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 은평구 구산동. 지하철 6호선 구산역에서 내려 10분 정도를 걸어가자 건물 한 면에 크고 작은 창문 수십 개가 있는 독특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은평구가 작년 11월 개관한 '구산동도서관마을'이다.
1층에 들어서자 '도전과 모험'이라는 주제로 동화부터 철학책까지 한곳에 모아 둔 서가가 있었다. 도서 분류 기호에 따라 장서를 배치하는 다른 도서관과 달랐다. 이 도서관 사서들은 1~2개월 단위로 사회적 이슈를 따라가는 '테마 컬렉션(Theme Collection)'을 기획한다. 작년 11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땐 '대통령과 민주주의'라는 주제에 맞춰 서가를 꾸몄다. 이종창(50) 관장은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하는 도서관 입문자에게는 사서가 골라 준 추천 도서가 도움이 된다"며 "테마 컬렉션 코너의 책은 일반 서가의 책보다 대출 빈도가 40% 정도 높다"고 말했다.
◇소리 내 책 읽을 수 있는 도서관
2층에 마련된 어린이열람실은 '키즈카페'를 연상케 했다. 마룻바닥 위엔 색색의 매트가 깔렸다. 아이들은 신발을 벗고 들어와 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책을 보고 있었다. 책을 소리 내어 읽어 주고 싶어 하는 영·유아 부모를 위해 음독(音讀)이 가능한 방도 따로 마련돼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세 살 딸을 키운다는 채모(40)씨는 "역촌동 집에서 20여분을 걸어서 온다"면서 "좀 멀어도 여기선 아이와 얘기를 하면서 책도 읽어 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10년 전까지 은평구에는 구립 도서관이 1개뿐이었다. 어린이 도서관도 대조동 꿈나무 도서관이 유일해 구산동 등 여러 곳에서 온 아이들로 항상 붐볐다.
◇주민들이 예산 따고 직접 운영도
구산동 주민들은 2006년 구산동에 도서관을 짓기 위한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11일 만에 2008명이 동참했다. 은평구청도 도서관 부지를 마련했다. 주민들의 숙원이었던 '동네 도서관'이 곧 생길 듯했다. 하지만 건축 예산이 없어 도서관 건립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지난 2011년 서울시가 예산 편성에 주민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주민참여예산제를 시행하면서 막혀 있던 물꼬가 트였다. 주민들은 '구산동에 도서관이 필요한 이유'를 담은 자료를 서울시에 제출해 건축에 필요한 예산 24억원을 따냈다. 도서관 운영도 지역 내 도서관 관련 단체 5개로 구성된 은평도서관마을협동조합이 맡았다. 은평구는 이 조합을 도서관 운영 위탁업체로 선정하고, 매년 도서 구입비와 직원 24명의 인건비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박정아 문화행정팀장은 "기획 단계에서 '남 눈치를 보지 않고 아이들에게 소리 내 책을 읽어줘도 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고, 음악도 듣고 싶다'는 등의 주민 의견이 많았다"며 "이런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도서관을 설계했다"고 말했다.
◇세대 아우르는 만화책 3000권 인기
도서관마을에는 '만화자료실'도 3곳이 있다. 어린이를 위한 교육용 만화부터 1970~1980년대 추억의 만화까지 3000여권을 소장하고 있다. 김성환 화백의 시사만화 '고바우영감'처럼 문화재청이 기록문화재로 등록한 만화의 영인본 등도 전시하고 있고, 만화가를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이종창 관장은 "도서관에서도 만화를 볼 수 있게 해달라는 주민 의견에 따라 만화자료실을 만들었다"면서 "우리 도서관은 약간의 소음과 만화가 허용되는 '책 읽고 노는 공간'이란 점이 다른 도서관과 다르다"고 했다.
[그래픽] 은평구 구산동도서관마을 개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