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ㆍ1681~1763)이 쓴 `성호사설`에 담배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성호 선생은 남쪽에서 왔다 하여 남초(南草) 혹은 남령초(南靈草)라 불리던 담배가 우리나라에 처음 전래된 것은 광해군 때라고 기술했다. 담배라는 이름도 남해 담파국(湛巴國)이라는 나라에서 들어왔기 때문이라며.
성호는 담배가 가래침이 나오지 않을 때와 소화가 되지 않을 때, 그리고 한겨울에 추위를 막는 데 유익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익보다는 해가 더 많다고 기술했다. 냄새가 나빠서, 재계(齋戒)하여 신명(神明)을 사귈 수 없는 것이 첫째이고, 재물을 없애는 것이 둘째이며, 세상에 일이 많은 것이 진실로 걱정인데, 지금은 상하노소를 막론하고 해가 지고 날이 저물도록 담배 구하기에 급급하여 한시도 쉬지 않으니 이것이 셋째라며 담배의 폐해를 자세하게 기술했다.
학문을 연구하는 성호에게 담배는 `건강을 해치고 공부를 방해하는` 유혹의 풀이었다.
그렇지만 성호가 `상하노소를 막론하고 담배 구하기에 급급하다`고 했을 정도로 조선 후기에 담배는 백성들에게 더없이 가까운 친구이자 위안이었다.
담배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에 대해 성호와는 다르게 해석한 이가 계곡 장유(張維ㆍ1587~1638)였다. 장유는 담배가 일본에서 들어왔는데 일본 사람들이 담배를 담박괴(淡泊塊)라고 불렀다고 했다. 장유가 볼 때 당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100명이나 1000명 중에서 한 명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담배 인기가 실로 대단했던 모양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강진으로 유배갔을 때 주막집에서 담배를 꽤나 즐겼던 것 같다. "담바고가 지금 새로 나와 귀양살이 하는 자에게 제일 좋다네. 가만히 빨아 들이면 향기가 물씬하고, 슬그머니 내뿜으면 실이 간들간들, 여관 잠자리가 늘 편치 못하여 봄날이 지루하기만 하다." 서글프고 고독한 유배객에게 담배는 더 없이 좋은 친구였으리라! 그래서 다산은 담배라는 시를 짓기도 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이들에게 담배는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는 벗이었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최근 담뱃세를 파격적으로 인상한다고 한다. 금연을 통해 건강권을 지키는 것도, 국가 재정 확충도 중요하지만 서민에게 담배는 기호 식품 이상이라는 것을 한 번쯤 생각해 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