 착취했다. 조선인들도 당했지만 일본인도 처지는 마찬가지였다. 전쟁 말기 탄광에 조선인들이 많은 이유는 일본인들이 다 전쟁터에 끌려갔기 때문이다.
 
탄광이란 본래 일하는 환경이 좋을 수가 없는 곳이다. 해방이 되어 독립국이 된 다음에는 사정이 바뀌었을까? 오죽하면 막장인생이라는 말이 있을까, 태백, 사북 지역에서의 열악한 광부 노동과 그에 따른 폭동(항쟁?)은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한국, 일본이 아니라 전세계 어디도 마찬가지이다. 왜 독일이 한국에서 탄광노동자를 수입해 갔을까?
 
모든 역사의 모순 또는 갈등, 그 과정에서의 변증법적 경로를 반일(反日)로 떡칠을 해버린다. 그렇게 역사를 봐서 미래를 제대로 열어갈 수 있겠는가?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등록일 : 2017-07-26 16:15   |  수정일 : 2017-07-26 16:45

원문보기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3&mcate=M1003&nNewsNumb=20170725567&nidx=25568


 

주소: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석바위로 53번길 17 | 이메일:tntvkr@nate.com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인천 0101529' 등록
Copyright(c)tntv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