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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살아가는 황해도 큰무당의 내력
“무당으로 살아온 세월을 들으러 왔어? 다 늙은 사람 이야기를 들어서 뭐하누.”황해도 안악군 대행면 풍곡리 출신의 황해도 큰 무당 정학봉 보유자가 너그러운 웃음으로 되묻는다.“결혼하기 전에 고향에서 신내림굿을 받았어. 신을 모실 운명이었던 게지. 신어머니에게 만구대탁굿이랑 소놀이굿을 배웠어.”그의 스승은 황해도 옹진군 북면 출신의 우옥주 만신으로 김기백 만신의 제자였다. 김기백은 정학봉 보유자의신할아버지인 셈인데, 그는 황해도 신천에서 출생하여 10세부터 무업巫業을 하여 황해도 지역에서 크게 명성을 떨쳤던 인물이다.
‘큰무당’,‘큰만신’이라는 칭호는 모든 무당에게 내려지는 것이 아니다. 정학봉 보유자가 큰 무당으로 불리는 이유는 황해도 무속의 뚜렷한 전승계보를 지닌 황해도 출신의 몇 안되는 무당이기 때문이다.“한국전쟁이 일어나서 인천으로 피난 와서도 무당으로 살았지. 무업이라는게 내가 하고 싶다고 하고, 하기 싫다고 그만 둘 수 있는 게 아니거든.”무당으로 사는 힘겨움을 뭇사람이 짐작하기 힘들 것이라는 점을 그는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자신의 평안平安보다 남을 위해 염원하며 굿판을 이어 온 60여 년의 긴 시간을 담담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보름씩 펼쳐지는 큰굿, 황해도 만구대탁굿
‘만구대택萬口大擇굿’,‘만수대택굿’,‘만대탁’으로도 불리는‘만구대탁굿’은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고, 사후의 극락왕생을 두루 기원하는 황해도의 대표적인 굿이다.“이 굿은 빨리 끝내면 3일이고, 5일, 7일, 보름동안에도 계속되는 큰 굿이야. 황해도의 보통 굿이 12거리인데, 만구대탁굿은 감흥거리, 작두거리, 타살거리 등 24거리라서 며칠씩 굿을 해야 해. 그만큼 굿판에서 모시는 신의 수도 많아.”정학봉 보유자의 말처럼 황해도 만구대탁굿은 이 지역의 굿중에서 규모가 제일 커서 아무 무당이나 굿판을 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어머니가 저 세상 사람이 되기 전에 굿거리마다 춤과 노래巫歌하는 방법을 다 가르쳐 주셨어. 이것을‘굿문서’라고 하는데 만구대탁굿도 배우고, 철무리굿, 대동굿 할 것 없이 황해도 굿은 다 배웠지.”황해도의 굿은 유난히 종류가 많으며 굿거리도 풍부하며 성대하다. 연구자들이 황해도 굿에 관심이 높은 까닭도 이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황해도 지역 무속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그를 찾아오는 연구자들도 많아 그의 집 문턱은 닳고 닳았다.
황해도 큰무당의‘GOOD판’
“무당이라고 괄시도 많이 받았지만, 찾아오는 사람 있어서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거지.”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무업에 종사하면서 뭇사람 들로부터 받은 상처도 깊었을 것이지만 그는‘원망’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지 않고 살아 왔다.
“그래도 옛날하고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했어. 굿하는 것이 외국으로 수출될지 누가 알았겠어.”80년대부터 무속이 문화로, 예술로 평가받기 시작하면서‘만구대탁굿’은 국내는 물론 국외로 초청을 받아 공연을 벌이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만구대탁굿’이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면서 그는 보유자가 되었다. 자신이 보유자가 되었다는 기쁨보다 함께 황해도 굿을 전승하는 제자들이 보다 자부심을 가지고 무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된 것에 눈물을 흘렸던 정학봉 보유자.‘만萬인간의 만萬가지 나쁜 구설수口舌數와 액厄을 크게 막는다’는 의미를 지닌 ‘만구대탁굿’이란 이름처럼 제자들과 함께 황해도의‘GOOD판’을 온 전하게 전승해 주기를 바래본다.
글. 황경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간송미술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