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경관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서귀포시 성산읍 섭지코지. 해안절경을 따라 관광객들이 줄 지어 걷고 있지만 이곳은 이미 재벌의 땅이다. (주)보광제주가 섭지코지 땅의 80%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해안 절벽과 맞닿은 절대보전지역과 공유수면을 빼면 섭지코지 전부가 보광의 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광객들에게 허용된 땅은 해안산책로가 전부다. 보광은 유채꽃이 만발한 곳곳에 ‘이곳은 사유지이므로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예부터 섭지코지 등대에서 바라보는 성산일출봉은 일품이었다. 단아하면서도 당당한 기품의 성산일출봉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등대에 서면 성산일출봉은 제 모습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 과거처럼 보여줄 수가 없다. 글라스하우스, 보광이 자랑하는 ‘오감을 만족시키는 공간’ 건물이 등대와 성산일출봉 사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글라스하우스는 온전한 성산일출봉을 바라볼 수 있는 경관을 독차지하고 있다. 이제 섭지코지에서 농민을 보기는 힘들다. 성산읍 신량리 주민들은 개발 붐에 땅을 팔고 조상이 대대로 가꿔오던 터전에서 떠났다.
경관의 사유화, 원주민 이주의 전형을 보여주는 섭지코지는 제주 개발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제주지역개발사는 1970년대 중문관광단지 조성부터 본격화된다. 중문관광단지 역시 한 마을 주민을 통째로 이주시킨 후 땅을 파기 시작했다. 70년대 종합개발계획에 이어 90년대 제주개발특별법 시대, 2000년대 국제자유도시 개발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구도의 개발이 반복돼 왔다
우근민 제주지사는 “개발하지 않으면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냐”고 반문하고 있다. 지금도 세계자연유산, 미래가치가 풍부한 제주섬의 콘셉트에 맞춰 투자유치와 개발광풍의 열차가 속도를 더하고 있다. 이제는 이 열차를 잠깐 멈추고 고민해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숙박단지 조성해 절경 독차지… 제주 ‘섭지코지’ 개발의 비극
ㆍ‘보광’서 관광단지 개발 명목으로 땅 매입, 감세 혜택 받고 중국계 회사에 되팔아 ‘땅 장사’ ㆍ웅장한 건물들에 성산일출봉 경관 가려
‘섭지코지’는 서귀포시 성산읍 신양해수욕장에서 시작돼 2㎞에 걸쳐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있는 육계도다. 성산포 해양관광단지로 지정돼 (주)보광제주가 이곳을 휘닉스아일랜드로 개발하면서 ‘육지인’의 땅이 돼버렸다. 제주 개발사에서 제주인의 아픔으로 기록되고 있는 땅, 섭지코지. 그곳의 사연을 더듬어보자.
섭지코지의 ‘섭지’는 드나드는 골목이 비좁다는 ‘협지’에서 유래했다. ‘코지’는 곶을 뜻하는 제주어다. 그림같은 언덕과 푸른 바다가 조화를 이루면서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촬영지로도 유명해졌다. 이병헌·송혜교가 주연한 드라마 <올인>의 기념관 ‘올인하우스’도 세워져 있다.
섭지코지는 신양리 등 인근 마을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보광이 땅을 사들이기 이전에 주민들은 섭지코지 안에서 보리와 고구마, 유채 농사를 지었다. 섭지코지의 전체 면적은 75만㎡ 정도다. 이 중 65만3821㎡가 성산포 해양관광단지로 지정됐다. 2006년 (주)보광제주를 사업 시행자로 한 관광단지 개발사업이 승인됐다. 보광은 사유지와 국공유지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관광단지로 개발되면 엄청 좋아진다”는 말에 군말없이 땅을 팔았다. 단지를 둘러싼 울타리가 쳐지면서 농사는 지을 수 없게 됐다. 현재는 끝까지 땅을 팔지 않은 주민 1명이 브로콜리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조상한테 물려받은 땅을 팔 수 없다”며 지금도 버티고 있다.
2013년 같은 장소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풍경이 건물에 가린다. | 강홍균 기자 khk5056@kyunghyang.com
■ 보광, 양도차익만 46억8900만원 챙겨
보광은 2008년 섭지코지 관광단지를 제주투자진흥지구로 지정받았다. 투자진흥지구는 투자유치 차원에서 각종 혜택을 부여받았다. 보광 역시 인센티브로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 등 모두 74억원을 감면받았다. 보광은 수십억원의 감면혜택을 받고도 지난해 지구 내 미개발토지 3만7829㎡를 중국계 자본인 (주)오삼코리아에 되팔았다. ㎡당 7만2000~7만8000원에 매입한 땅을 ㎡당 18만원에 매각한 것이다. 21억1100만원에 매입했던 만큼 양도차익만 46억8900만원을 남겼다. 세금을 감면받고도 땅장사로 톡톡히 한몫을 본 셈이다.
보광이 되판 땅 중에는 제주도가 매각한 도유지 2만9228㎡가 포함돼 있다. 서귀포시는 보광이 투자진흥지구의 지정 취지대로 땅을 사용하지 않고 매각했다고 판단, 취득세와 등록세 1억4600만원을 추징했다. 하지만 보광은 이미 46억여원의 이익을 챙긴 뒤였다. 46억여원을 챙겼는데 1억여원의 세금은 ‘새 발의 피’다.
보광은 땅을 매각하면서 제주특별법상의 국공유지 환매규약을 교묘히 악용했다는 비난도 사고 있다. 환매조건은 사업승인이 취소되거나 5년 내에 매수용도 외의 목적으로 사용했을 경우다. 보광이 땅을 판 시점은 2011년 12월이다. 제주도로부터 도유지를 매입한 2006년 8월에서 5년3개월이 지났다. 환매기간 5년을 넘기자마자 땅을 팔아치운 것이다.
보광은 관광단지 사업승인을 받으면서 2014년까지 3870억원을 투입해 호텔 250실과 콘도 1115실, 해중전망대, 전시관, 해양주제공원, 해양레포츠센터 등을 조성하겠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1단계 사업에서 준공된 것은 콘도 3동(300실), 빌라(50실), 전시관에 불과하다. 돈 되는 숙박시설에만 치중해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해양시설 건설은 등한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해양관광단지가 아니라 전망 좋은 대규모 숙박단지로 변질됐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2단계 사업 역시 콘도 660실, 호텔 250실 등 1000실이 넘는 숙박시설을 조성하는 것으로 짜여졌다.
보광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6년 전 토지 매입 당시와 현재 토지가치는 매우 다른 상황인 만큼 단순비교해서 땅장사라고 치부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는 것이다. 토목, 도로, 상하수도, 전기 등 기반시설에 투자한 액수도 감안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 희생양이 된 주민들
섭지코지 해안도로를 따라 차를 몰고 가다보면 주차장이 나온다. 신양리에서 운영하는 마을상가도 있다. 음료수를 파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봤다. “휘닉스아일랜드 들어오니까 어떠꽈.” 아주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뭘. 떨어지는 게 하나도 없는디.”
보광은 2007년 섭지코지 해안의 마을상가와 주차장 등 도유지와 사유지를 모두 매입해 개발하려 했다. 주민들이 마을상가와 주차장에서 철수하면 새로운 상가를 지어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제안도 내놓았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섭지코지 해안은 주민의 생존 터전이자 관광객도 함께 이용하는 공공재산’이라며 반대했다. 진입로를 보광에 팔아줬던 제주도는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하자 재매입했다.
보광은 당초 섭지코지로 들어가는 입구를 하나만 만들고 나머지 길은 모두 폐쇄한 후 ‘프라이빗 비치’를 만드는 구상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철 신양리 이장(57)은 “섭지코지 마을상가는 50대부터 80대까지 마을 주민들이 직접 운영해 공동수익을 내고 있는 곳”이라며 “휘닉스아일랜드가 식당과 편의점 등 유사한 영업시설을 운영하면서 마을상가 매출이 연간 3억원 이상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휘닉스아일랜드 안에 떡볶이를 파는 분식집까지 있다”며 “자장면이나 치킨 배달도 휘닉스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지역상권에 남겨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김 이장의 넋두리는 계속된다. “주민 중 한 분이 올해 보광에서 재계약을 안 해줘서 그만뒀다. 15명 정도가 휘닉스아일랜드에서 일하는데 모두 비정규직이다. 청소나 경비가 전부다. 보광이 5년 이상 영업했는데 정규직은 한 명도 없다.” 그가 내린 결론은 “보광이 와서 주민들이 1원이라도 받기보다 오히려 손해가 났다”는 것이다.
섭지코지 경관의 사유화는 공무원들조차 한탄하고 있다. 제주도청의 한 공무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섭지코지를 그렇게 팔아치우는 것이 아닌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휘닉스아일랜드의 글라스하우스는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물이지만 주변을 압도한다. 섭지코지 등대에서 바라볼 때 세계자연유산 성산일출봉 전경을 가로막아 버린다. 등대에 오른 관광객들은 성산일출봉을 가리는 건물을 보면서 “저게 뭐야”라며 한결같이 혀를 찬다. 보광의 휘닉스아일랜드 홍보팸플릿은 섭지코지를 ‘위대한 자연이 선사한 단 하나의 천상낙원’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천상낙원을 휘닉스아일랜드와 그 이용자들만 독차지하고 있다.
최근 성산읍이 제작한 ‘성산10경’의 섭지코지편 신화에는 ‘포악스러운 거인이 섭지코지 해안의 기암괴석을 뿌리째 뽑아 팔아먹으려다 성산 사람들의 저항에 부딪혀 쫓겨났다’는 내용이 소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