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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일: 2022. 2. 22. 애민정신(愛民精神)이 깃든 대표적 과학 문화재, 앙부일구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앙부일영(仰釜日影)으로도 쓰며, 이는 ‘솥이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을 한 해시계’라는 의미이다. 세종 16년(1434) 장영실(蔣英實), 이천(李蕆), 이순지(李純之) 등이 왕명에 따라 처음 만들었으며, 그해 10월 종묘 앞과 혜정교(惠政橋, 현 서울 종로에 설치되었던 다리)에 각 1대씩 설치한 후, 조선 말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어 궁궐과 관공서에 널리 보급되었다.
조선 초기 제작된 앙부일구는 현재까지 알려진 사례가 없으며 지금 남아있는 앙부일구의 경우, 겉면에 ‘북극고 37도 39분 15초(北極高 三十七度 三十九分 一十五秒)’라고 새겨진 명문의 위도 값을 숙종 39년(1713) 이후 처음 사용한 사실이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를 통해 확인 된다. 제작 시기 역시 1713년 이후로 추정된다.
3점의 앙부일구는 모두 황동금속제로서 오목한 몸체를 네 개의 다리가 받친 모습을 하고 있다. 오목한 바닥 안쪽에 자리한 시반(時盤)에는 남북[午子] 방향에 북극으로 향한 영침(影針, 그림자 침)이 달려 있고, 시간을 측정 할 수 있는 세로 눈금인 시각선이 15분 간격으로, 계절을 알려주는 24절기는 가로 눈금으로 13개의 절기선이은 상감(銀象嵌)으로 새겨져 있다. 받침대는 네 개의 다리 와 열십자[十]의 다리받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네 개의 다리에는 각기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의 모습을 새겼으며 용 좌우에 구름 문양을 표현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본을 포함해 3개의 앙부일구는 ▲제작기법에서 시반의 시각선과 절기선, 지평면의 절기 글자와 24방향 글자에 표현된 은상감 기법과 영침, 받침 대에 새겨진 용무늬, 구름장식, 거북머리 장식 등이 뛰어 난 조형미를 보이고 있어 숙련된 기술자가 제작한 최상 급의 앙부일구로 판단되는 점 ▲태양의 그림자로 시간뿐 아니라 날짜(절기)를 함께 파악할 수 있도록 하여 독창성이 뛰어나다는 점 ▲조선시대 천문과학기술의 발전과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 과학 문화재라는 점에서 보물로서 지정 가치가 충분하다.
* 국조역상고 : 1796년(정조 20년) 천문관측을 담당하는 관청인 관상감(觀象監)에서 편찬한 조선의 천문역법에 관한 책. 역법(曆法)의 이론과 실제 사용에 필요한 자료가 망라되어 있음 
조선시대 전적 및 불교조각도 함께 지정 세종대왕기념사업회(세종대왕기념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치통감권266~270(資治通鑑 卷二百六十六~ 二百七十)’은 세종 16년(1434) 편찬에 착수해 세종 18년(1436)에 완료된 총 294권 가운데 권266~270의 1책 (5권)에 해당하는 서책으로 전해지는 내용과 수량이 많지 않아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번에 지정된 자치통감은 현재까지 해당 권이 없는 유일본으로 초주갑인자로 인쇄한 금속활자본이다. 이미 지정된 자료와 비교할 때 인쇄 및 보존 상태가 매우 우수해 서지적 가치 또한 높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치통감 권266~270은 조선 초기 초주갑인자 판본을 보완해 주며, 전해지는 사례가 많지 않은 희귀본으로서 당시 정치학과 행정학, 서지학 등의 역사적 자료로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경주 분황사 금동약사여래 입상(慶州 芬皇寺 金銅藥師如來立像)’은 높이 3.4m 에 달하는 대형 불상으로 조선 후기의 유일하고 규모가 가장 큰 금동불 입상이다.
1998년 분황사 보광전 해체 수리 과정 중 건축 부재에서 「분황사상량기(芬皇寺 上樑記)」와 「부동명활성하분황사중창문(府東明活城 下分皇寺重創文)」 묵서(墨書)가 확인되어 이 약사여래 입상이 광해군 1년(1609) 5,360근의 동을 모아 제작된 사실이 밝혀졌다. 1616년과 1680년에 작성된 두 건의 상량문을 통해 1609년에 동(銅)으로 불상을 조성했다는 경위와 불상의 명칭까지 분명히 밝히고 있어 이 시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있다.
글. 편집실 자료. 유형문화재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