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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가얏고 명인 양승희 , "젊어선 하루 12시간씩 ‘12현’ 뜯어 … 그간 여행 한번 못 ...
글쓴이 tntv 등록일 [2017.04.11]



[박정호의 사람 풍경] 젊어선 하루 12시간씩 ‘12현’ 뜯어 … 그간 여행 한번 못 갔죠

가얏고 명인 양승희 
가야금 명인 양승희씨가 가야금산조 창시자 김창조 선생 흉상 옆에 서 있다. [영암=프리랜서 오종찬]

가야금 명인 양승희씨가 가야금산조 창시자 김창조 선생 흉상 옆에 서 있다.[영암=프리랜서 오종찬]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손을 보여 달라고 청했다. 반세기 동안 가야금 줄을 퉁기고 눌러온 이의 손가락이 궁금했다. 손가락 끝이 제법 단단했다. 왼손 둘째·셋째 손가락에 가는 선이 파여 있다. 역시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른바 농현(弄絃), 가얏고 줄을 흔들고 밀고 떨어뜨리며 심금을 울려온 그의 지난 세월이 각인돼 있다. “요즘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손가락이 좀 물러졌어요. 죄송해요. 그간 수없이 껍질이 벗겨졌죠. 독주회를 앞두고는 뼈마디 부근까지 파이기도 해요.”
 

고2 때 입문, 산조 맥잇기 외길 50년
산조 창시한 김창조의 친손녀 김죽파
대학 때 만나 20년 같이 살며 배워
가야금산조는 가사 없는 판소리
3음 내지 5음으로 희로애락 다 표현
악보 표현 힘들어 정경화도 연주 못 해
서울·영암·원주서 어린이 130명 지도
2014년 영암에 반듯한 기념관 세워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 꿈

질의 :열 손가락을 다 사용하나요.
응답 :“둘째·셋째를 주로 씁니다. 엄지도 많이 쓰고요. 뒷손질이라고 하는데 현을 밀고 가며 음을 이어주는 것을 말해요. 뒷손질을 안 하면 음이 끊어집니다. 스승 김죽파 선생이 물려준 독특한 기법입니다.”
 
굳은살이 박인 양 명인의 손가락. [영암=프리랜서 오종찬]

굳은살이 박인 양 명인의 손가락.[영암=프리랜서 오종찬]

그는 가야금 명인 양승희(69)씨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다. 지난달 31일 전남 영암군 가야금산조기념관을 찾았다. 월출산의 빼어난 산세 아래 자리 잡고 있다. 국악기 기념관으로는 거의 유일하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월출산 천황봉에 보름달이 뜬다’, 기념관 맞은편엔 가수 하춘화의 ‘영암아리랑’ 노래비도 있다.
 
가야금산조 창시자 김창조(왼쪽)와 그의 친손녀 김죽파. 우리네 전통 가락을 지켜 왔다. [중앙포토]

가야금산조 창시자 김창조(왼쪽)와 그의 친손녀 김죽파. 우리네 전통 가락을 지켜 왔다. [중앙포토]

영암은 가야금산조의 본향이다. 가야금산조를 창시한 김창조(1856~1919)의 고향이다. 양 명인의 스승 김죽파(1911∼89)는 김창조의 친손녀다. 산조는 국악에서 기악 독주곡을 말한다. 가야금산조에는 10여 유파가 있는데 그중 원조 격이 김죽파류다. 양 명인은 김창조→김죽파로 전승된 ‘오리지널 산조’의 맥을 잇는, 자칫 잊힐 뻔한 연결고리를 세상에 알린 주역이다. 세상만사를 12현에 담았다는 가얏고, 그는 인터뷰 내내 스승 김죽파를 기억했다. “스승의 유언을 들어주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셈”이라고 했다.
 
질의 :가야금산조, 뭐가 각별한 겁니까.
응답 :“예전에 가야금은 합주나 반주 악기로 쓰였어요. 조선 선비들은 퇴궐 후 집에 모여 합주를 했죠. 그런 가야금을 독주 악기로 만든 이가 김창조 선생입니다. 1890년께 월출산 용추폭포 깨금바위에서 완성했다고 해요. 기존의 흩어진 가락을 모아 40분 분량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느린 진양조에서 시작해 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를 거쳐 가장 빠른 휘모리로 마감합니다. 어법은 판소리에서 그대로 가져왔어요.”
 
질의 :판소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요.
응답 :“가야금산조는 가사 없는 판소리입니다. 그런데 리듬이 달라요. 예컨대 ‘심청가’에서 심청이 바다에 빠지는 장면은 몰아치는 자진모리지만 물에 풍덩 빠진 다음에는 진양조로 바뀝니다. 사설에, 상황에 따라 빠르기가 변하죠. 반면 산조는 정형화됐습니다. 느리게 시작해 빠르게 끝나죠. 가야금산조가 나온 뒤에 거문고·대금 등 악기마다 산조가 생겼습니다. 우리의 보물이죠.”
 
질의 :틀이 고정되면 재미가 떨어지지 않나요.
응답 :“아닙니다. 정말 역동적입니다. 인간의 마음 저 깊은 곳까지 내려가는 소리가 납니다. 해외 공연을 숱하게 다녔는데 일본이나 중국 연주자들이 우리와 같은 무대에 서는 걸 꺼릴 정도죠. 서양 악기는 평균율을 사용합니다. 음정을 균등하게 나눠 연주하죠. 가야금은 달라요. 3음 내지 5음, 많지 않은 음으로 희로애락을 다 드러냅니다.”
 
질의 :어떤 경지인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응답 :“악보로 표현하기가, 기악화하기가 힘들죠. 예전에 정경화(69)씨가 바이올린으로 산조를 연주하고 싶어했는데 결국 하지 못했다고 해요. 음역도 음역이지만 소리의 깊이가 다른 거죠. 국악에선 그곳에 도달해야 득음이라고 합니다.”
 
질의 :그래도 다른 음악도 하고 싶었겠죠.
응답 :“젊어선 그랬죠. 스승은 산조만 하라고 하셨는데 답답한 구석이 있었어요. 황병기(81·이화여대 명예교수) 선생에게 창작곡을 부탁해 ‘비단길’ ‘영목’ ‘남도환상곡’ 등을 초연했습니다. 산조는 무르익기 전까진 클라이맥스에 못 가는데 창작곡은 서너 달 연습하면 절정에 올랐다가 쫙 내려오는 쾌감이 있었죠. 지금 돌아보니 젊어서 산조를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았을까 후회도 됩니다.”
양 명인의 스승인 김죽파 선생이 1985년 제자의 정진을 당부하며 남긴 친필 부채. [사진 양승희]

양 명인의 스승인 김죽파 선생이 1985년 제자의 정진을 당부하며 남긴 친필 부채.[사진양승희]

 
이날 가야금산조기념관에선 특별한 공연이 열렸다. 남도 일대 젊은 국악인 10명이 모인 영암교육가야금연주단 창단 공연이다. 인근 초등·중학생을 포함해 때깔 고운 한복 차림의 50여 명이 양 명인과 함께 현을 뜯고 민요를 불렀다. ‘가야금 1번지 영암’을 알리는 자리였다. 그는 “하늘에 계신 김창조·김죽파 선생이 기뻐하실 것 같다. 마음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질의 :영암까지 내려와 가르치는 이유라면요.
응답 :“지난해 10월부터 연습했습니다. 스승의 소원을 들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가야금산조를 세계에 알리라고 하셨어요. 필생의 숙제인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를 향해 또 한 걸음을 뗀 셈이죠. 등재되려면 교육·공연·경연 세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지금껏 허허벌판에서 목 놓아 부르짖어 왔는데, 이번에 전남교육청과 영암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고마울 따름입니다.”
 
질의 :인간문화재와 초등학생, 간극이 꽤 큽니다.
응답 :“제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잠깐 있다 가는 인생, 뭔가 이뤄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제겐 아이들입니다. 서울과 제가 자란 원주에서도 가르치고 있어요. 130명 정도 됩니다. 그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지도하는 게 여간 고된 일이 아닙니다. 지난달 8일 서울 국립국악원에선 합동 무대도 열었죠. 청출어람입니다. 여기서 또 인간문화재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김창조가 가야금산조를 완성한 월출산 깨금바위에서 연주하는 양 명인. [사진 양승희]

김창조가 가야금산조를 완성한 월출산 깨금바위에서 연주하는 양 명인. [사진 양승희]

질의 :영암과의 인연이 꽤 오래됐죠.
응답 :“2000년부터입니다. 김창조 가야금의 맥을 밝혀 달라는 스승의 유지를 받들었습니다. 오랜 시간 끝에 2014년 산조기념관을 열게 됐어요. 경연대회도 올해로 6회를 맞죠. 가야금은 고2 때 처음 만졌습니다. 죽파 선생은 서울대 국악과 2학년 때 만났고요. 이후 20년 동안 선생님 댁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어요. 자녀가 없는 스승께서 제 산후조리도 해 주셨죠.”
 
질의 :스승이 남긴 가장 큰 가르침이라면요.
응답 :“제게 ‘결혼하지 마라’ ‘대학교수 되지 마라’고 하실 만큼 음악에 몰두하셨습니다. ‘높이 나는 새는 명중당하지 않는다. 남이 따라올 수 없게 비상해야 한다’ ‘네 혼이 줄에 떨어져야 남의 마음도 움직인다’고 하셨죠. 제가 호리(毫釐·머리카락 하나) 차이만큼 음을 내지 못할 때는 ‘내 두 손을 잘라 네게 줄 수 없을까’라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질의 :결국 스승의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응답 :“1980년 제 독주회 때 55분 분량의 죽파류 산조를 만들어 주셨어요. 88년 제가 KBS 명인전에 뽑혔을 때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됐다, 됐어’라고 하셨죠. 이듬해 돌아가셨는데 그때만 해도 대체 뭐가 됐다는 건지 몰랐습니다. 이후 16년간 학생으로 다시 돌아가 판소리·아쟁·철금 등을 공부했습니다. 하루 12시간씩 연습했죠. 지금도 매일 대여섯 시간은 가야금을 탑니다.”
 
질의 :북한 자료의 도움이 컸다고 하는데.
응답 :“90년 중국 옌볜에서 남북한 가야금 연주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옌볜예술학교 김진(1926~2007) 교수를 만났습니다. 김창조의 수제자인 안기옥(1894~1974·평양음대 교수)에게 가야금을 배운 분이죠. 김 교수에게 북한 국악 자료를 건네받았습니다. 17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죠. 그것을 정리해 산조의 계통을 밝혔습니다. 당시만 해도 남쪽엔 자료가 거의 없었어요. 운명적 만남이었던 거죠.”
 
질의 :당신에게 가야금은 대체 무엇일까요.
응답 :“인생의 전부죠. 해외 공연을 700회 넘게 해 왔는데 외국에 어떤 명승지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극장과 숙소만 왔다 갔다 했거든요. 무대에서 에너지를 터뜨리려면 남는 시간에 쉬어야 했습니다. 또 통영 신혼여행을 빼고 국내 여행도 한 번 가본 적이 없어요. 연습 시간도 부족하잖아요.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입니다. 잠잘 때도 가야금을 옆에 두죠. 바보처럼 보이시나요?”(웃음)
 
[S BOX] 양 명인 남편이 설거지·빨래 도맡은 까닭은 …
그 아내에 그 남편-. 부창부수(夫唱婦隨)가 아니라 부창부수(婦唱夫隨)다. 지난달 31일 두 시간 가까운 공연 시간 동안 무대 뒤에 서서 자리를 지킨 이가 눈에 띄었다. 양승희 명인의 남편 노만균(70·엘스텍 대표)씨다. 소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듯 아내의 연주에 집중했다. 이날 고수(鼓手)를 맡은 정화영(74·서울무형문화재)씨는 “아내 일이라면 맨발 벗고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노 대표는 ‘사설 문화재청장’을 자임했다. 아내를 위한 1인 문화재청장이라는 뜻이다. “평생 ‘안 돼’ ‘싫어’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집사람이 가야금을 목숨처럼 여기다 보니 저도 따라서 좋아하게 됐거든요.”
 
노 대표는 과학자 출신이다. 고려대 화학공학과를 나와 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지냈다. 유도탄을 쏘아 올리는 액체·고체 추진제 전문가다. 고체산소 개발 특허를 냈고, 2001년 전문 제조업체를 차렸다. 사업 수익으로 아내를 후원해 왔다. 영암 가야금산조기념관 건립에도 10억원을 내놓았다.
 
“설거지·빨래는 주로 제 몫이죠. 가야금 연주로 생긴 굳은살이 물에 닿아 불면 자칫 떨어져 나갈 수 있거든요. 창피하냐고요? 아닙니다. 집안일은 나눠 하는 것 아닌가요.”
 
양 명인이 한마디 거들었다.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때 처음 만났어요. 남편 덕분에 지금까지 왔습니다. 인생의 은인을 둘 꼽자면 김죽파 선생님과 남편입니다.”
 
그는 요즘 손녀 노향(11)에게 가야금을 전수하고 있다. “노향이가 소리도 잘해 안숙선(68) 명창의 제자가 됐어요. 한예종 영재학교를 다니고 있죠. 남편도 요즘 손녀 뒷바라지에 푹 빠졌답니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jhlogos@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21453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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