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한의 황제 유비는 자신의 수석참모인 제갈량을 두고 “나에게 공명(孔明)이 있음은 물고기에게 물이 있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수어지교(水魚之交)라는 고사성어를 유래한 이 말은 보스와 참모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고기는 물이 없으면 살지 못하고, 물은 물고기 없이는 의미를 실현할 수 없듯이, 보스와 참모는 진정한 한 팀이 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이 연재에선 한 팀을 이루는 바로 그 과정에 주목한다. 어떻게 보스를 선택하고 참모를 선택하는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역사 속의 사례로 살펴본다.
충북 음성에 있는 양촌 권근과 그의 아들 권제와 그의 손자 권람의 3대묘소.
이런 참모는 보통 보스의 첫 번째 참모, 보스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람인 경우가 많은데, 보스의 꿈을 처음으로 이해해주고 보스와 의기투합해 첫걸음을 함께 내디딘 이래 궂은일들을 도맡는다. 재정을 담당하고 인력을 관리하는 것 등이 이 사람의 몫이다. 조직이 커지면서 새로 영입하는 참모들에 비해 특정 전문능력이 못할 수는 있으나 누구보다 보스를 가장 잘 알고, 보스의 깊은 신뢰를 받고 있는 그는 그 힘으로 조직의 안살림을 챙긴다. 보스와 참모, 참모와 참모 간의 갈등을 조율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한고조 유방의 참모 소하(蕭何)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는데, 유방이 일개 건달이었을 때부터 그를 눈여겨보았던 소하는 내정을 책임지며 유방을 황제로 만들었다. 책략을 담당했던 장량, 군사를 담당했던 한신이 걱정 없이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소하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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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의 소화, 유비의 간옹 같았던 권람
소하는 장량, 한신과 함께 ‘서한삼걸(西漢三傑)’이라 불렸고 중국 역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명재상이니 밤하늘 같은 유형의 참모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유비의 참모 간옹(簡雍)을 떠올려도 좋다. 유비와 같은 고향 사람으로 유비가 보잘 것 없는 위치였을 때부터 고락을 같이한 간옹은 참모들의 맏형이 되어 구성원들을 다독이는 역할을 했다. 개성이 강한 신하들이 유비를 중심으로 한팀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바로 간옹의 역할이 컸다.
그렇다면 조선의 세조에게 그런 참모는 누구였을까. 보통 임금의 참모는 공식적인 조직을 통한 참모다. 정승과 판서, 승지들처럼 임금을 보좌하고 조언하며 국정을 담당하는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곧 참모가 된다. 측근보다 신임하는 신하가 있을지언정 임금이 사적인 참모를 따로 두지는 않는다. 그런데 조선을 건국한 태조, 대군의 신분으로 정변을 일으켜 왕위를 계승한 태종과 세조는 다르다. 이들은 왕세자가 아니면서 왕좌를 쟁취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함께 한 개인 참모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태조에게 정도전과 조준, 태종에게 하륜과 이숙번, 세조에게 한명회와 신숙주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중에서 세조는 책략을 담당하는 한명회, 국정을 맡을 유능한 문신 신숙주를 비롯하여 홍달손·홍윤성·양정 등의 무신(武臣)을 참모로 끌어들였는데, 이들의 선임참모 역할을 한 사람은 권람(權擥, 1416~1465)이었다. 여말선초의 대학자 권근의 손자이자 대제학을 역임하며 뛰어난 문장실력으로 이름이 높았던 권제의 아들인 그는 세조의 첫째 참모다. 실록에 따르면 권람은 자신을 옛날 훌륭한 업적을 남긴 선비들과 같다고 여겼고 소하 같은 신하가 되길 꿈꾸었다고 한다. “남자는 창을 높이 들고 말을 달려 국경에 나아가 공을 세우고, 마땅히 만권의 책을 읽어 불후의 이름을 남겨야 한다”라는 말도 남겼다(세조11.2.6). 입신양명을 하고 싶은 의지가 강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권제는 첩을 총애하고 본처를 홀대했는데 권람이 이를 간하자 아들을 매질하려 했다고 한다), 또한 여러 불운이 겹치다 보니 서른이 넘도록 작은 관직 하나 얻지 못했다. 이처럼 뜻을 펼치지 못하고 세상에 대한 불만이 쌓이던 와중에 세조를 만난 것이고, 세조의 야망을 알아챈 권람은 그에게 운명을 걸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