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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때보다 생동감 넘치는 5월입니다. 어디를 보아도 파릇파릇한 나무와 꽃들이 세상을 참 싱그럽게 만들어 주네요. 실내에 앉아 있는 분들 마음을 싱숭생숭~ 하게 만드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요.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하는 법! 폴리씨가 오늘은 역사 속 5월에 일어난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해요.^^
1388년 5월 22일 조선왕조의 건국을 알리는 신호탄 '위화도 회군'
우리의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많은 사료들을 남긴 조선. 조선시대는 그야말로 ‘기록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5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조선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조선태조어진 국보 제 317호 사진·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명나라는 왕득명을 보내 철령위 설치를 통고합니다. 원나라에게 빼앗겼다가 공민왕 때 다시 되찾은 철령 이북을 직접 다스리겠다는 뜻이었는데요. 고려의 땅을 마음대로 다스리겠다고 하는 명나라의 태도에 고려의 우왕과 최영은 ‘요동 정벌’을 결정합니다.
최영 다음으로 꼽힐 정도로 실력도 출중하고 공도 많이 세웠던 이성계는 사불가론을 내세워 요동정벌을 반대합니다. 우왕과 최영은 요동정벌은 단행했고, 왕명을 거절할 수 없는 이성계는 1388년 4월 우군도통사로서 정벌군을 이끌고 출정하게 됩니다.
첫째, 소국이 대국을 거역할 수 없고 둘째, 농번기인 여름에 군사를 동원할 수 없으며 셋째, 남쪽에 왜구가 기승을 부릴 있고 넷째, 장마철이면 활에 먹인 아교가 풀릴 수 있고 군사들이 병에 걸릴 수 있다.
우군도통사 이성계와 좌군도통사 조민수는 압록강 위화도에 이르렀으나, 장마가 시작하는 바람에 크게 물이 불어났습니다. 이에 이성계와 조민수는 우왕에게 회군을 요청했지만, 오히려 우왕은 말과 비단을 보내 진군을 독려했습니다. 거듭 회군을 요청하자 최영은 연락병을 심하게 꾸짖어 보냈습니다.
결국 이성계는 조민수와 함께 위화도에서 개경으로 말머리는 돌렸는데, 이것이 바로 ‘위화도 회군’이며 그 날이 바로 1388년 5월 2일입니다. 병력을 정벌군으로 내주었기 때문에 우왕과 최영은 이성계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성계는 우왕을 폐위하고 창왕을 세워 정권을 장악했고, 최영을 유배 보냈습니다. 이후 12월 최영은 개경에서 처형을 당합니다.
1388년의 5월 22일은 이성계 개인의 운명과 고려라는 나라의 운명을 갈라놓은 역사적인 날인 것이죠. 고려의 운명이 다하면서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의 탄생을 예감할 수 있는 날이기도 하고요.
1441년 5월 19일 조선시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세계 최초의 우량계 ‘측우기’ 제작
조선시대, 뛰어난 과학 수준을 자랑했던 시기는 ‘세종대왕’이 다스리던 때가 대표적입니다. 한글창제는 물론이거니와 천측 관측 기계인 혼천의, 해 그림자로 시간을 알 수 있는 해시계, 강우량을 측정하는 측우기 등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텐데요.
[금영측우기 1837년(헌종 3년) 보물 제 561호 사진·기상청]
5월 19일은 측우기를 각 지방으로 내려 보내 측우기의 발명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날입니다. 세계최초의 발명품이라는 의미 못지않게 더 대단한 것은, 강우량 측정 원리가 오늘날의 강우량 측정기구와도 큰 차이가 없다는 점입니다. 원통형 그릇 모양에 직경 21m는 현재 세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우량기와 거의 비슷한 규격입니다.
처음 발표했던 측우기는 깊이 두 자에 지름 여덟 치의 원통형 측우기였습니다. 이후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1442년 5월 호조(조선시대 호구(戶口)·공부(貢賦)·전량(錢糧)·식화(食貨)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서)에서 측우기 기준을 만들어 제시했죠. 수심을 재는 단위만 다를 뿐, 현대와 비교해도 완벽에 가까운 강우량 측정법이라고 합니다. 또한, 비 오는 강도를 ‘미우 세우 소우 하우 쇄우 취우 대우 폭우’ 등 8단계로 구분하여 기록했는데요. 조선시대에 강우량 기록 및 관리가 얼마나 꼼꼼하고 세밀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호조에서 제시한 측우기 기준>
1. 측우기의 크기는 깊이 1자 5치, 지름 7치로 하되 주척을 사용한다.
2. 강우량은 비가 그칠 때마다 서운대 관원이 직접 관찰하여 측정한다.
3. 비가 내리기 시작하거나 갠 시각을 기록하여 즉시 보고한다.
4. 수심은 자 치 푼 단위까지 확실히 기록한다.
[1442년 시작된 우량관측망 사진·기상청]
우리의 측우기는 1592년 갈릴레오의 온도계 발명, 1643년 토리첼리의 수은기압계발명보다 150년 앞선 세계 최초의 기상관측 장비입니다. 1639년 로마에서 가스텔 리가 처음 강우량을 관측한 것과 비교하면 200년 빠르고요.
지방 군·현까지 전국 334곳에서 측우기를 이용해 강우량을 관측하고 이를 중앙 정부에 보고했습니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전국적인 관측이죠. 측우기를 통한 정확한 강우량 측정은 제방을 쌓거나 저수지를 축조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풍작과 흉작의 정도를 평가하는 중요한 정보가 되기도 했고요.
측우기는 15세기 세계 과학사에서 가장 빛나는 조선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 뜻을 기려 매년 5월 19일을 ‘발명의 날’로 지정하기도 했죠.^^
1592년 5월 29일 민족을 구한 거북선 첫 출전!
“앞에는 용머리를 만들어 붙이고 그 아가리로 대포를 쏘며 등에는 쇠목을 꽂았으며,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어도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비록 적선 수백 척 속이라도 뚫고 들어가서 대포를 쏘게 되어 있습니다.”
-이순신의 장계 중-
세계 최초의 철갑전선으로 바다에서의 전투력을 고려해 고안된 거북선이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된 날이 바로 1592년 5월 29일입니다. 이날 이순신 함대는 경상남도 사천 앞바다에서 왜군과 두 번째 해전을 벌였는데요, 이때 거북선이 그 진가를 발휘할 순간을 맞이한 것이죠
거북선에 대한 기록은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 기록에는 거북선에서 처음 포를 발사한 날은 1592년 3월 27일이고 나와 있고, 장계에는 처음 해전에 참가한 것은 5월 29일 사천해전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사천해전 당시 거북선은 최전방 돌격선의 임무를 맡아 왜군 함선 13척을 격침시키고, 왜군 2,600여 명을 사살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각종 함포로 무장한 철갑전선으로 적선을 격침하는 것은 물론, 적진을 혼란에 빠트리는 임무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거북선의 성능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사천해전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후 거북선은 한산도 대첩을 비롯한 각종 해전에서 크게 활약하죠.
장계 : 왕명을 받고 지방에 나가 있는 신하가 자기 관하(管下)의 중요한 일을 왕에게 보고하던 일. 또는 그런 문서.
2002년 5월 31일 4강 신화를 이룬 2002 한일 월드컵 축구 대회가 열리다
제 17회 한일 월드컵은 역사상 최초로 두 나라의 공동 개최 형태로 치러졌으며, 우리나라 대표팀이 4강에 진출한 잊을 수 없는 월드컵이기도 합니다. 총 192개국이 지역 예선을 치렀고, 32개국이 본선에 참가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 각각 10곳, 모두 20개 도시에서 64경기를 치렀습니다.
스포츠는 종종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불립니다. 강호 팀이 여지없이 무너지기도 하고, 몇 초 이내에 승부가 판가름 나기도 하는 등 예상할 수 없는 순간들로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한일 월드컵 역시 이변이 많았는데요.
당시 우승팀이었던 프랑스가 개막전에서 세네갈에서 0대 1로 패했고, 덴마크와의 마지막 경기에서도 지면서 탈락했습니다. 축구 스타 지단은 부상으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했는데요. 프랑스는 월드컵 참가 사상 최초로 무득점을 기록하며 종합 순위 29위에 머물렀습니다.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는 포르투갈과 아일랜드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역시 조별 리그에서 떨어졌고, 전통의 강호로 알려진 포르투갈과 이탈리아도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죠.
개최국인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은 기대 이상의 성적으로 온 국민을 흥분과 기쁨으로 들뜨게 만들었습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위인 포르투갈을 꺾고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뤘습니다. 그 뿐인가요,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는 연장까지 이어지는 접전 끝에 안정환이 결승골을 넣었고요. 안정환의 반지 세레머니가 한참 화제가 되었었죠.^^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4강행을 확정지었는데요. 유럽 및 아메리카 외의 국가로는 우리나라가 월드컵 사상 최초로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월드컵 기간 내내 전국의 경기장과 광화문 일대에서는 ‘붉은 악마’의 응원이 이어졌습니다. ‘붉은 악마’의 응원은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죠. 전 국민 모두가 하나가 되어 응원했던 뜨거운 기억! 폴리씨도 기억이 납니다.^^ 출처:대한민국 정부 대표 블로그 정책공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