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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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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프로젝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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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tv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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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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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의 역사와 발견 고대 그리스, 에트루리아, 로마 문화에 이르기까지 번영했던 폼페이는 서기 69년의 지진과 서기 79년에 일어난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자연 앞에 무력한 인간의 운명을 보여준 역사적 현장이다. 이후 로마의 세베루스 황제가 폼페이 발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16세기 말 유명한 건축가였던 폰타나(Domenico Fontana)는 수로를 보수하던 중 로마 시대의 부서진 건물과 명문, 여러 개의 주화를 발견했으나 그곳이 폼페이의 일부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질 뻔했던 폼페이는 1738년 ‘두개의 시칠리아 왕국(Regno delle Due Sicilie)’의 왕이었던 디 보르보네(Carlo di Borbone)가 후원한 고고학 발굴 작업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초기 귀중품을 찾는 과정에서 체계적이지 못한 성과 중심의 발굴이 진행됐고, 우연히 로마의 저택인 빌라 데이 파피리(Villadei Papiri)가 발견되면서 폼페이 발굴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1755년 집단주택인 빌라 디 줄리아 펠리체(Villa di GiuliaFelice)와 1763년 마을의 문이었던 포르타 디 에르콜라노(Porta diErcolano), 다수의 명문(銘文)들이 발굴되면서 폼페이는 고대 로마의 삶과 예술을 전해주는 중요한 공간이 됐다. 또한 로마 건축내부가 흰색이 아니라 화려하게 채색됐다는 점도 알려져 로마 회 화사에 대한 연구도 진전되는 계기가 되었다. 위기를 맞은 폼페이 문화유산 1861년 이탈리아 통일 후에도 이전 발굴의 성과로 드러난 동시대의 강렬한 인상이 역사 연구와 발굴에 대한 후원으로 이어졌다. 특히 고고학자였던 피오렐리(Giueseppe Fiorelli)는 도시 구조를 읽으며 각 부분을 탐색했고, 단편적 지식을 유기적으로 재구성해 해석했다. 그뿐만 아니라 화산재와 마그마의 열기 속에서 타버린 내부를 석고로 채워 화산 폭발의 순간을 극적으로 재현했다. 피오렐리로 인해 지금도 폼페이는 야외 박물관처럼 펼쳐진 현장을 중심으로 관람객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후에도 추가로 건물을 발굴하고 새로운 복원 기법을 시도했지만 이는 진정한 성과라 할 수 없었다. 성과 위주로 진행된 발굴의 한계와 검증 기간이 부족했던 복원의 여파, 2차 세계 대전 중 일어난 파손과 재정적 어려움, 그리고 1980년의 지진으로 폼페이 문화유산은 위기를 맞았다. 폼페이, 정책의 전환과 사회적 공감 폼페이가 전반적으로 재건된 시기는 1950년대 전후였다. 1960년대 후반까지 경제적 난관으로 문화재 관리가 어려웠고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는 폼페이에 대한 정책이 변화한 중요한 시기였다. 이 시기 나폴리 고고학 유산을 관리하며 문화재청에서 일한, 폼페이 고고학 박물관장 마이우리(Amedeo Maiuri)와 데 프란치시스(Alfonso De Franciscis)는 문화유산 정책을 ‘발굴’에서 ‘보존’으로 선회했다. 수천 년간 화산재 속에서 전승된 사료가 발굴돼도 관리 소홀로 소실되는 모습에, 위기의식은 더욱 높아졌고 이는 후원으로 이어졌다. 이에 힘입어 폼페이는 1997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을 정도의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나폴리 문화재 관리국은 1998년 지자체와 문화재청의 재원을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관리체계를 도입했다. 그 후, 성과 위주의 단기적 발굴에서 벗어나 중장기적 기획안을 세우기 시작했다. 또한, 문화유산 관리를 후원할 수 있도록 사회적 공감대를 확장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기획했다. 2차 대전 이후 경제적 난관 속에서 임시로 진행된 바 있었던 복원은 오히려 고고학적 유적을 더 빠르게 파손시켰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관람자 중심의 참여 가능한 데이터 서비스를 바탕으로 역사적 가치의 재평가와 사회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 됐다. 의미 있는 선택! 선순환 관리 시스템 구축 2004년 ‘문화재와 경관에 대한 법령’은 고고학 발굴지에 대한 정의를 확장했다. 이 법령은 문화재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가상문화유산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계기가 됐다. 2008년 ‘나폴리와 폼페이의 고고학 유산을 위한 특별 관리국(SANP)’이 설립돼 2010년부터 ‘폼페이의 그란데 프로젝트(Grande progetto di Pompei)’가 실시됐다. 이 프로젝트로 문화유산 관리에 대한 평가, 복원·보존, 데이터 공유 등을 유기적인 사회망 속에서 소통하게 됐다. 그 결과 오늘날 문화재 관리국에서 운영하는 ‘폼페이 고고학공원’의 웹 사이트(http://www.pompeiisites.org)는 로마의 집,공공장소, 회화, 일상사, 공연, 벽화, 화산 분출 등의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스스로 동선을 기획하는 서비스도 있으며 현장에 남아있는 유적에 대한 역사적 정보를 멀티미디어나 3D로 실감 나게 접할 수 있다. 이외에도 관람자 조사를 토대로 서로 다른 목적을 지닌 관람자나 관람자 간 세대 차이를 고려해서 다국어 오디오 가이드나 전문 서적 같은 전통적 소통 방식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폼페이 고고학 박물관은 사회적 구성원들이 역사에 대해 담론을 나누고 이를 토대로 재원을 확보해, 가치를 공유하고 서비스로 다시 제공되는 순환적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가고 있다. 아직 가시적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폼페이의 시도는 사회적 소통과 공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글‧최병진(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 교수) 사진‧셔터스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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