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방송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홈으로 | 즐겨찾기등록 |  +관련사이트 
문화재방송 한국 " Since 2008. 2. 1 "
[공지]왼쪽 상단 VJ 金鐘文을 클릭하시면 50 여 년 전 KBS 기자로 활동하던 당시의 영상과 1인 5역으로 제작, KBS 1TV에 방송됐던 프로그램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 왼 쪽 아래의 유튜브 바로가기를 클릭하시면 문화재 관련 동영상을 더 많이 보실 수 있습니다. [문화재방송 캠페인]선조들의 숨결 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hudownwbe wojodown nuebfile monjdown yesnkdown lpmedown jneepudw mndownfile bafdownco yabiqedown amehdown fadowntero evnhdown
HOME >
문화재뉴스 >
무형문화재 >
유형문화재 >
기타문화재 >
영상문화 >
역사기행 >
유네스코세계유산 >
문화재연감 >
유튜브 바로가기 >
PageNo : 01
제 목 명인들 건강장수비결...허약 체질 성호 이익, 이걸로 83세까지 장수(상)
글쓴이 tntv 등록일 [2017.09.22]



  • 정지천의 명인들 건강장수비결


    이 카테고리의 다른 기사보기허약 체질 성호 이익, 이걸로 83세까지 장수

  • 정지천
    동국대 일산한방병원 내과 과장
    E-mail : kyjjc1931@naver.com
    1985년에 동국대학교 한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부속한방병원에서 ..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로서 <성호사설(星湖僿說)>을 지은 성호 이익(星湖 李瀷·1681-1763) 선생을 아십니까? 성리학에서 출발하였으나 천문, 지리, 율학, 산학, 의학 분야까지 능통한 그야말로 박학다식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친이 평안북도 운산에 귀양을 가서 당시로서는 상당히 늦은 나이인 54세에 낳은 막내아들이었습니다. 늙은 부친에게서 태어난 데다 부친이 이듬해에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난 탓인지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해서 10세까지 글을 배울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무려 83세까지 장수했던 비결이 뭘까요?
성호 이익
성호 이익
허약하게 태어났지만 장수할 수 있었던 주된 비결은?

남인에 속했던 형이 서인에게 몰려 장살되자 과거를 포기하고 낙향하였기에 벼슬살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던 것도 장수 요인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의학에도 능통하였기에 체질에 맞는 음식을 먹으며 건강관리를 잘 했던 것도 비결이 됩니다. 그러나 가장 큰 비결은 절식(節食), 소식(小食)한 때문으로 보입니다. 살림이 어려워서 농사짓기에 전력을 기울여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잡곡밥에 된장, 고추장, 김치, 나물 등으로 이루어진 소박한 식단으로 적게 먹었던 것이죠.

성호 선생에게 절식이 필요했던 이유는?

<성호사설>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나는 천성이 책을 좋아해 날마다 끙끙대며 읽느라고 베 한 올, 쌀 한 톨 내 힘으로 장만하지 않는다. 천지간의 좀벌레 한 마리란 말이 어찌 나같은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랴? 요행이 선대가 남기신 전답이 있어서 몇 섬 몇 말을 거둔다. 게서 나오는 식량을 절약하여 많이 먹지 않는 것으로 첫째가는 경륜이자, 양책을 삼는다. 무릇 한 그릇에서 한 홉의 쌀을 덜어낸다. 하루에 두 그릇 먹으면 두 홉이고, 한 집이 열 식구라면 두 되가 될 것이다. 일만 가구가 사는 군이라면 이천 말이나 되는 많은 식량이 쌓인다.”
이익 선생이 이런 말을 한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양에서는 가장 많이 먹는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성호사설
성호사설
조선 사람들의 대식(大食) 정도는?

성호사설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먹으려고 드는 습성은 천하에서 제일간다. 근래에 유구(琉球·오키나와)에 표류해 간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너희 나라 사람은 항상 큰 사발에다 쇠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마구 퍼먹어대는데, 그렇게 먹고서야 어찌 가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며 비웃었다고 한다. 예전에 우리나라에 표류해 온 자가 있어 우리 풍속을 잘 알고 하는 말이다. --- 어려서 배불리 먹는 습관이 들면 위장이 차츰 커져서 채워지지 않으면 굶주림을 느낀다. 차츰차츰 습관이 들어 차츰차츰 굶주림을 느끼면 굶어죽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습관이 들어 위장이 커지는 사람이 있다면 습관이 들어 위장이 작아지는 사람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 비록 늘 굶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너무 과하게 먹는 음식을 덜어내는 것이야 불가능하겠는가?”
얼마나 많이 먹었으면 이런 말을 했겠는지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 당시 밥을 많이 먹은 것은 반찬을 적게 먹었던 탓이 있기도 했습니다.

일본, 중국과 비교되는 조선 사람들의 식사량

임진왜란 때 왜군은 바다 건너 원정을 나온 터라 군량미 보급이 부족했지만 조선군에 비해 훨씬 적게 먹었기에 오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한 끼 식사에 조선군은 쌀 7홉(당시 한 홉은 60cc 정도)이었는데 일본군은 고작 2홉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실제로 조선은 동북아 3국 중에서 가장 밥을 많이 먹은 나라였기에 대식국(大食國)으로 불리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하루 먹을 양식을 한 끼에 다 먹었다는 것이죠. 일본에 다녀온 김세렴이란 사람이 보고하기를 “왜인들은 한 끼에 쌀밥 두어 줌밖에 먹지 않더이다”고 했고, 청나라에 다녀온 실학자 홍대용은 “그들의 밥그릇이 꼭 찻잔만 하더이다”고 했습니다.

소식해서 장수한 옛사람

조선의 임금 중에서 가장 장수한 영조대왕(83세)이 소식가였죠. 영조는 가뭄이 들면 하루 다섯 번 먹던 수라를 세 번으로 줄이고 반찬 수도 반으로 줄였으며 심지어 간장만으로 수라를 받기도 했습니다. 조정 대신들 중에도 청빈하고 검소하게 살았던 분들 중에 장수한 분들이 많습니다. 청백리에 선정된 분들 중에 상당수가 장수했는데, 황희(90세), 맹사성(79세), 이원익(88세), 김상헌(83세) 등입니다. 그리고 우암 송시열, 퇴계 이황, 다산 정약용 같은 분들도 소식했고 장수했던 분들이죠.
왼쪽부터 영조, 우암 송시열, 퇴계 이황.
왼쪽부터 영조, 우암 송시열, 퇴계 이황.
1,400여년 전에 무려 102세까지 장수했던 당나라 명의 손사막(581-682) 선생은 식사는 자주 하되 70-80% 정도로 적게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밥은 적게 먹되 반찬은 많이 먹으라고 하였고, 특히 배가 고프면 식사를 하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라고 하였습니다. 당송팔대가의 한 분인 소동파는 ‘절음식설(節飮食說)’이라는 글에서 하루 동안 술 한 잔, 고기 한 조각만 먹겠다고 하면서 음식을 절제하는 것이 최고의 건강법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익 선생은 가난한 살림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절식한 것은 아니고, 의학에도 능통했던 그의 학문으로 보면 소식이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좋다는 것을 알았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절식을 실천한 구체적인 방법

순조 임금 때 ‘이양연(1771-1853)’이라는 문신은 ‘절식패명(節食牌銘)’이란 문구를 지었습니다. ‘적당히 먹으면 편안하고 지나치게 먹으면 편치 않다. 의젓한 너 천군이여 입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適喫則安 過喫則否 儼爾天君 無爲口誘)’고 씌어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모여 함께 밥을 먹을 때마다 한 사람이 이 팻말을 두드리고 거기 적힌 글을 소리 내어 읽음으로써 좌중의 사람들에게 과식하지 말 것을 경계했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밥 먹기 직전에 밥맛 떨어지는 얘기를 한 셈이죠. 여기서 천군은 몸의 주재자인 마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이런 패를 지었던 그는 당연히 83세까지 장수하였습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주소: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석바위로 53번길 17 | 이메일:tntvkr@nate.com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인천 0101529' 등록
Copyright(c)tntv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