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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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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1-8호 강화동종(江華銅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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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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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tv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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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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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 목 |
보물 제11-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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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 칭 |
강화동종(江華銅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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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 류 |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의식법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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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량/면적 |
1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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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 정 일 |
1963.0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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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재 지 |
인천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 1040 강화역사관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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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대 |
조선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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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유 자 |
인천광역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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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 리 자 |
강화군 |
이 종은 조선(朝鮮) 숙종(肅宗) 37년(1711) 강화유수(江華留守) 윤지완(尹趾完)이 주조
( 鑄造)한 것을 그후 유수 민진원(閔鎭遠)이 정족산성(鼎足山城)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로
다시 주조한 동종이다.
이 동종은 전통적인 한국종의 형태에서 벗어나 옆띠를 몸체의 중앙에 돌려 몸체를 위 아
래로 구분하여 놓았고, 어깨부분은 턱이 져 있다. 그리고 어깨에서 훨씬 떨어져 꽃무늬
로 장식한 독립된 4개의 유곽(乳廓)을 형성하고, 그 안에 연꽃으로 표현한 9개의 유두
(乳頭)를 배치하였다. 특히 옆띠로 구분한 하반부에는 종구에 한가닥의 꽃무늬옆띠를 돌
려 구연대(口緣帶)와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이 무늬띠와 가운데 옆띠
사이의 넓은 공간에는 장문(長文)의 명문(銘文)이 양각(陽刻)되어 있다. 이 명문에는 주
종(鑄鐘) 관계와 개주(改鑄) 관계 등의 사실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고종(高宗) 3년(1866)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침입한 프랑스군이 종
을 약탈하여 가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한다. 종각(鐘閣)은 260여년전에 강화성(江華
城)의 남문(南門) 동쪽에 건립하였던 것을 강화국방유적(江華國防遺蹟) 복원정화사업(復
元淨化事業)과 함께 현재의 장소로 옮겨 보존(保存)하고 있다.
총중량이 3,912kg에 높이가 198cm이고 구경(口徑)이 138cm에 달하여 조선시대(朝鮮
時代) 후기 동종으로는 거종(巨鐘)에 속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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