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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최초의 서울, 이성계가 아니라 고려 숙종 작품"
글쓴이 tntv 등록일 [2013.03.26]


"최초의 서울, 이성계가 아니라 고려 숙종 작품"

  •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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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03.23 03:02 | 수정 : 2013.03.23 14:41

    都城 원점 경복궁은 고려 행궁터 재활용… 서울 입지 다지는데 길잡이 역할 해
    詩人 이상, 윤동주도 서촌의 역사 만들어

    오래된 서울

    최종현·김창희 지음|동하|364쪽|2만원

    "서울의 나이는 600년인가, 2000년인가"라는 질문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오래된 논쟁이다. ①'서울 600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수도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긴 시점이 기준. ②'서울 2000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백제 건국 시점인 기원전 18년을 서울의 시작으로 본다. 팽팽히 맞서는 양쪽 입장에 대해 이 책의 저자들은 "둘 다 틀렸다"고 말한다. "서울의 시공간적 원점은 900년 전인 서기 1104년 8월, 고려 숙종이 지금의 경복궁 서북쪽 한 귀퉁이를 지정, 남경(南京) 행궁(行宮)을 완공한 시점이다." 즉, 고려의 남경에서 서울이 탄생했다는 주장이다.

    ◇"서울의 나이는 900년"

    왜 하필 고려 남경인가? 이들이 내미는 역사적·지리적 근거가 설득력 있다. 조선시대의 사대문 안에 해당하는 서울 도성 지역의 원점은 경복궁. 그런데 경복궁은 다름 아닌 고려 행궁 터를 재활용한 것이니 남경이 서울의 터를 잡는 길잡이가 됐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경복궁 안 남경 행궁 터에서 남쪽을 내려다본 전경 사진을 싣고 이렇게 상상한다. "고려 숙종은 이곳 연흥전에 앉아 서울 시내를 내려다봤을 것이다. 그 시선이야말로 우리 서울 탐사의 출발점이다."

    ◇세종, 왕궁 아닌 서촌에서 태어나

    이제 책은 본격적으로 속도를 낸다.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에 자리잡은 '서촌'의 땅과 물길과 하늘길을 시작으로,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을 시간순으로 훑으며 역사를 길어올린다. 서촌은 초기에는 왕족들의 터전이었다가 중기부터는 사대부들의 주거지이자 서인(西人) 학문과 예술의 발상지였으며 후기에는 중인들의 문예운동이 꽃핀 곳이다.

    겸재 정선이 만년에 그린‘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동하 제공
    서촌의 첫 주인은 왕족. 세종(재위 1418~1450)도 (궁이 아니라) 서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왕이 되기 전에 태어난 데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째 아들이었다. 결혼해서 왕궁 밖에서 살 운명이었던 것. '세종실록'은 "태조 6년 4월 임진일에 한양 준수방(俊秀坊) 잠저(潛邸)에서 탄생했다"고 전한다. 잠저란 왕이 즉위 전에 살던 사가(私家). 저자들은 준수방의 현재 위치도 어렵지 않게 찾아낸다. "경복궁역에서 자하문로를 따라 북쪽으로 250m쯤 가면 우리은행 효자동지점이 있다. 뒤로 인왕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큰 길과 만나 삼각형 땅을 이룬다. 그 삼각형 지형과 주변이 모두 준수방이었다."(99쪽)

    광해군(재위 1608~1623)은 인왕산 기슭의 면모를 완전히 바꿨다. 둘째 아들에 서자 출신이란 자격지심에 시달린 그는 인왕산 아래에 왕기(王氣)가 서려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자신의 궁궐을 지으라고 명한다. '광해군일기' 1617년 6월 기록을 보자. "한꺼번에 공사를 시작해 제조와 낭청이 수백 명이었으며 헐어버린 민가가 수천 채나 되었다." 왕위 계승의 정당화를 꿈꾸며 궁궐을 세 곳이나 지었지만, 인조반정으로 정작 광해군 자신은 하루도 들어가 살지 못했다.

    ◇발로 쓴 서촌의 역사

    이후 경화사족(京華士族·한양에 거주하던 문사권력층)에서 중인, 모던보이를 거쳐 현대사의 격랑에 휘말린 사회주의자들까지 다양한 꿈의 주체들이 서촌을 거쳐갔다. 이들의 이야기가 그대로 아픈 우리 역사의 축도다. 친일파 윤덕영의 옥인동 집이 1917년 1만6628평에 달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한양 아방궁'이라 불렸을 정도. 1927년에는 옥인동 전체 면적의 54%가 윤덕영 소유였다. 천재 시인 이상과 화가 구본웅, 민족시인 윤동주와 국문학자 정병욱 등 동행의 여정도 뒤쫓는다.

     
    일반사와 도시사, 지리학을 넘나들며 서촌에 숨겨진 역사의 굴곡을 되살려냈다. 저자들은 겸재 정선이 만년에 그린 걸작 '인왕제색도', 그로부터 꼭 40년 뒤 인왕산 기슭에서 벌어진 일을 담은 이인문과 김홍도의 그림 속 장소를 직접 찾아 앵글을 확인한다. 자료를 뒤지고 발이 부르트도록 골목 골목을 누빈 결과물이다. 사진과 고지도, 민정기 화백의 그림까지 시각적 재미도 풍성하다.

    "서울 역사의 다양한 층위가 확인될수록 오늘 우리 삶의 다양성 역시 해명될 가능성이 커진다. '오래된 서울'은 과거 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서울'이기도 하고 우리가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내일의 서울'이기도 하다."

    저자들의 공력이 돋보인다. 서촌을 답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길잡이 답사책으로, 옛 그림에 흥미있는 이들에겐 미술사 책으로도 읽히겠다. 동대문과 광희문(남소문) 주변을 다룬 둘째 권, 정동과 남산자락, 종로·청계천 등을 다룬 셋째 권이 기다려진다.
    출처:조선일보
    기사원문 보기: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22/20130322022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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