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역사적 사실에는 차이가 있다. 영화와 난중일기를 통해 몇 가지 진실과 오해를 짚어보자.
첫째, 아직도 많은 이들이 명량해전과 관련해서 역사적 사실과 설화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그중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이 ‘철쇄설(鐵鎖說 : 명량해전 당시 쇠사슬을 걸어서 적선 수백 척을 깨뜨렸다는 설)’이다. 단언컨대 당시 철쇄설은 없었다. 영화에서는 이 철쇄설을 단번에 넘어섰다는 것이다.
철쇄설은 설화일 뿐 역사적 사실이 아님에도 TV 프로그램에서 ‘철쇄설’을 앵무새처럼 거듭하면서 국민은 이 실상에 대해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 “명량”은 십수 년 동안 정리되지 못했던 ‘철쇄설’을 단번에 정리해 버렸다.
둘째, 영화에서 묘사한 것처럼 조선 수군의 두려움은 사실이었다. 명량해전보다 2개월 전 1597년 7월 16일, 원균이 거느린 조선 수군은 일본 수군에게 궤멸적인 대패를 당했다. 10여 척의 병선을 제외한 모든 세력을 잃었다. 통제사는 이순신으로 바뀌었지만 불과 두 달 뒤 펼쳐진 명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느꼈을 ‘두려움’은 영화에 보이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셋째, 영화에 포함된 주변 백성의 지원에 관한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명량 주변의 많은 백성이 자원해서 군량과 여러 가지 군수품을 바쳤고, 실제 명량해전에 참전해서 전사한 이들도 있었다. 다만 영화에서 좀 더 스케일을 키워서 통제사 이순신이 세력을 강한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동원했던 피난선 100여 척도 늘여 세우고 백성 수천 명 이상 더 동원해도 되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넷째, 그 외에 해전이 펼쳐진 순서 즉 최초에 이순신의 대장선만이 전투에 나서고, 다음으로 김응함과 안위의 전선이 나오고, 마지막에 나머지 10척이 함께 전투에 임한 것은 난중일기(亂中日記)와 같은 내용이다. 그리고 항왜(降倭) 준사, 정탐꾼 임준영, 적장 구루시마 미치후사 등은 명량해전과 관련된 실존 인물들이다. 즉, 소소한 역사적 사실들을 영화의 구성 재료로 잘 활용했다.
하지만 ‘명량’은 영화일 뿐 역사는 아니다.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참전 척수, 해전 장소, 해전 전술(백병전이나 충파?), 무기체계(화기의 성능) 등은 역사적 사실과 동떨어진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영화적 흥미를 더해주는 픽션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