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과 현대미술, 아니 대한제국과 현대미술이 만났다. 국내 작가 9명이 대한제국(1897~1910)의 자취를 새롭게 해석하고 조명한 작품들이 덕수궁 곳곳에 설치됐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문화재청 덕수궁관리소가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전시 '덕수궁 야외프로젝트:빛·소리·풍경'이다. 비운의 역사만 아니라 근대화의 여명으로 대한제국을 조명하는 시각이 두드러진다.
정연두, '프리즘 효과', 2017사진=국립현대미술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는 단연 이번 전시의 주인공감이다. 정연두 작가는 고종황제와 어린 딸 덕혜옹주를 다면적으로 조명하는 사진작품 '프리즘 효과'를 석조전 복도각에 선보인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덕수궁 석조전 테라스에 선 모습을 각기 다른 방향, 다른 시각에서 찍은 대형 사진 네 점을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내걸었다. 같은 인물, 같은 차림에도 사진마다 분위기가 다른 것이 흥미롭다. 작가가 석조전 사방에 있던 건축과 그 상징성을 염두에 둔 결과다. 북쪽은 영국·미국·러시아 등 열강의 공관, 서쪽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중명전, 남쪽은 대한제국 최고재판소(평리원,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자리)가 있던 곳이다. 이를 바탕으로 각 사진은 두 사람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침략자의 시선, 공적인 시선을 의도했다. 여느 아버지와 딸처럼 이들을 조명하는 사적인 시선도 있다. 준명당, 즉 고종이 덕혜옹주를 위해 궁궐 안에 만든 유치원이 있던 동쪽이다.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빛·소리·풍경'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 기념 11월 26일까지
밤이면 더 빛나는 현대미술작품 곳곳에 설치
사진 중 한 점에선 부녀의 등 뒤로 현대의 관람객들이 등장한다. 사진 스스로 실제가 아닌 재연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같은 자리에서 100여년 전 과거를 현재와 나란히 불러내는 순간이다. 촬영과정에 대해 정연두 작가는 "고종과 덕혜옹주의 사진을 바탕으로 닮은 인물을 수소문했다"며 "의상은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 옷공방이 당시의 실제 사료를 연구해 복원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고종과 대한제국에 대해 한층 풍부하고 다양한 접근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대한제국은 한국 역사의 블라인드 스팟(사각지대)"이라며 "국권을 잃은 자랑스럽지 못한 역사인 동시에 일찌감치 전기, 전차 등을 놓으며 근대국가로 발전하기 위해 발돋움한 시기"라고 지적했다.
권민호, '시작점의 풍경', 2017사진=이후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