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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추위를 녹여주는 작은 불씨, 성냥
글쓴이 tntv 등록일 [2013.03.13]



생필품에서 집들이선물까지, 성냥의 가치

성냥이 한국에 처음 들어온 시기는 19세기 후반으로 당시 일본 수신사로 파견되었던 이동인이라는 스님이 성냥을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했다. 그 후 1886년 인천 제물포에 성냥공장이 설립되면서 국내에서도 성냥을 자체 생산하게 되었다. 하지만 성냥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시기는 광복 후였다. 왜냐하면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이 국내에서 성냥 생산을 독점하였고 성냥 가격이 비싸 대중들은 쉽게 구입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광복 후 성냥공장의 수가 증가하면서 성냥 산업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당시 성냥공장의 수는 1947년에 5개에 불과하던 것이 1954년에는 137개로 증가하였다. 집안 구석구석 성냥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부엌에서는 군불을 지필 때, 사랑방에서는 남성 들이 담배에 불을 붙일 때 성냥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성냥이 대중화되면서 집들이 선물로 각광을 받았다. 성냥이 집들이 선물로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당시 생필품으로 가장 인기가 있는 물품 중 하나였고, 성냥은 불을 상징하는 것으로 집안의 살림이 불처럼 활활 일어나라는 뜻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렵고가난한시절성냥공장에서인생을배운젊은여성들1)

성냥은 노동집약도가 매우 높은 산업으로 성냥 공장에서 일한 사람들은 대개 젊은 여성들이 많았다. 이 여성들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후, 성냥 공장에 취직하였다. 현재 국내에 현존하는 유일한 성냥 생산 공장인‘의성 성광성냥공업사’는 의성군민 중에서 이 공장을 다니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의성군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을 주었다. 특히 농업에만 종사하던 여성을 공장에 취직시킴으로써 가정 경제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성냥공장에 취직한 여성들이 하는 작업은 대개 성냥개비를 성냥갑에 담는 일과 성냥갑 옆면에 적인을 바르는 일이었다. 당시 여성 직원들의 임금 방식은 돈내기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제품의 개수당 일정한 금액을 받고 일을 하는 것이다. 임금방식이 돈내기 방식이기 때문에 직원들 간의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고 한다. 또한 월급날이 되면 전직원을 공장 공터에 모아 놓고 한명씩 호명하며 월급을 전달하였는데, 이 때 모든 직원들의 월급액을 공개하였다. 이렇게 월급액을 공개하는 것은 동료들 사이에 경쟁을 유발하여 작업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각주1) 이 이야기는 의성 성광성냥공업사에 재직했던 박종식의 이야기를 토대로 작성하였다.



생필품에서 집들이선물까지, 성냥의 가치

애주가들은 소주의 이름만 듣고도 그 소주가 어느 지역에서 생산되는지 알 수 있다. 성냥도 소주와 마찬가지로 그 이름만으로 생산 지역을 알 수 있었다. 그 예로 인천의‘대한성냥’, 부산의‘유엔성냥’, 경북 의성의‘향로’, 충남 논산의‘비사표 성냥’이 그것이었다. 이는 당시 성냥산업이 얼마나 번성했으며 성냥 공장들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알 수 있는 점이다. 또한 성냥 공장들은 각자의 제품에 특색을 살리기 위해서 성냥갑의 모양을 둥글게 만든다든지, 8각형으로 만든다든지, 성냥개비가 쏟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뚜껑에 스프링을 달기도 하였다. 또한 성냥의 머리 부분에 있는 두약(성냥에 불을 점화시키는 화학물질)의 색깔을 검은색, 초록색 그리고 흰색 등으로 하여 소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자 하였다. 이와 함께 성냥은 광고용으로 인기가 높았다. 주로 음식점, 다방 그리고 숙박시설에서 성냥에 가게의 상호, 위치 그리고 전화번호 등을 넣어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광고용 성냥을 대량으로 주문하였다. 무엇보다 광고용 성냥은 생산 단가가 저렴하고 다른 광고물에 비해 광고효과도 좋았다.

라이터,보일러,가스레인지의 등장 그리고 성냥의 퇴장

성냥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다. 그가 바로 홍콩 액션 배우인 주윤발이다. 1980년대 홍콩 느와르 영화의 대표작인 <영웅본색>에서 성냥개비를 물고 나온 주윤발을 본 젊은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의 모습을 따라하곤 했다. 하지만 라이터의 등장, 난방과 취사방식의 변화 그리고 다양한 발화 도구의 등장으로 성냥은 우리 주변에서 서서히 사 라졌다. 현존하는 국내 유일한 성냥 생산 공장인 의성 성광성냥공업사는 과거 250여 명이 넘는 직원들이 있었을 정도로 번성하였지만, 지금은 고작 10명의 직원만이 공장을 지키고 있다.

성냥은 단순히 불을 켜는 도구가 아닌 일제강점기를 거쳐 새마을 운동 그리고 선진국에 진입한 대한민국 근현대 생활상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물건이라 하겠다.

글. 손대원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원) 사진.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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