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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의 성은 김(金)씨가 아니라 전(全)씨"
글쓴이 tntv 등록일 [2017.08.17]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의 성은 김(金)씨가 아니라 전(全)

씨"

김병헌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오는 18일 발표 예정 논문에서 주장

글 | 이상흔 조선pu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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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에 있는 인각사 보각국존비. / 사진= 김병헌 제공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저자 일연(一然)의 성(姓)이 기존에 알려진 김(金)씨가 아닌 전(全)씨라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동국대 동국역사문화연구소 김병헌(金柄憲) 연구위원은 8월 18일 (사)한국교수불자연합회가 주체한 학술회에서 발표할 ‘보각국존비의 집자 특성과 일연의 속성(俗姓) 고증’이라는 논문에서 이 같이 주장하였다.
 
김 연구위원의 연구 결과가 사실로 굳어질 경우 관련 학계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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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헌(金柄憲) 동국대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삼국유사의 편찬자로 널리 알려진 일연(一然:1206~1289)에 대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간행 <보각국사비명> 등을 비롯한 국내 모든 학술서와 자료에는 金氏(김씨)로 소개되어 있다.
 
일연의 속성이 김씨로 알려진 근거는 그의 행적을 기록한 ‘보각국존비(普覺國尊碑)’에 따른 것이다. 이 비석은 현재 일연이 마지막 5년을 주지로 머물렀던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인각사(麟角寺)에 있으나 비석은 파손되고 탁본이 남아있다.
 
이 비는 일연이 입적한 후 왕명에 의해 비명(碑銘)이 지어졌으며, 동진(東晋)의 명필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를 집자하여 사후 6년 만인 1295년 비석을 완성했다. 이후 비석은 여러 전화(戰禍)를 비롯한 900여 년의 풍파를 겪으며 산산조각이 나 대부분 사라지고 현재 겨우 두 조각만 남아 비각 안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글씨 덕분에 이 비석의 전면은 탁본과 함께 이를 옮겨 적은 석문(釋文)이 전해지고 있다.
 
그동안 ‘보각국존비’ 탁본의 비문과 비명을 해석하면서 일연의 성을 ‘金’씨로 읽어 온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김병헌 연구위원은 논문에서 “왕희지 글씨에 대한 고증을 한 결과 비문에 나타난 일연의 성씨는 ‘金’이 아니라 ‘全’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이 ‘全’씨로 확신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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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선사의 성을 알 수 있는 이 부분에 대해 지금까지는
 
“國尊諱見明, 字晦然, 後易名一然. 俗姓金氏, 慶州章山郡人也.(국존의 휘는 견명이요 자는 회연이며 후에 일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속성은 김씨로 경주 장산 사람이다.)”
 
라고 읽고 ‘속성 金씨’라 하였으나, 보각국존비에 있는 나머지 ‘金’자와 왕희지의 삼장성교서의 ‘金’자와 비교했을 때도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였다.(그림 2, 그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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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보각국존비에는 오른쪽 그림과 같이 ⓵번 글자와 유사한 형태의 글자가 한 번 더 나오는데 지금까지는 이 글자를 모두 ‘令(령)’으로 읽었다.(그림 4)
 
그래서, ‘判觀候署事令倜(판관후서사영척)’이라 읽고, ‘관후서 판사 영척’이라 해석하였다고 한다. 영척은 인명(人名)이다. 하지만 이 글자도 보각국존비와 삼장성교서에 나오는 ‘令’자와 비교해보면 마지막 부분이 달라서 ‘令’자가 아니라는 것이다.(그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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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①번 글자와 ②번 글자를 겹쳐보면 외형이 일치한다.(그림 6) 이에 따라 ①번과 ②번은 동일한 글자로 바로 ‘全’자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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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자를 ‘全’자로 확정할 수 있는 근거는 아래 그림에서 자형의 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집자의 대본으로 삼은 <삼장성교서>에도 동일한 형태로 등장한다.(그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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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①번 글자와 ②번 글자를 삼장성교서 글자인 ③번 글자와 겹쳐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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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자로 알려진 ①번 글자와 ③번 삼장서의 ‘全’자를 겹쳐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전체적 형태는 거의 일치한다.(그림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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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令’자로 알려진 ②번 글자도 마찬가지로 일치한다. 비교에 의해 ①번, ②번, ③번 글자는 모두 동일한 글자로 ‘全’자임이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그동안 ‘金’씨로 알고 있던 일연(一然)의 속성(俗姓)은 ‘全’씨임이 확인되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判觀候署事令倜’도 ‘令倜’도 ‘全倜’으로 수정하여 ‘관후서 판서 전척’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김병헌 연구위원은 현재 <조선pub>에 우리 국사 교과서에서 잘못된 서술을 바로 잡는 작업의 일환으로 ‘김병헌의 다시 짚어보는 우리 역사’를 연재 중이다. 그는 이 연재에서 그동안 잡기(雜記)에 지나지 않는 자료가 교과서에 ‘사발통문(沙鉢通文)’으로 소개되고 있는 점이나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 당시의 통계 자료인 조선총독부의 「조선미곡요람」의 오류를 바로잡는 등의 성과를 이루었다.
 
그는 일연의 성씨 연구 성과에 대해 “평소 금석문 자료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중, 보각국존비 탁본 자료의 이미지 복원을 하는 과정에서 이 글자의 오독(誤讀)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특히, 취미로 서예 공부를 하면서 왕희지의 행서를 익혔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며, “이번 오류를 바로 잡으면서 우리 역사 연구에서 한문도 반드시 알아야 하지만, 좀 더 깊은 연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서예까지 익혀두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 교수불자연합회 전화(02-720-6618)
등록일 : 2017-08-16 17:41   |  수정일 : 2017-08-16 19:25

원문보기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1&mcate=M1004&nNewsNumb=20170825800&nidx=25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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