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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호랑이의 기백을 담은 가죽, 그림 속 벽사와 위엄을 품다
글쓴이 tntv 등록일 [2017.09.08]
호랑이의 기백을 담은 가죽, 그림 속 벽사와 위엄을 품다 - 호랑이는 한반도를 대표하는 영물이자 수호신이다. 그만큼 이 땅에는 호랑이가 많았다. 사람들은 백수(百獸)의 왕인 호랑이를 두려워함과 동시에 신성시하고 숭배하는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원시시대에 호랑이가 가진 능력에 의미를 부여한 토테미즘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호랑이는 단군신화에 등장할 만큼 오랜 옛날부터 우리의 삶과 함께했다. 생활 속 곳곳에 호랑이를 상징하는 그림과 물품을 가까이하며 벽사와 위엄을 동시에 얻고자 했다
한국의 산천을 누비고 다닌 호랑이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그려진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도 호랑이가 등장한다. 호랑이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산신으로 섬김을 받았고, 삼국시대 이후에는 불법의 수호신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호랑이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사신도의 하나인 백호로 서쪽을 지키는 방위신으로 그려졌다. 사신도를 그리는 전통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지속되었다. 조선시대 때는 산릉(국장을 하기 전에 아직 이름을 정하지 않은 새 능)에 도착한 왕과 왕비의 관을 임시로 보호하기 위해 만든 찬궁(攢宮)의 네 벽에도 사신을 그렸다. 피장자인 왕과 왕비의 영령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제의적 의미로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호피(虎皮)는 표피(豹皮)와 함께 왕이 신하에게 내리는 선물로 하사되었다. 중국에 진헌(進獻)하는 물품에도, 유구국(琉球國)이나 왜국에 하사하는 품목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호피로 만든 호피방석(虎皮坐子)도 하사되었는데, 사람들이 호피나 표피로 만든 방석을 원래부터 선호했던 것은 아니었다. 문종은 ‘의서에 호피를 깔고 앉으면 눈이 어두워진다는 설이 있으니, 우리나라에서 쓰는 방석은 호피와 표피를 쓰지 않는 것이 가하다’라고 하였다. 호피와 표피는 비슷해 보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표피가 호피보다 더 귀한 물건이었다. 문종 즉위년(1450)에 왜국에서 ‘표피 5매’를 보내달라는 요청에 대해 예조에서는 ‘표피는 희귀한 물건이니, 청컨대 호피를 내려 달라’고 요청한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하게 그려진 호랑이 그림
한국의 산천에는 호랑이가 많아 호피가 다양하게 쓰였다. 그러나 호랑이가 아무리 많아도 호피의 공급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호랑이를 사냥하여 호피를 쓰는 대신 호랑이 그림으로 그 수요를 대체했다. 호랑이가 영물인 만큼 호랑이 그림 역시 똑같은 효력이 있으리라 믿었다. 사람들은 호랑이 그림에 벽사(辟邪)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새해가 되면 대문과 집안 곳곳에 호랑이 그림을 붙였다. 이것이 바로 문배도(門排圖: 문에 붙여 잡귀를 막기 위해 제작된 그림)다. 사람들은 호랑이가 들어간 문배도가 한 해의 재액을 막아주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여겼다. 호랑이는 문배도뿐만 아니라 장식적인 목적의 민화 소재로도 활용되었다.
호랑이 그림은 크게 단독형식과 군집형식으로 그려졌다. 단독형식은 앉아있는 호랑이를 그린 좌호(坐虎), 새끼를 돌보는 유호(乳虎), 산에서 걸어 나오는 출산호(出山虎)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출산호는 꼬리를 세우고 위풍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호랑이를 소나무나 대나무를 배경으로 그렸다. 김홍도, 유숙 등의 화원화가들이 뛰어난 출산호를 남겼다. 18세기 중엽 이후에는 재액을 물리치는 호랑이와 기쁨을 알려주는 까치가 결합된 호작도(虎鵲圖)가 민화의 소재로 본격적으로 유행하는데 호작도 역시 출산호에서 파생된 작품이다. 민화의 호랑이 그림은 벽사와 길상의 목적은 물론 장엄과 치장을 위해서도 제작되었다. 민화 호작도는 넘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 듯 도식적인 작품도 많은 반면 파격적이면서도 해학적인 특징을 잘 살린 작품도 발견할 수 있다.

01_작자미상, , 19세기, 비단에 수묵채색, 131×66.7cm, ⓒ고려대학교박물관
02_작자미상, , 1728년, 비단에 수묵채색, ⓒ한국학중앙연구원

03_김준근, , 19세기, 28.5×35cm, 무명에 채색, ⓒ독일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_김준근, , 19세기, 28.5×35cm, 무명에 채색, ⓒ독일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_, 1900년대 전후 사진, ⓒ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 서문당_, 18세기, 128x395cm, 8폭 병풍, 종이에 수묵, ⓒ가나아트센터
호피의 위신력과 효능
호랑이의 호(虎)는 무(武)를 상징한다. 조선시대 문관(文官)의 관복에는 학을, 무관(武官)은 호랑이를 흉배(胸背)에 붙였다. 19세기에 그려진
<신헌초상>(그림1)을 보면 그의 가슴에 쌍호흉배(雙虎胸背)가 붙어 있어 무관 당상관임을 알 수 있다. 조선초기에는 호랑이와 표범을 각각 독립적으로 수놓았으나 17세기에는 두 맹수의 특징을 단일이미지로 합성시켜서 수놓았다. 즉 몸체는 호랑이로, 머리에는 표범의 흑점무늬를 집어넣는 형식이다. 반대로 몸체를 표범으로, 머리를 호랑이로 수놓는 경우도 있다. 이런 특징은 민화 호랑이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다.
흉배는 문관과 무관이 학과 호랑이로 명확히 구분되지만 공신(功臣)들이 앉는 의자에는 공통적으로 호랑이 가죽인 호피를 깔았다. 무관인
<신헌초상>에서와 마찬가지로 문관인
<박동형초상>(그림2)에도 호피가 덮인 교의(交椅)를 발견할 수 있다. 박동형의 가슴에는 쌍학흉배(雙鶴胸背)가 붙어 있어 그가 문관 당상관임을 알 수 있다.
<신헌초상>과
<박동형초상>에 보이는 호피방석은 단순히 초상화를 그리기 위한 소재가 아니었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양반 관리들이 탄 가마에는 호피를 깔았다.
김홍도의 전칭작(傳稱作, 그렸다고 전하는 그림)인
<평양감사향연도> 중 ‘부벽루연회도’를 보면 평양감사가 탄 것으로 추정되는 가마 위에 호피로 만든 자리가 깔려 있다. 이런 깔개나 자리를 문인(文茵)이라 한다. 호피로 만든 방석 중에 고비(皐比)라고 부르는 단어가 있는데 이는 스승이 학문을 강론할 때 깔고 앉는 자리를 일컫기도 한다.
김준근이 그린
<대신금관조복>(그림3)을 보면 초헌(軺軒)을 탄 대신의 의자에 호피가 보인다. 김준근은 개항기에 부산에서 풍속화를 그려 서양인에게 판매했던 화가다. 그가 살았던 시대인 1900년대 전후에 찍은 사진
<양반의 외출>에도 가마 위에 호피가 보인다.
호피는 혼례식 때 잡귀와 액운을 물리칠 목적으로 신부의 가마 위에 덮었다. 김준근이 그린
<신행>(그림4)을 보면 가마 위에 호피가 덮여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전통은 같은 시기에 찍은 신행(신부가 혼례식을 마치고 시댁으로 가는 의식) 사진에서도 확인된다. 가마 위의 호피는 마치 살아있는 호랑이처럼 신령스러워 그 어떤 잡귀도 함부로 범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씨가 말라 버린 다음에는 가마 위에 호피 대신 호랑이 그림이나 사진을 덮었다.

호피 대신 호피도로
호랑이 가죽을 그린 호피도(虎皮圖) 또한 호랑이 그림 못지않게 큰 인기를 끌었다. 호피도는 호피와 표피 중에서 주로 표피가 선택되었다. 선적인 느낌이 강한 호피도보다는 선과 반점이 뒤섞인 표피도가 훨씬 더 장식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호랑이와 표범을 뚜렷하게 구분하지 않아 표범의 가죽그림 또한 표피도 대신 호피도라 부른다. 민화의 호피도는 표범을 그린 표피도가 대부분이다. 호피도는
<호피도>(그림6) 8폭 병풍처럼 호랑이의 얼굴 부분은 생략하고 가죽을 펼쳐놓은 상태로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세필로 털을 세밀하게 그리고 크기를 달리한 반점을 표현하여 장식적이면서도 화려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삼성리움미술관에 소장된
<호피장막도(虎皮帳幕圖)>처럼 호피 장막 아래의 일부를 걷어 올린 후 그 안에 책상과 안경, 책과 벼루 등 각종 기물을 그려 넣어 문무가 결합된 병풍 소장자의 능력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호피도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속담을 뛰어넘어 그림만으로도 호랑이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그만큼 호랑이가 용맹스럽고 신령한 동물이었음을 의미한다.


글‧조정육(미술평론가)
출처:월간 문화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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