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 옛 도심의 골목길 안에 한옥을 고쳐 만든 차문화 공간 ‘루치아의 뜰’. 루치아의 뜰을 운영하는 석미경씨(53)와 남편 박인규씨(56)가 다정하게 걸어오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조선시대부터 1930년대까지 충청도의 중심은 공주였다. 백제의 도읍지요, 조선시대엔 충청감영이 있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소문난 교육도시가 바로 공주다. 걷기 좋은 봄날,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공주를 찾았다.
옛 도심에 있는 공주역사영상관에 차를 세웠다. 1920년대 세워진 건물은 겉보기에도 일제강점기 근대 건축 냄새가 물씬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공주 역사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영상 스크린들이 벽면을 따라 흘렀다.
“백제시대부터 1500년 동안 역사책에 끝없이 등장하는 도시는 아마 공주밖에 없을 겁니다. 공주라는 지명도 고려시대 ‘훈요 10조’에 처음 등장했어요.” 조옥순 공주 문화해설사(59)는 “공주에는 명승고적지도 많지만 근대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며 “옛 도심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충청감영터다. 충청감영터에는 공주대 부속고등학교가 들어섰다. 뒤로는 봉황산이 있고 앞으로는 제민천을 둔 배산임수의 명당이다.
조선시대 전국 8도에는 감영이 있었다. 감영은 도성과 지방을 연결하는 창구이자 문무 실권을 쥔 관찰사가 주재한 지방행정의 중심 관청이었다. 원래 청주에 있다가 임진왜란 후 공주로 옮겼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32년 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공주는 충청도의 중심이었다.
학교 정문 옆에는 충청감영의 흔적을 보여주는 주춧돌이 전부였다. 풍파를 견뎌낸 느릅나무 한 그루가 빛바랜 돌들을 벗 삼아 서 있었다. 봉황산 자락의 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는 1930년대 지어진 일본 헌병대장의 관사가 있다. 지금은 나태주 시인이 작업실로 쓰는 ‘풀꽃 문학관’이다. 나지막한 언덕을 따라 천천히 오르는데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는 법원과 검찰청 건물이 나왔다.
신발을 벗고 문학관 안으로 들어섰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만한 복도가 낮은 천장을 따라 길게 이어졌다. 녹색 시멘트벽과 새까만 나무 창틀은 시계를 100년 전으로 돌려놓은 듯했다. 일본식 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다미방이 나오는데 왠지 마음이 무거웠다.
문학관에서는 일제강점기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김갑순(1872~1960년)의 집이 내려다보인다. 김갑순은 친일파 708인 명단과 민족문제연구소 친일 인명사전에 들어 있는 인물이다. 김갑순은 땅투기의 귀재였다. 일제가 철도와 교통망을 건설하자 재빨리 자동차운수업 인허가를 얻어 공주운수를 설립해 버스, 택시, 화물운송 영업권을 손에 넣었다. 1930년대 그가 소유한 토지는 공주, 대전 등에 1000만평에 달했다. “민나 도로보데스(모두 다 도둑놈이다)”를 달고 살았단다. 공주 갑부 김갑순 옛집터에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지키고 있다. 그의 집은 예상외로 평범했다.
“일제강점기 김갑순이가 까만 안경을 끼고 새까만 다쿠시(자동차)를 타고 다녔어. 그 집 안방에 들어가려면 문 3개를 통과해야 했지.” 집터를 알리는 표지석 앞에서 만난 한옥자 할머니(80)는 “서울에 가려면 김갑순의 땅을 밟고 가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최병숙 할머니(90)가 “여그 말고 공주에 오면 진짜 가봐야 하는 곳이 있다”며 “유관순이 2년간 공부했던 제민천 건너편 영명학교로 어여 가라”고 말했다.
공주가 교육도시로 명성을 얻게 된 데는 근대교육의 발상지인 영명학교가 한몫했다.
충남 공주의 옛 선교사 가옥.
영명학교는 1906년 미국 선교사들이 세웠다. 영명학교 학생들은 1919년 공주읍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고,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가하는 등 항일운동의 중심에 섰다. 차를 몰고 영명학교로 갔지만 아쉽게도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선교사의 집’으로 향했다. 산꼭대기에 호젓하게 자리한 선교사의 집은 하얗고 예쁜 4층 건물이었다. 너른 마당에 키 높은 나무들이 울타리를 치고 있는데 마치 미국이나 유럽의 저택 같았다.
“예전에는 시골에서 공부를 좀 한다 싶으면 사범대로 보냈잖아요. 선생님만 한 직업이 없었으니까요. 유난히 교사들이 많이 사는 동네가 여깁니다. 지금도 충청도에서 공주만큼 인구 대비 학교가 많은 곳은 없을 겁니다.” 공주대 공주학연구원 이상현씨(47)는 “1970년대 말에는 선교사의 집을 공주사범대 교수들의 기숙사로 썼다”며 “박사를 40명이나 한꺼번에 배출한 ‘공부벌레’들의 집으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하숙촌도 궁금했다. ‘1984, 1955, 1945, 1976…’.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알 수 없는 숫자들이 벽면에 하나둘 새겨져 있었다. 알아보니 숫자는 집과 관련된 연도를 뜻했다. ‘1945’는 해방되던 해 봉황초등학교가 개교할 때 지어진 집이요, ‘1965’는 장학퀴즈에 나가 자식이 1등한 때를 추억하는 것이었다. 숫자는 소시민들의 삶의 기록이었다.
마을은 들여다볼수록 흥미로웠다. 1m가 될까 말까, 골목은 비좁았고 담장은 낮았다. 대문은 허름했고 오래된 창문틀에는 먼지가 수북했다. 쪽문 옆으로는 하숙방들이 촘촘히 붙어 있었고, 담벼락엔 깨진 병과 유리조각이 꽂혀 있었다. 희한하게도 대형할인점은 물론 흔한 24시간 편의점도 보이지 않았다. 동네 슈퍼는 찾기도 힘들었다.
공사 중인 한옥은 여럿이었지만 뼈대와 담을 허무는 집은 없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옛집을 버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마을 주민들의 마음이 읽혔다.
해질녘 제민천을 걷다가 만난 ‘잠자리가 놀다간 골목’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루치아의 뜰’이라고 적힌 파란 대문의 예쁜 한옥 때문이었다. 1964년 지어진 이 집은 사연이 애달프다. 평생 살 집을 3년간 지었지만 완공된 지 3년 만에 세상을 떠난 남편, 고생스럽게 자식을 키워내던 할머니가 남긴 빈집을 개조한 한옥카페다.
예술가의 거리도 구경할 만하다. 1920년 신흥양복점 앞에서 찍은 흑백사진을 액자로 외벽에 걸어둔 건물이며 높은 지붕 위에 걸터앉은 조각상이 미소를 머금게 했다.
공주 옛 도심 제민천변에 지어진 1960년대 직물공장 건물에서 운영되고 있는 ‘고가네칼국수’. 오래된 붉은 담벼락이 인상적이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충남 공주 옛 도심에는 제민천을 따라 맛집들이 줄지어 있다. ‘고가네 칼국수’(041-856-6476)는 1960년대 직물공장을 음식점으로 개조했다. 붉은 담벼락이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칼국수 맛도 은근하다. 사골육수에 우리밀로 만든 면을 넣는 전골식이다. 1인분 6000원. 공주산성시장 안에 있는 ‘초가집’(041-856-7997)은 옛날 칼국수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칼국수집에서 수육도 판다. 국물 없이 비빔장에 비벼 먹는 비빔칼국수도 인기다. 칼국수 5000원, 비빔칼국수 6000원. ‘시골 칼국수’(041-856-5475)는 얼큰한 김치칼국수가 유명하다. 칼국수 6000원.
짬뽕집도 많다. 전국 3대 짬뽕집으로 알려진 ‘동해원’(041-852-3624)은 날마다 문정성시를 이룬다. 동해원 짬뽕은 고기육수의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짬뽕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한번 먹으면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짬뽕 7000원. ‘진흥각’(041-855-4458)은 점심 시간에만 문을 열기 때문에 낮 12시 전부터 식당 앞에 긴 줄이 늘어선다. 영업시간은 매일 주인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데 대체로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다. 돼지고기와 해물이 오묘하게 섞인 국물이 구수하면서도 깔끔하다. 짬뽕 6500원.
‘루치아의 뜰’(041-855-2233)은 한옥을 예쁘게 개조한 꽃정원을 가진 티 카페다. 햇살이 내리쬐는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다보면 힐링이 따로 없다. 손바느질한 자수품과 전통 공예 소품 등 인테리어 하나하나에도 정성이 깃들어 있다. 루치아 세트메뉴가 1만9000원. 뒷마당으로 가면 수제초콜릿을 맛볼 수 있는 ‘초코루체’가 있다. 달콤하지만 느끼하지 않은 최고급 맛이다. 그윽한 홍차와 먹기에 좋다.
50년 전통의 ‘중동오뎅집’(041-855-4411)도 유명하다. 1인분에 떡볶이 3000원, 오뎅 2000원. 40년 전통의 ‘명성불고기’(041-857-8853)는 이름난 맛집. 달짝지근한 국물에 밥을 쓱쓱 비벼 먹는 맛이 그만이다. 1인분 1만1000원. ‘이학식당’(041-855-2455)은 2대째 내려오는 따로국밥집. 고추기름장으로 맛을 낸 육개장이 인기 메뉴다. 8000원. ‘시장정육점식당’(041-855-3074)은 으뜸 공주맛집으로 선정된 곳. 공주알밤이 들어간 육회비빔밥이 대표 메뉴. 한우육회비빔밥을 주문하면 선짓국을 무료로 준다. 1인분 1만1000원. ‘원진 노기순 청국장’(041-855-3456)은 살살 녹는 돼지갈비와 구수한 청국장이 일품. 반찬으로 나오는 꽃게장과 계란찜, 냉이무침 등 몸에 좋은 음식으로 건강하게 한 끼를 든든하게 채울 수 있다. 청국장정식 1만~1만2000원. ‘청벽가든’(041-854-7383)은 국산 양념 장어구이 전문점이다. 금강에 서식하는 자연산 장어를 쓴다. 장어구이 2인분 5만5000원. ‘양달가든’(041-853-7893)은 닭과 오리 백숙집이다. 주인이 직접 키운 토종닭과 오리를 내놓는다. 닭백숙과 볶음탕 등이 4만3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