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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명당은 어떤 땅일까?… 정말 명당이 있을까?...정승 5명, 대제학 7명으로 발복한 조...
글쓴이 tntv 등록일 [2017.08.29]



명당은 어떤 땅일까?… 정말 명당이 있을까?

정승 5명, 대제학 7명으로 발복한 조선 8대 명당 순창 ‘김극유 묘’ 놓고 격론

글 | 박정원 월간산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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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사풍수문화연구회 회원들은 조선 8대 명당 중에 하나로 꼽히는 순창 김극유묘지를 놓고 “용맥을 받았다” “꺾였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풍수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생태학자, 지형학자, 지질학자, 건축학자, 정원(庭園)학자, 산림학자, 정신분석의학자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동아시아풍수문화연구회 일행들이 조선 8대 명당으로 꼽히는 김극유(金克忸)의 묘소로 향했다. 사회는 풍수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진삼 박사가 맡았다.
 
김극유의 묘가 어떻게 조선 8대 명당이 됐을까? 우선 명당을 잡아 발복(發福)한 그의 가문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극유(1436~1496)는 광산 김 씨로서 조선 초기 문신으로 사간원(司諫院)의 대사간(大司諫)을 역임했다. 그의 후손이 사계(沙溪)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 등이 있다. 이들은 사후 해동 18현에 추앙되고, 한 가문에서 2명이나 문묘에 배향될 정도로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이 묘지를 쓴 이후 정승 5명, 대제학 7명, 왕비(숙종비 인경왕후) 1명 등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가문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른바 전형적인 음택 발복을 일으킨 터라고 풍수가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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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광디지털대학 조인철 교수(왼쪽 두 번째)가 김극유묘의 안산과 좌청룡 우백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서울대 박수진 교수, 그 옆은 최원석 초대 회장.

전래하는 풍수설화에 따르면, ‘말 명당’인 이 터는 원래 그의 장인인 함양 박씨(咸陽 朴氏) 박감찰이 묻힐 땅이었다고 한다. 박감찰 삼형제는 모두 풍수지리에 능통한 도사들이었다고 전한다. 이들은 각자 자신들이 죽으면 묻힐 터를 잡기로 하고, 큰형은 박감찰은 이곳에, 둘째는 임실 갈담의 잉어명당을, 셋째는 임실 가실마을 앞의 금계포란형을 잡았다고 한다.
 
그런데 박감찰에게는 외동딸만 있었고 아들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제사를 지낼 사위에게 좋은 터를 양보했다. 박감찰은 사위가 좋은 자리에 들어가 외손이 번창하면 자신의 제사는 당연히 받들어 줄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자신은 사위 뒤에 묻혔다. 이후 김극유의 후손들이 불같이 일어났다고 한다. 일종의 외손발복지지(外孫發福之地)에 해당한다. 오늘날 광산 김씨는 시제를 지낼 때마다 함양 박씨에게 먼저 감사의 제사를 지낸다. 반면 함양 박씨 문중에서는 이렇게 좋은 자리를 그들 문중에서 누구라도 썼다면 자신들이 영광을 누렸을 텐데 하고 서운해 한다는 얘기가 전한다.
 
대구한의대 김병우 사학과 교수가 잠시 김극유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조선 초기 성종 전후까지는 남녀차별이나 남아선호사상이 전혀 없어 집안에 남자가 없으면 당연히 딸이 상속받고 제사도 지냈다”고 설명했다. “이는 경국대전 등 조선 초기의 기록을 보면 남녀평등에 관한 내용들이 상세히 나온다”고 말했다. “따라서 김극유는 처가 재산과 가문으로 성장한 전형적인 조선유학자”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김 교수는 “김극유의 후손인 김집이 권세를 떨치면서 풍수도 성행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묘지는 능선에서 내려온 줄기를 따라 끝자락에 나란히 세 기가 있다. 옆으로 내려간 또 다른 능선에도 묘가 나란히 몇 기 있다. 김극유의 묘비에는 ‘사간원 대사간’이란 글자가 보인다. 바로 뒤는 김극유의 부인인 함양 박씨의 묘이고, 제일 뒤에 이곳 터를 점지한 장인 박감찰의 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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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극유의 묘지 옆으로 뻗은 능선에서도 길게 묘지가 조성했다.

주변을 살피던 서울대 박수진 지리학과 교수는 “이 터가 명당으로 보입니까?”라며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영남과 호남은 방문할 때마다 지형의 차이를 많이 느낀다. 노령산맥을 중심으로 남과 북이 완전 대립된 상태에서 1억여년 전 부딪히면서 지각변동이 매우 심했던 것 같다. 지질학적으로 매우 복잡하다. 퇴적암․변성암 계열의 암석이 가지런하지 못하다. 지형이 아직 자기조직화가 안 된 상태인 듯하다. 지형학적으로는 지형이 불안한 상태이고, 풍수적으로는 탈살이 안 된 상태로 보인다.”
 
순간 다른 생각이 번쩍 떠올랐다. 한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호남이 전국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그 다음으로 수도권인 반면 대구․경북이 가장 보수적이며 부산․경남과 충청 강원은 그 중간에 위치한다고 밝힌 적 있다. 이와 관련 이중환의 <택리지>에 ‘사람의 성격은 그 사람이 사는 땅에 의해 결정된다’는 구절이 연상됐다. 즉 지형 전문가인 박 교수가 지적한 대로 호남땅은 상당히 복잡하고 지각변동이 심해서 이러한 영향이 이 지역 사람들의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하고 여겨졌다. 또한 호남의 산들은 높지는 않지만 험해서 아직 호남정맥 종주길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잠시 딴 생각에 빠져 있을 즈음 다른 교수는 “이곳은 용맥은 좋아 보이지만 백호가 이쪽을 찌르고 있고, 청룡도 좋은 편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다시 박 교수가 받아서 “상대적으로 전라도는 용맥을 따라 형성된 묘지가 많아 보인다. 이는 지형적 특수성 때문에 그런지 묘지의 지역성 때문에 그런지 한 번 조사해봐야겠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그런 묘지는 수도권 지역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맞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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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동아시아풍수문화연구회 회원들이 김극유에 대해 설명하는 김병우 교수를 에워싸고 듣고 있다.

대구가톨릭대 양윤석 교수도 “이곳이 명당이 나올만한 곳인가?”라며 다시 문제를 제기했다. “내룡이 내려오다 7~8부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꺾였다. 내룡 자체를 재검토해서 살펴봐야 한다. 기본적으로 장풍이 안 되질 않는가.” 실제로 능선에는 바람이 세게 불었다. 이에 사회를 보던 이진삼 박사가 “용맥이 위에서 내려오는 게 보이질 않는가. 마지막 묘 10m여 뒤로 용이 줄어들면서 굉장히 강한 용이 다시 솟아오르고 있다. 이는 결인속기처다. 넘치는 기를 잘 정제해서 혈을 토해내기 위해 목처럼 조인 모습이다. 지각이 꺾여 나가는 재혈도 매우 강하다. 재혈이 있으면 바람도 문제 안 된다”고 대응했다. 대구가톨릭대 김병우 교수도 “내룡이 아니다. 실제 지형은 풍수적으로 안 맞는 부분이 상당수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다른 교수는 다시 “풍수를 연역적으로 해석한 측면도 있지 않나 여겨진다. 이 지형이 풍수적으로 문제가 있어도 후세가 발복하면 그에 맞춰서 해석한 측면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박수진 교수는 “다음에는 답사 나가는 장소의 지도를 현장에서 펼쳐놓고 실제 용이 내려왔는지, 다른 곳으로 흘러갔는지 보면서 해야겠다”고 말하면서 핸드폰 구글 지도를 꺼냈다. 이어 “이 지역은 봉고동일성(비슷한 높이의 봉우리가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모습)도 적용하기 곤란하다. 산줄기는 명확히 발달해 있지만 지각의 융기속도는 상당히 빨랐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전체 형태가 잘 갖춰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다시 다른 교수가 나섰다. “변화 속에 더 발복할 여지가 많다고 본다. 완전히 안정화 됐으면 기운이 다 빠져버릴 수 있다. 기운이 계속 살아 있는 면백 상태일 수 있다. 오른쪽은 내려오는 능선 얼굴이 험하다. 반면 저 멀리 앞에 보이는 봉우리 3개는 전형적인 문필봉(인물이 많이 난다고 알려진 봉우리)으로 보인다. 이곳은 좁은 의미에서는 장풍이 안 되지만 넓게 보면 가장 잘 되는 곳으로 볼 수도 있다.”
 
사실 바로 앞 안산도 정상부분에 바위를 드러내고 있다. 보통 풍수에서 안산에 바위를 드러내면 흉살(凶殺)로 본다. 순탄치 않다. 이를 인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인생 자체가 순탄치 않은 것 아닌가라고 본다. 더욱이 높은 벼슬에 오르는 것만 해도 얼마나 녹록치 않을 것인가. 안산의 오른쪽으로는 벼슬을 재촉하는 천마사가 능선으로 흐르고 있다.
 
답사를 마치고 오는 길에 한참 상념에 빠졌다. 정말 풍수가 무엇이란 말인가. 풍수전문가들끼리도 조선 8대 명당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데 어떻게 명당을 찾을 수 있을까. 또 명당을 찾았다 한들 정말 그 땅이 명당일까 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았다. 전날 정신분석 전문의 강철중 교수가 한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명당은 우리 마음속에 최고의 가치인 조화와 균형, 완전성, 그리고 전일성인 자기의 상(像)이 투사된 것이다.”
원문보기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3&mcate=M1004&nNewsNumb=20170122703&nidx=22704&dable=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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