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방송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홈으로 | 즐겨찾기등록 |  +관련사이트 
문화재방송 한국 " Since 2008. 2. 1 "
[공지]왼쪽 상단 VJ 金鐘文을 클릭하시면 50 여 년 전 KBS 기자로 활동하던 당시의 영상과 1인 5역으로 제작, KBS 1TV에 방송됐던 프로그램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 왼 쪽 아래의 유튜브 바로가기를 클릭하시면 문화재 관련 동영상을 더 많이 보실 수 있습니다. [문화재방송 캠페인]선조들의 숨결 어린 문화재,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입니다.
hudownwbe wojodown nuebfile monjdown yesnkdown lpmedown jneepudw mndownfile bafdownco yabiqedown amehdown fadowntero evnhdown
HOME >
문화재뉴스 >
무형문화재 >
유형문화재 >
기타문화재 >
영상문화 >
역사기행 >
유네스코세계유산 >
문화재연감 >
유튜브 바로가기 >
PageNo : 01
제 목 고려의 찬란한 천문학을 담다
글쓴이 tntv 등록일 [2017.04.10]
고려의 찬란한 천문학을 담다 - 유네스코 세계유산 ‘개성 첨성대’개성 첨성대는 경주 첨성대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천문 역사를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이다. 오래전부터 천문 관측이 이뤄져 왔음을 입증하는 동시에 고려 천문학의 발전을 실물로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문화유산, 고려의 천문학
고대 사회에서 천문학은 곧 자연과학 전부를 일컫는 대명사였다. 천체의 운행을 보고 역서를 만들고, 일식과 월식을 계산하여 예보하는 데 필요한 수학이 그 시대에서는 가장 앞선 첨단과학이었다. 한편, 별을 관찰하는 혼천의와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만든 물시계보다 더 정교하고 값비싼 기계는 아직 없던 시기였다. 그들이 만든 천문학은 지금 고려사 천문지(天文志) 3권과 역지(曆志) 3권, 그리고 오행지(五行志) 3권에 많은 양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러니까, 고려의 천문학은 금속활자나 고려자기에 뒤지지 않는 세계인의 문화유산인 셈이다.
무엇이 고려인들로 하여금 천문학을 이토록 발전시키게 했던가? 학자들의 두뇌는 물론 관측할만한 장비(관측 기기)도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사회적 필요가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고려는 지금 생각하기에도 분명한 선진 사회였다. 문명의 척도로 말한다면, 고려와 교류를 할 만한 사회는 중국, 인도, 페르시아 그리고 로마를 제외하고는 없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런데 고려인들이 두뇌와 장비, 천문학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하더라도, 그들이 이같이 훌륭한 유산을 남긴 것에는 또 한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만 한다. 바로 그런 노력을 실천할 수 있는 ‘마당’이 있어야 한다. 이 ‘마당’이 바로 오늘의 주제인 개성 첨성대다.
세계 각국의 천문대보다 앞선 개성 첨성대
지금 휴전선 이남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옛 천문대로는 신라의 첨성대를 생각한다. 그리고 서울에 현존하는 조선의 첨성대(관천대) 2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의 첨성대 사이에 해당하는 개성 첨성대에 관해서는 아는 이가 매우 적다.
세계 어디를 가 보아도 신라의 첨성대나 고려의 첨성대만큼 오래된 천문대는 찾기 어렵다. 중국 북경 고관상대에 가보면 세계 곳곳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줄을 잇고 있지만, 이것은 17세기 가톨릭을 전파하기 위해 중국에 온 서양 선교사들이 세운 천문대일 뿐이다.
유럽에는 티코·브라헤가 지은 유명한 천문대인 우라니보그와 슈터니보그가 있었다. 티코의 천문대가 1577년에 완공되자 전 유럽의 젊은 지성들이 몰려와 천문학이 크게 발전했지만, 그 후 덴마크와 스웨덴 간의 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됐다. 우리나라 세종대왕과 같은 시기에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도 울루벡 천문대가 건설됐으나, 이것마저도 울루벡 대왕의 아들에 의해 완전히 훼손됐다. 이 모든 것이 개성 첨성대보다 적어도 2세기 후의 일이다.
유럽과 우즈베키스탄의 천문대에 대한 흔적만이라도 보기 위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5~16세기 문화의 향기를 맛보려는 의미뿐만 아니라, 전통의 뿌리에서 그 어떤 영감을 얻어보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구조로 살펴보는 개성 첨성대
개성 첨성대는 북한의 개성시 송악동에 있는 고려 왕궁터, 만월대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첨성대가 건축된 연대는 고려 충렬왕 7년(1281)이라고 알려져 있다. 현재는 천문 관측기구를 올려놓았던 축대만이 남아있다.
『고려사』에 첨성대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지만, 고려 초기부터 천문·관측 등을 담당하는 관청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일식·월식·혜성·태양흑점·유성 등 천문 현상에 대한 내용도 함께 기재되어 있다.
개성 첨성대는 모두 5개의 돌기둥이 한 변이 3m인 정사각형 큰 돌을 떠받치고 있다. 돌기둥 하나의 크기는 가로 38㎝, 세로 2.45m이다. 네 개의 기둥이 모서리에 세워져 있고, 나머지 한 개는 중앙에 있다. 기둥의 네 면은 동·서·남·북 방향과 일치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5개의 돌기둥은 80cm x 85cm 크기의 사각형 판돌 위에 얹혀있다. 이 돌은 건물의 기초인 셈이다. 판돌과 기둥이 서로 빈틈없이 맞물려 있고, 돌기둥은 견고하게 다듬어져 있어 당시의 석조 건축 기술이 매우 높은 수준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5개의 돌기둥이 받치고 있는 것은 첨성대의 지붕이 아니라 사실은 2층의 바닥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개성 첨성대는 3층으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2층과 3층에는 사방에 돌로 된 난간이 둘러있었다. 그리고 3층은 여러 겹으로 된 지붕이 덮여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가 하늘을 보는 데 적합하지 않을 것 같으나, 우리의 연구가 미흡하여 더욱 나은 형태를 구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글‧나일성(연세대 천문학과 명예교수) 사진‧국립문화재연구소

 

주소: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석바위로 53번길 17 | 이메일:tntvkr@nate.com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인천 0101529' 등록
Copyright(c)tntv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