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1만2000년 전 지금의 터키, 요르단과 이란에 걸친 낫 모양 지역, 이른바 '비옥한 반월(半月) 지대'에서 처음으로 농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땅속에서는 이미 수천만년 전부터 개미들이 곰팡이를 키워 영양분을 얻는 농업을 발전시켰다. 인간은 최근 극심한 기후변화로 농업의 위기를 겪고 있는데, 개미는 어떻게 그 오랜 시간 농업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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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가 개미-곰팡이 공생 불러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의 테드 슐츠 박사 연구진은 12일 국제학술지 '욍립학회보 B'에 "3000만년 전 개미와 곰팡이의 완전 공생(共生) 관계가 확립되는 농업혁명이 일어났다"고 발표했다.
아마존 열대우림에 사는 농부개미(잎꾼개미)는 날카로운 턱으로 나뭇잎을 잘라 개미굴로 가져간다. 곰팡이는 나뭇잎을 분해하며 자라고, 개미는 곰팡이에서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을 얻는다. 슐츠 박사는 이런 농부개미 78종과 일반 개미 41종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역추적한 결과 농부개미와 곰팡이는 3000만년 전부터 완전히 서로에게 의존하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
개미 군집은 수가 늘어나면 새로운 여왕개미가 따로 군집을 꾸리는 분가(分家)를 한다. 초창기 농부개미는 분가할 때 야생에서 곰팡이를 새로 구했다. 그러던 것이 3000만년 전부터 원래 키우던 곰팡이만 가져가기 시작했다. 개미가 키우는 곰팡이와 야생 곰팡이 사이에 교배도 사라졌다. 곰팡이의 품종개량이 완성돼 야생 종자와 완전히 분리된 것이다.
농업혁명의 발단은 기후변화였다. 3000만년 전 지구는 온도가 낮고 건조했다. 곰팡이는 습도가 높아야 살 수 있다. 개미는 굴속이 건조하면 물을 가져와 뿌린다. 슐츠 박사는 "곰팡이에게 개미굴은 온실과도 같은 곳"이라며 "개미 역시 곰팡이에 의존하면서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천연 비료와 농약으로 생산량 증대
사실 개미의 농업이 시작된 것도 기후변화 때문이었다. 슐츠 박사는 지난해 7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개미의 곰팡이 농사가 공룡이 멸망하던 6500만년 전에 시작됐다고 밝혔다. 당시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면서 지상에서는 많은 생물이 죽었다. 공룡도 이때 사라졌다. 대신 사체를 분해하는 곰팡이만 넘쳐났다. 이때부터 개미는 곰팡이를 새로운 먹잇감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슐츠 박사는 "초창기 농부개미는 다른 곤충을 잡아먹는 개미보다 영양분을 덜 섭취했다"고 밝혔다. 곰팡이 농사의 생산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마치 처음 농업을 시작한 인류가 수렵채집을 하던 인류보다 덩치가 작았던 것과 같다. 하지만 새로운 농업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산성은 급증했다.
미 위스콘신 메디슨대의 캐머런 큐리 교수는 지난 2009년 '사이언스'에 농부개미가 질소 박테리아를 곰팡이 농사에 비료로 쓴다고 발표했다. 콩과 식물의 뿌리에 공생(共生)하는 질소 박테리아는 공기 중에서 질소를 뽑아낸다. 큐리 교수는 농부개미의 몸에 박테리아를 키우는 숨겨진 구조가 있으며, 여기서 곰팡이를 침입자에게서 보호하는 항생물질이 만들어진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나무 위 과수원과 땅속 목장까지 운영
개미의 농업은 과일 재배와 목축으로까지 발전했다. 지난해 11월 독일 뮌헨대 연구진은 '네이처 식물' 저널에 태평양 피지섬에 사는 개미가 과일 나무를 재배한다고 발표했다. 꼭두서닛과 식물은 다른 나무의 줄기 틈새에 기생한다. 개미는 이 식물의 씨앗을 물고 가 나무껍질 사이에 넣었다. 이후 다른 곤충이 오지 못하게 하고 때때로 배설물도 비료처럼 뿌렸다. 기생 나무에서 과육(果肉)이 자라면 개미는 그 안에 집을 짓고 살았다. 연구진은 개미와 기생식물의 공생 관계는 300만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밝혔다.
목축은 그보다 더 일찍 시작됐다. 개미는 나뭇잎에 사는 진딧물을 무당벌레에게서 보호해주고 보답으로 꽁무니에서 분비되는 꿀물을 받아먹는다. 일부 개미는 아예 진딧물과 비슷한 쥐똥나무벌레를 개미굴로 가져가 키운다. 개미는 분가를 하면서 굴에서 키우던 쥐똥나무벌레도 데려간다. 1500만~2000만년 전 송진에 갇힌 개미를 보면 쥐똥나무벌레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