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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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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시간 정성다해야 작은 꽃삼함 제작...국가무형문화재 완초장 이상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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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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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tv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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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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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시간 정성다해야 작은 꽃삼함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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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관광100+! 63 제103호 완초장 이상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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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에 잘 마른 완초(왕골)가 한켠에 수북이 쌓여있다. 연한 빛을 띤 완초는 섬세한 손길에 의해 쪼개지는 작업이 반복되면서 여러 갈래로 나눠진다. 티끌이 옷에 묻고 바닥에 날려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작품을 구상하면서 염색을 시작한다. 그제야 완초는 색색의 고운 빛깔을 띤다. 이제 엮는 일이 남았다. 시간과의 싸움이다. 작은 꽃삼합 한 세트를 제작하는데 열흘이 필요하다. 하루 10시간씩 정성을 들여야 한다. 오랜 세월, 완초장 이상재 선생은 시간을 주고 작품을 얻어냈다.
완초공예는 강화 교동도가 발상지다. 거의 대부분 집에서 완초제품을 생각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겨우 내내 전 가족이 둘러 앉아 완초제품을 만들었다. 그만큼 교동도 완초제품은 전국적으로 인기가 있었다. 이상재 선생은 교동출신이다. 14세 어린 나이에 어머니로부터 일을 배웠다. 그리고 3년만에 교동 최고의 완초공예 실력을 갖게 되었다. 화문석이 강화도 명물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평생 업이었어. 14살 때부터 시작했으니까. 지겹다는 생각은 아직 안 들어.” 왕골이 성행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플라스틱 제품이 나오고, 중국산 완초제품이 수입되면서 교동도의 완초제품은 명맥을 잃고 말았다. 2016년 현재, 교동도에 완초공예인은 한 사람도 없다. 그 명맥을 두 부부가 강화에서 힘겹게 이어가고 있다.
“국가에서 장려하지 않으면 안돼. 젊은이들이 배워야 하는데, 아무도 없어. 고려청자 상감기법처럼 사라지고 말 것 같아.” 이상재 선생의 뇌리에는 완초공예가 우리 곁을 영영 떠나버릴 것 같은 걱정뿐이다. 지자체와 국가가 서둘러 나서야 할 때다.
Tip 완초는 우리말로 왕골이라 한다. 2m까지 자라는 일년생 식물로 전국적으로 서식하지만 강화지역의 완초가 부드럽고 촉감도 좋아 최고로 친다. 강화도의 완초는 한 줄기를 여러 개로 쪼개 사용하기에 섬세한 작업이 가능하다. 전수교육조교이자 이상재 선생의 아내인 유선자 여사는 완초라 하기에 믿기 어려울 만큼 섬세하고 고운 작품을 제작한다.

자료출처 : 인천관광 100+!(인천관광공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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