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의 몸에 힘찬 용의 머리 국보 59호 법천사지광국사탑비(法泉寺智光國師塔碑)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산70

 지광국사현묘탑비(智光國師玄妙塔碑)는 고려시대의 석비(石碑)로서의 특징적인 양식을 보여준다.
탑비는 오랫동안 풍마우세(風磨雨洗)와 뇌전(雷電)등으로 파손된 곳이많고 문자와 조각에도 손상된 부분이 많다. 귀부(龜趺)는 넓은 지대석(地臺石) 위에 놓여 있고, 밑부분은 구름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용두화(龍頭化)된 귀두(龜頭)의 목은 길게 빼어 정면을 향하고 목에는 어린(魚鱗)이 양각되었으며 머리는 입을 벌린 괴수(怪獸)의 형태로 치아가 입술 사이로 보인다.
등에는 방형(方刑)의 구획(區劃)안에 거북 모양의 귀갑문(龜甲紋)을 새겼으며 그 내부에 '王'자를 양각(陽刻)하였고, 등의 중앙에 간결한 복연(伏蓮)으로 비좌(碑座)를 마련하여 비신(碑身)을 세웠다.
비문의 내용은 지광국사가 수도한 내력과 행장(行狀)이 기술되어 있고, 비의 뒷면에는 탑비를 건립한 당시 종사한 승려의 인원수 및 건립내역을 기록되어 있다.
지광국사현묘탑비는 고려(高麗) 초에 문장이 뛰어나고 시를 잘 짓기로 유명한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朗平章事) 정유산(鄭惟産)이 왕명을 받들며 비문을 짓고, 글씨를 잘 쓰던 안민후(安民厚)가 비문(碑文)과 음기(陰記)를 서병전(書幷篆)하였으며 이영보(李英輔)와 장자춘(張子春)이 각자(刻字)하였다. 글씨는 구양순체(歐陽詢體)를 기본으로 부드러움과 단아함을 추구하였다. 입비(立碑) 연대는 비문의 말미(末尾)에 새겨져 있는 '태안원년세재을축중추월일수(太安元年歲在乙丑仲秋月日樹)'로 보아 고려 선종(宣宗) 2년(1085)임을 확인할 수 있다.
 <비각을 훼손한 십자가-5m 높이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십자가를 긁은듯-안타까운 우리의 현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