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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 목 |
국보 제1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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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 칭 |
봉정사극락전(鳳停寺極樂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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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불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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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량/면적 |
1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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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 정 일 |
1962.1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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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재 지 |
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봉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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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대 |
고려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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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유 자 |
봉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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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 리 자 |
봉정사 |
천등산 기슭에 있는 봉정사는 신문왕 2년(682)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한다. 부석사를 세운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종이로 봉황새를 만들어 날려 보냈는데, 그 새가 내려앉은 자리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이름지었다는 전설이 전하여 온다.
극락전은 원래 대장전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72년 보수공사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을 발견하였는데, 우리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후 지붕을 크게 수리하기까지 통상적으로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건립연대를 1200년대 초까지 올려볼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기둥은 가운데가 볼록한 배흘림 형태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문을 달고, 양 옆칸에는 창문을 내었다. 건물 안쪽 가운데에는 불상을 모셔놓고 그 위로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화려한 닫집을 만들었다. 또한 불상을 모신 불단의 옆면에는 고려 중기 도자기 무늬와 같은 덩굴무늬를 새겨 놓았다.
봉정사 극락전은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본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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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建物)은 현존(現存)하는 우리나라 목조건축(木造建築) 중 최고(最古)의 건물로 유명하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주심포(柱心包) 건물로 고려시대(高麗時代)의 건물이지만, 전대(前代)인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건축양식(建築樣式)을 내포(內包)하고 있어 더욱 주목되고 있다.
1972년에 실시(實施)한 보수공사(補修工事) 때에 밝혀진 내용에 의하면 건립 후(建立後) 첫 수리(修理)는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12년(1363)이며 그 뒤 조선(朝鮮) 인조(仁祖) 3년(1625) 2차에 걸친 수리가 있었다. 원래는 대장전(大藏殿)이라 불렀으나 뒤에 극락전(極樂殿)이라 개칭(改稱)한 것 같다.
기둥의 배흘림, 공포(공包)의 단조로운 짜임새, 내부가구(內部架構)의 고격(古格)함이 이 건물의 특징이며, 부재(部材) 하나하나가 모두 국보적(國寶的) 기법(技法)을 갖추고 있어 한층 더 지보적(至寶的) 존재(存在)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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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정사극락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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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정사극락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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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쪽측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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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공포와외부가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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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정사극락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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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정사 극락전 내부 가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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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정사 극락전 내부 가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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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정사 극락전 정면 공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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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정사 극락전 측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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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정사 극락전 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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