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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문화유산 답사기]너른 바위와 거칠 것 없는 폭포, 그 안에 쉼이 깃들다...명승 제37호...
글쓴이 tntv 등록일 [2017.08.03]
너른 바위와 거칠 것 없는 폭포, 그 안에 쉼이 깃들다 - 명승 제37호 동해 무릉계곡  진짜배기 여름이 왔다. 공기의 무게도 흐름도 이전의 것과 다르다. 속절없이 흐르는 땀을 훔칠 때마다 후끈한 발끝은 얼음처럼 시린계곡물의 입수를 꿈꾼다. 꾸밈없이 순박한 얼굴로 우리를 반길 동해 산골로 떠나본다. 깊은 산세에 몸을 감추고 있던 무릉계곡에서 신선놀음 해보는 것은 어떨까? 수백 년 전 이곳의 풍광에 취해 시를 읊었을 선조의 여흥에 따라 우리도 느릿한 쉼을 즐길 참이다. 쌍폭포 전경

01_양사언의 석각 02_금란정 03_무릉반석 04_삼화사의 십이지신상
수많은 선인들이 남기고 간 감상의 흔적
계곡 초입에 들어서자 너른 바위 위에 호쾌하게 써 내려간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조선 전기 문인이자 서예가였던 양사언이 강릉부사로 재직했을 때 쓴 석각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마모되자 이를 보존하기 위해 모형 석각을 제작해 두었다.

무릉선원 武陵仙源 신선이 노닐던 이 세상의 별천지중대천석 中臺泉石 물과 동리 부둥켜서 잉태한 오묘한 대자연에서 두타동천 頭陀洞天 잠시 세속의 탐욕을 버리니 수행의 길이 열리네. - 봉래 양사언의 석각
석각에 새겨진 글귀를 곱씹으며 ‘우리가 버려야 할 탐욕은 무엇인가’에 대해 골몰할 때, 첫 쉼터 ‘금란정’이 길손을 반긴다. 1910년 한일합병으로 향교가 폐지되자 이 고장의 선비들은 나라를 잃은 울분을 담아 금란계를 조직해 기념 정각을 세우려 했다. 하지만 일제의 반발로 실패하게 됐고 이를 후대 자손들이 이뤄, 지금의 자리에 금란정을 세우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는 봄과 가을에 선인을 위한 제사와 시회(詩會)를 열고 있다.
금란정을 지나면 무릉계곡의 빼놓을 수 없는 장관, 무릉반석이 펼쳐진다. 1,500평에 이르는 반석은 수백 명이 앉아 쉴 수 있을 만큼 널찍한 규모를 자랑한다. 바위가 많지만 평평한 편이라 걷기에도 안전하고, 햇빛으로 바위가 따뜻해진 덕에 물놀이하고 앉아 쉬기에도 제격이다. 유유자적하며 물소리와 바람을 즐기는 것도 운치 있지만, 이곳을 스쳐 지나갔던 문인들의 수많은 글귀는 세월의 흔적을 되짚게 하는 또 하나의 재미이다. 매월당 김시습을 비롯한 조선의 명필가와 묵객들이 새긴 석각의 뜻을 다 헤아릴 수는 없어도, 모두가 옛 선비가 되어 무릉도원에 취해본다. 무릉도원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경치 덕분인지 고려시대 동안거사 이승휴 역시 이곳에 터를 두고 살며 『제왕운기』를 저술하기도 했단다.
등산로에 위치한 김홍도의 작품
<금강사군첩>의 ‘무릉계’에는 무릉반석 위에서 풍류를 즐기는 선비가 묘사되어 있어 이 공간을 더욱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산세와 소나무 한 그루까지 상세히 그려져 있어 세월의 변화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05_병풍바위 06_거센 물살의 용추폭포
기암괴석과 물줄기가 완성한 풍경
무릉반석을 지나 계곡물을 따라 오르면 두타산의 대표적인 천년고찰 삼화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입구에는 십이지신상이 세워져 있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발길을 세우고는 석상의 생김을 보느라,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인다. 1,4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삼화사는 임진왜란과 구한말 의병운동 때 왜병의 공격으로 소실되면서 여러 번 중건한 바 있다. 대웅전에 가만히 앉아 은은하게 울리는 풍경소리에 동요되다 보면 일상의 일들로 어지러웠던 마음이 일순간 고요해짐을 경험할 수 있다. 절 내 있는 약수물인 달달한 ‘감로수’로 목까지 축이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상태로 다시금 길에 오른다. 자연이 빚어낸 기암괴석과 물줄기가 만드는 수려한 풍광과 마주할 차례다. 삼화사를 지나자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란 다소 과장된 문구로 학소대부터 용추계곡까지의 원시적 풍경을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물이 옥처럼 맑다고 해서 지어진 ‘옥류동’은 아이들이 놀기에도 적당할 만큼 수심이 깊지 않고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면 병풍바위와 장군바위가 위엄을 자랑한다. 예술작품에 가까운 병풍바위는 누군가 조각해 놓은 듯 암석이 수직으로 곧게 늘어서 있어 좌중을 압도하고, 장군바위는 거친 기암괴석의 웅장함이 용맹스런 장군의 얼굴을 닮았다.
화강암 절벽과 수목이 무성한 선녀탕에 다다르자 세찬 폭포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바위 벽에서 두 줄기의 폭포수가 쏟아져 나오는 쌍폭포 때문이다. 시원스런 물줄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더위를 잊게 만든다.
몇 걸음만 더 오르면 무릉계곡의 마지막 지점, 용추폭포. 상중하 3단으로 떨어지는 폭포 아래에는 깊은 소(沼)가 펼쳐진다. 무릉반석과 기암괴석, 여러 모양의 소, 폭포까지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지는 무릉계곡. 걷는 내내 다람쥐가 벗을 해줄 만큼 사람과 자연이 친근하게 어우러지는 곳이다. 이 경치 좋은 길이 수백 년 전부터 서울을 오가던 옛길이라 하니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선조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글‧최은서 사진‧안지섭
출처:월간 문화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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