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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사적 제19호 경주계림(慶州鷄林)
글쓴이 tntv 등록일 [2011.03.21]


종    목 사적  제19호
명     칭 경주계림(慶州鷄林)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구비전승지/ 구비전승지
수량/면적 7,273㎡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교동 1
시     대 신라
소 유 자 국유
관 리 자 경주시
계림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을 간직한 숲이다. 원래 신라를
 
건국할 때부터 있던 숲으로, 시림이라고 하던 것을 알지가 태어난 뒤로 계림이라 하였다.


탈해왕 4년(60)에 왕이 금성 서쪽 시림 숲 사이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온통 환한 빛으

로 가득하여, 날이 밝은 후 신하를 보내어 살피도록 하였다. 신하가 시림에 이르러 보니 금으

로 된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 울고 있어 돌아와 고하니, 왕이
 
즉시 시림으로 가서 궤짝을 열어 보았다. 그 속에는 총명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있었고, 왕은
 
하늘에서 보낸 아이라 하여 태자로 삼았다. 아기라는 뜻의 '알지'라는 이름을 주고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씨라 하였다.


왕은 알지를 태자로 삼았으나 후에 알지는 파사에게 왕위를 양보하였다. 그 후 알지의 7대
 
후손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미추왕이다. 이후 내물왕부터 신라가 망할 때까지 김알지의
 
후손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으며, 계림은 신성스러운 곳으로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이

곳에는 조선 순조 3년(1803)에 세운 김알지 탄생에 대한 비(碑)가 남아있다.


계림(鷄林)은 첨성대(瞻星臺)와 월성(月城) - 또는 신월성(新月城) - 사이에 있는 숲으로서
 
왕버들,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의 고목(古木)이 울창하게 서 있으며, 신라왕성(新羅王姓)인
 
김씨(金氏)의 시조(始祖) 김알지(金閼智)의 탄강전설(誕降傳說)과 관계 깊은 숲이다. 『삼국

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된 김알지(金閼智) 탄강신화(誕降神話)는 다음과 같다.


탈해왕(脫解王) 4년(A.D. 60) 8월 4일 밤에 호공(瓠公)이 월성(月城) 서쪽마을을 지나 가는

데 마을 옆의 시림(始林)이 온통 환한 광명(光明)으로 차 있었다. 자주빛 구름이 하늘에서 그
 
숲속으로 드리워져 있었고 그 구름 속으로는 황금으로 된 궤(櫃) 하나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

었다. 숲속을 밝히는 그 광명(光明)은 황금궤(皇金櫃)에서 번져 나오고 있었고 그 나무에는
 
흰닭 한 마리가 울고 있었다. 호공(瓠公)은 궁궐로 달려가서 이 광경을 탈해왕(脫解王)에게
 
고(告)하자 왕(王)은 즉시 시림(始林)으로 거동하여 궤(櫃)를 열어 보니 그 속에는 한 사내아

이가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 마치 혁거세(赫居世)의 고사(故事)와 같았다. 이 아이를 「알지

(閼智)」라 이름하니 알지(閼智)란 곧 우리말로 「아기」를 뜻하는 것이다. 탈해왕(脫解王)

이 「閼智」를 안고 궁으로 귀환하는데 새와 짐승들이 춤을 추며 기뻐하였다. 왕은 「알지」

를 태자(太子)로 삼았으나 후일 왕위(王位)를 파사(婆娑)에게 양보하고 왕위에 오르지는 않

았다. 「알지」는 금궤(金櫃)에서 나왔다고 해서 성(姓)을 김(金)으로 하였다. 그후 「알지

(閼智)」는 열한(熱漢)을 낳고 열한(熱漢)은 아도(阿都)를 낳고 아도(阿都)는 수유(首留)를
 
낳고 수유(首留)는 욱부(郁部)를 낳고 욱부(郁部)는 구도(俱道)를 낳고 구도(俱道)는 미추

(未鄒)를 낳았는데 미추는 김씨로서는 최초로 왕위(王位)에 올라 신라 13대왕이 되었다.

하늘에서 자주빛 구름이 드리워져 있다거나 알(란(卵)) 대신에 금궤(金櫃)가 등장한 것 등을
 
보면 계림(鷄林)의 김알지신화 (金閼智神話)는 천손강림설화(天孫降臨說話)이자 난생설화

(卵生說話)의 일종이라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보면 김알지탄생일

(金閼智誕生日)은 탈해왕(脫解王) 9년(A.D. 65)으로 되어 있고 내용도 『삼국유사(三國遺

事)』와는 약간 다르지만 시림(始林)에서 태어난 알지(閼智)의 기록은 역시 같다. 계림(鷄林)

이란 명칭은 숲에서 닭이 울었으므로 그렇게 했다 하며 후에 국명(國名)으로도 되었다. 최치

원의 사산비명(四山碑名)의 여러 군데에서 보이는 「계림(鷄林)」이라는 문자(文字)나 박제

상(朴堤上)이 왜왕(倭王)에게 계림(鷄林)」운운(云云)하는 점, 당서(唐書)의 백거이전(白居

易傳)에 보이는 계림(鷄林)과 송조(宋朝) 손목(孫穆)의 계림유사(鷄林類事), 오식(吳植)의

계림지(鷄林誌) 왕란(王亂)의 계림지(鷄林誌) 등 여러 가지 예를 감안해 볼 때 계림(鷄林) 은
 
신라의 국명(國名)으로 쓰여졌던 것이다.


시림(始林)은 신라(新羅)의 신성림(神聖林)이었고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는 것도 모두 위와
 
같은 사실(史實)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곳은 약 100여주의 고목(古木)이 우거

져 있으며 조선(朝鮮) 순조(純祖) 3년(A.D. 1803)에 세운 비가 서 있다.


경주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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