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人柱 설화 "사람을 기둥으로 세우거나 주춧돌 아래 묻으면 제방·건물 무너지지 않는다" 나란히 누워있어 부부 가능성
한 인골(人骨)은 하늘을 향해 똑바로 누웠고, 다른 인골은 오른뺨을 땅에 대고 얼굴과 팔을 옆에 누운 인골 쪽으로 튼 상태였다. 지난해 12월 신라의 궁성(宮城)이었던 경북 경주 월성(사적 16호)의 발굴 조사 중 서쪽 성벽 문 터에선 뜻밖에도 한 쌍의 유골이 나왔다. 발굴 장소는 성을 쌓기 전 땅을 다진 기초 층의 맨 위였다. 자연 퇴적층에 1.5m 높이로 흙을 쌓고, 사람 2명을 묻은 뒤 나무껍질로 덮고 그 위에 9m 높이의 성벽을 건축한 것이다. 건물을 지을 때 사람을 희생시켜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人身供養)의 흔적이 국내 처음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16일 월성 정밀 발굴 조사 중간발표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공개했다. 바로 누운 인골은 신장 166㎝, 모로 누운 인골은 159㎝였다. 묻힌 시기는 성벽을 축조하기 시작한 서기 5세기로 추정되며, 두 인골 모두 결박이나 저항 흔적이 없어 사망한 후에 묻힌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 크게보기경주 월성 일대를 북쪽에서 바라본 전경(위 사진). 서쪽 성벽에서 성을 쌓기 전에 매장한 인골 2구가 나란히 누운채로 발굴됐다(맨 오른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목간. 삼국시대 목간 중 가장 오래됐을 가능성이 있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이인숙 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바로 누운 인골은 남성이 분명하지만 다른 인골은 성별을 확인하기 어렵다"며 "이들을 묻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생전 관계에 따라 한 사람을 모로 눕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편과 아내였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건물이나 성벽을 올리면서 사람을 제물로 사용한 풍습은 기원전 1600~1000년 고대 중국의 상(商)나라에서 성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선 '사람을 기둥으로 세우거나 주춧돌 아래에 묻으면 제방이나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인주(人柱) 설화'가 김제 벽골제 등에서 전해져 왔다. '고려사절요'에는 1343년(충혜왕 4) "'왕이 민가의 어린아이 50~60명을 잡아다가 새 궁전의 주춧돌 아래 묻으려 한다'는 소문이 개경에 돌아 집집마다 놀라서 아이를 안고 도망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기록했다. 2000년 경주 인왕동 왕궁 터 우물 밑바닥에서 7~8세 어린이의 인골이 확인됐는데, 인신공양 혹은 추락사 가능성이 있었다.
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이번에 월성에서 발견한 인골의 DNA와 콜라겐 분석, 주변 토양 분석 등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체질적 특성이나 인구 구조, 건강 상태, 식생활 등을 밝혀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