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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사적 제16호 경주월성(慶州月城)
글쓴이 tntv 등록일 [2011.03.21]

종    목 사적  제16호
명     칭 경주월성(慶州月城)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
수량/면적 193,845㎡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인왕동 387-1
시     대 신라
소 유 자 국유,사유
관 리 자 경주시

월성은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이다.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하여 반월성·신월성이라고도 하며, 왕

이 계신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파사왕 22년(101)에 성을 쌓고, 금성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전한다. 이 성

은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었으며, 문무왕 때에는 안압지·임해전·첨성대 일대가 편입되어 성의 규모가 확

장되었다.

성을 쌓기 전에는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탈해왕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

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성의 동·서·북쪽은 흙과 돌로 쌓았으며, 남쪽은 절벽인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성벽 밑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마련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임해전으로 통했던 문터가 남아있

다. 성 안에 많은 건물터가 남아있으며, 1741년에 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석빙고가 있다.


신라 시대의 왕성(王城)으로 현재 부분적으로 성벽이 남아 있고, 성내에 건물지가 있다. 성벽은 문천(蚊川)

의 북쪽 냇가에 있는 자연적인 구릉을 이용하여 축조하므로서 모양이 반달 같다 하여 반월성(半月城)·신월

성(新月城)이라고도 하며, 왕이 계신 곳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하였는데, 성안이 넓고 자연경관이

좋아 궁성으로서의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101년(파사왕(婆娑王) 22)에 쌓은 것으로 둘레는 1,023보(步)라고 되어
 
있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월성을 궁성으로 쌓은 뒤 금성(金城)에서 이곳으로 왕성을 옮겼음을 알 수
 
있다. 이 성은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 되었으며, 나라가 커짐에 따라 부근 일대가 편입되기도 하였는데,

특히 문무왕 때에는 안압지(雁鴨池)·임해전(臨海殿)·첨성대(瞻星臺) 일대가 편입되어 확장되는 등 신라의
 
중심지였다. 동서길이 900m, 남북길이 260m이며 성안에는 조선 시기의 석빙고(石氷庫)가 남아 있다. 성

벽의 동·서·북면은 대체로 흙과 돌로 기초를 다져 쌓고 그 위를 점토로 덮었으며, 남면은 절벽인 자연 지형

을 그대로 이용하여 거의 쌓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동경잡기(東京雜記)에 의하면 290년(유례왕(儒禮

王) 7) 큰 홍수로 인하여 월성이 무너져 이듬해에 보수하였으며, 487년(소지왕(炤智王) 9)에 다시 왕이 이

곳으로 이거했다고 한다.

원래 월성안에는 남문과 북문 격인 귀정문(歸正門)·북문(北門)·인화문(仁化門)·현덕문(玄德門)·무평문(武

平門)·준례문(遵禮門) 등의 문과 월상루(月上樓)·망덕루(望德樓)·명학루(鳴鶴樓)·고루(鼓樓) 등의 누각, 왕

이 정사를 돌보던 남당((南堂) : 도당(都堂)), 신하들과 외국 사신의 조하(朝賀)를 받거나 접견하던 조원전

(朝元殿)·삼궁((三宮) : 대궁(大宮)·양궁(梁宮)·사랑궁(沙梁宮))을 관할하던 내성(內省) 등 많은 건물이 있

었다고 한다. 또한, 경주석씨(慶州昔氏)의 시조를 모시는 숭신전(崇信殿)도 있었으나 1980년 석탈해왕릉

(昔脫解王陵) 남쪽으로 옮겨졌다. 동쪽의 명활성(明活城), 서쪽의 서형산성((西兄山城), 일명 선도산성(仙

桃山城)), 남쪽의 남산성(南山城), 북쪽의 북형산성(北兄山城)이 나성(羅城)으로 호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 석탈해가 원래 호공(瓠公)의 거주지인 이곳을 거짓 꾀를 부려 호공을 몰아내고 차지하였다는 전설도 전

한다.

최근의 발굴 조사를 통하여 성벽의 외곽으로 자연적인 해자와 인공을 가하여 안벽(岸壁)을 정연히 축조한

 해자가 존재하고, 다시 외곽으로 건물지가 조밀하게 있었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해자는 월성의 동문지에

서 안압지 사이에서 너비 35∼46m의 규모이고, 북쪽에서는 23∼42m의 너비나 된다.



경주월성

 


경주월성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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