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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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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 빠진 치아 덕분에 발견한 새로운 기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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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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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tv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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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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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든 작든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역할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디에서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떤 자리든 그에 걸맞은 사람들이 이미 배치되어 있어서 자신은 사회에 불필요한 존재라는 것이지요. 이런 삶을 요즘시대에는 잉여인간이라 하더군요. 그 말 속에서 이미 나타난 것처럼, 경쟁에서 뒤처지고 낙오돼서 종국에는 사회의 어디에서도 쓸모가 없다고 지칭하는 인간형입니다. 그렇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은 정말 쓸모가 없는 걸까요? 60세를 훌쩍 넘겼으니 이곳저곳 늙어가는 것이 이치이겠죠. 하루는 앞니 하나가 빠져버렸습니다. 앞니 하나가 없으면 아무래도 입 주변이 내려앉고 발음도 새며 얼굴 모양도 조금 이지러지기 마련입니다. 저는 거울에서 그런 모습을 발견하고 눈물을 쏟을 정도로 깜짝 놀랐습니다. 나이가 꽤 들어도 몸의 노쇠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을 처음 접할 때 누구나 갖게 될 서글픔입니다. 먹고 마시는 데에 불편한 것은 그렇다 쳐도, 평생 책을 읽어온 선비인 제가 발음도 새고 목소리 도 탁해지니 다시는 낭랑하게 음송을 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얼마나 실망스러웠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마음을 다시 고쳐먹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람이 태어나서 젖니가 났다가 그 젖니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면 우리는 평생 그 치아를 가지고 삽니다. 나이가 들면 그 치아가 빠지고, 거기서 더 세월이 흐르면 새로운 치아가 다시 난다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물론 노쇠해서 치아가 빠진 곳에 새로운 치아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든 치아의 생애를 생각해보면 빠진 치아는 장수를 누린 셈입니다. 태어나면 죽고, 그 죽은 자리에 새로운 생명이 둥지를 트는 것은 세상의 이치가 아닐까요. 생각하기에 따라 치아가 빠진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었던 겁니다. 이때 깨달은 것을 글로 적어봤습니다.
어떻습니까. 자기 위안을 위한 합리화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온갖 음식과 쾌락에 탐닉한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몸에 병이라도 나면 일부러 그것들을 끊습니다. 생활이 달라져서 불편한 것도 잠시, 어느새 내 몸이 좋아지고 삶이 윤택해집니다. 이런 경험은 누구나 한 적이 있을 겁니다. 치아 하나만 빠져도 온갖 상념이 물밀 듯 밀려오는데, 학교를 졸업한 뒤 뜻한 바를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지내는 처지라면 번민과 갈등 속에서 살았을 겁니다. 어쩌면 제가 짐작하지도 못할 정도의 자기모멸감으로 그 세월을 견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것 또한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태백이 일찍이 갈파한 것처럼, “하늘이 나와 같은 재목을 만들어냈다면 반드시 쓰임새가 있을 것(天生我材必有用)”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시간이 충분하니 자신에게 마음을 쏟을 기회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도 자존감이 떨어진다면 자기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며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찬찬히 돌아본다면 분명 자신의 재능을 쓸 곳이 보이리라 여겨집니다. 치아가 빠진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빠진 치아 때문에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기쁨에 초점을 맞춘 제 이야기처럼 말이지요. 그대는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때문에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즐거움을 이야기해 보는 건 어떨까요. 자중자애(自重自愛)하시기를 간곡히 권합니다.
글‧김풍기(강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출처:월간 문화재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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