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종 목
|
국보 제13호
|
| |
|
명 칭
|
무위사극락전(無爲寺極樂殿)
|
| |
|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불전
|
| |
|
수량/면적
|
1동
|
| |
|
지 정 일
|
1962.12.20
|
| |
|
소 재 지
|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1174 무위사
|
| |
|
시 대
|
조선시대
|
| |
|
소 유 자
|
무위사
|
| |
|
관 리 자
|
무위사
|
무위사는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원효대사가 관음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은 절로,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공사가 진행되면서 이름도 무위사로 바뀌게 되었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전은 세종 12년(1430)에 지었으며, 앞면 3칸·옆면 3
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으며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조각이
매우 세련된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극락전 안에는 아미타삼존불과 29점의 벽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불상 뒤에 큰 그림 하나만
남아 있고 나머지 28점은 보존각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벽화들에는 전설이 전하는데,
극락전이 완성되고 난 뒤 한 노인이 나타나서는 49일 동안 이 법당 안을 들여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에 법당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49일째 되는 날, 절의 주지스님이 약속을 어기고
문에 구멍을 뚫고 몰래 들여다 보자, 마지막 그림인 관음보살의 눈동자를 그리고 있던
한 마리의 파랑새가 입에 붓을 물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림속 관음보살의 눈동자가 없다.
이 건물은 곡선재료를 많이 쓰던 고려 후기의 건축에 비해,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 짜임새의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조선 초기의 양식을 뛰어나게 갖추고
있는 건물로 주목 받고 있다.

|
| 내부가구와천장 |

|
| 동측면가구 |

|
| 뒷벽백의양유관음상 |

|
| 무위사극락보전 |
 |
| 무위사극락전 |
 |
| 무위사 극락전 내부 가구 |
 |
| 무위사 극락전 내부천장 용문 |
 |
| 무위사 극락전 백의관음도 |
 |
| 무위사 극락전 정면 공포 |
 |
| 무위사 극락전 측면 |
 |
| 무위사 극락전 현판 |
 |
| 무위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
 |
| 무위사극락전 |
 |
| 무위사극락전 |
 |
| 무위사극락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