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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No : 01
제 목
삶으로 보는 역사 : 4장 새 노래를 부르다...소헌왕후의 롤러코스터
글쓴이
tntv
등록일
[2017.07.31]
삶으로 보는 역사 : 4장 새 노래를 부르다
<14> 소헌왕후의
롤러코스터
12살 어린 조카를 내쫓고 왕위를 뺏으며
동생도 2명을 죽이며 혼돈의 태풍을 몰고 온
잔혹했던 수양대군의 부모는 누구인가?
심성과 행위, 가정과 나라 모든 면에서
최고 모범이었던 세종대왕과 소헌왕후가
그의 부모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참 얄궂다.
특히 굴곡이 많았던
소헌왕후의 삶을 보면서
내 아호의 뜻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가하자(架下子)
십자가 아래 서 있는 이
30대에 만들어 강산이 3번이상 바뀌도록
나를 넣어두는 칼집으로 쓰고 있다.
어느 아침에 요한복음을 읽다
갑자기 눈의 동공이 커지고
머리가 죽비에 맞은듯 확 깨였다.
'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의 어머니와 ......... 서 있었다.'
이미 수 차례 읽고 또 읽고
그림으로도 익숙했던 구절인데
'어머니가 서 있었다'
이 말이 번개처럼 나를 때려 멍하게 했다.
군에서 죽은 병사를 찾아와
실신하는 어머니를 본 적도 있고
병원에서 죽어가는 자식을 보며
오열하는 어머니들도 보았다.
그들은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서 있지를 못했다.
나무에 매달려 죽는 죽음은
신에게서 조차 버림받은 죽음으로
유대인이 가장 경멸하는 죽음이다.
신에게 버림받은 처절한 죽음에
인간의 위로라도 있으면 힘이라도 생기련만
위로는커녕 비아냥과 비난만 받으며
죄인으로 피 흘리며 죽어가는 아들 아래에
어머니가 어떻게 서 있을 수 있을까?
십자가 아래 서 있는 어머니 마리아
이 물음에 답을 얻어야 한다 생각하고
평생의 화두로 삼기로 했다.
그래서 잘 쓰고 있던 것을 버리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만든 게 '가하자'인데
소헌왕후도 십자가 아래 서있던 마리아였다.
소헌왕후 심씨는 14살때 태종의 3자인
2살 어린 12살의 충녕대군과 결혼했다.
4년 후 첫딸 정소공주를 낳고
2년 후에는 후일 문종이 되는 왕자 향을 낳고
이어서 정의공주와 수양대군을 낳았다.
단란하고 평화로운 결혼생활이었다.
결혼할 당시 그녀는
남편 충녕대군이 3자였으니
후일 왕비가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조용하고 착했던 그녀가 왕비가 되어
역사의 회오리에 휩싸인 때는
1418년 결혼한지 10년째 되는
그녀 나이 23살 되는 해였다.
그 해 그녀는 끔찍한 롤러코스터를 탔다.
6월에 남편 충녕대군이 갑작스레 왕세자가 되고
2개월 뒤에 남편은 조선의 4번째 왕이 됐다.
다시 2개월 뒤 10월에는 안평대군을 낳으니
이때까지 롤러코스터는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또 다시 2개월 뒤인 그 해 말 12월에
아버지 심온이 시아버지 태종에 의해
역모의 반역죄로 사약을 받고 죽었다.
친정이 반역자 집안으로 풍비박산 나면서
어머니와 형제들은 모두 천민이 되었고
그녀도 왕비자리에서 쫓겨날 위기에 내몰렸다.
이 모든 것이
그 해 6월부터 12월 사이에 일어났으니
롤러코스터가 높게 오르다 급전직하로 떨어졌다.
놀이공원 롤러코스터는 스트레스를 풀어주는데
이 롤러코스터는 스트레스를 산더미처럼 쌓았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몬 이는 시아버지였지만
궁궐에서 단 하나 믿고 의지하던 남편은
아버지 뜻을 쫓아 임금으로써 수결을 했다.
세자빈에서 왕비로 그리고 아들을 낳은
부러울 게 없었던 기쁨은 잠시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천민이 되는
절망과 슬픔이 목을 조이고
분노가 몸을 불덩이로 만들었다.
왕비의 친정세력이 커지는 걸 병적으로 싫어해
처남 4형제를 모두 죽인 시아버지 태종이
아들의 처가도 없애기 위해 벌린 일이었기에
왕비가 된 것이 참담한 슬픔의 원죄였다.
마음의 고통이 육체의 병으로 드러나
어쩔 수 없어 그녀는 병을 크게 앓았고
세종은 아내를 위해 사찰을 찾아 기도도 하고
법회를 열어 스님들에게 기도를 부탁도 했다.
장인의 죽음을 막지 못한 미안함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세종은 그녀를 깊이 존경했다.
그녀가 들어오고 나갈 때면 항상 일어서서
공경의 예를 나타냈다고 역사가 전한다.
세종의 그런 마음은 그녀의 관향인 청송을
종6품이 다스리는 '현'에서
종4품이 다스리는 '군'으로 승격시켰다.
어머니를 위로하려는 아들들의 뜻도 받아들여
청송 심씨의 시조 심흥부의 묘가 보이는 곳에
'찬경루'를 지어 쉽게 찾아볼 수도 있게 했다.
사진 크게보기
찬경루 주변을 청송군이 소헌공원으로 개발했다.
후궁도 많이 있었지만 소헌왕후를 더욱 아껴
왕비가 된 후에도 6명의 아들을 더 낳아
조선왕비 중 가장 많은 자식을 둔 왕비가 됐다.
시할아버지 태조 이성계는 본부인이 6남2녀
시아버지 태종의 부인 원경왕후는 4남4녀
그녀는 모두 8남2녀로 10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그녀 이후의 왕비들은 자식이 없거나 아주 귀했다.
아버지를 죽이고 친정가족을 천민으로 만든
시아버지가 사건 후 4년 뒤에 죽었지만
집안을 풍비박산 내는 그의 칼날이었던
박은 같은 그의 신하들을 쫓아내지 않았다.
연산군은 어머니에게 사약을 들고 간
왕명을 단순시행한 이까지 모조리 죽였는데
없는 죄를 만들어 아버지를 죽인 이들을
그녀는 남편의 뜻을 따라 용서했던 것이다.
그녀는 좋은 어머니로 또 현명한 아내로 살다
한글이 반포되기 6개월 전인
1446년 3월에 52세로 이른 나이에 사망한다.
아버지는 사약 받고 죽어 천수를 알 수 없지만
할아버지는 73세를
외할아버지는 86세를 누렸고
어머니도 그녀 나이 50인 해에 사망했으니
아마 천수가 70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집안 식구들이 장수한 내력을 보면
그녀의 상대적으로 짧은 생애는
육체적 건강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자신이 바라지도 않던 왕비라는 영달이
부모와 가문에 화로 돌아왔으니
마음의 고통이 어떠했을 것인가.
천민이 된 친정이 다행히 노역은 면제되어
관노로써 힘든 일은 하지 않았다 해도
어머니가 복권되기까지 8년 동안
그녀의 마음고생은 불문가지이다.
아버지의 복권은 그 후로도 24년이 지나
아들 문종이 왕이 된 후에 이루어졌으니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한은
죽을 때까지 풀지 못하고 떠나야 했다.
1418년의 롤러코스터 스트레스만 없었다면
보다 긴 삶이었을 것이라 안타까워하는 것은
그녀 사후 가족간 벌어진 혼돈 때문이다.
그녀의 2남 수양대군이 왕이 되고자
왕위에 있는 장손을 죽이는 골육상잔이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7년 후에 일어났다.
이후 왕실과 나라가 혼돈에 빠지니
그녀가 환갑 때까지만 살았으면 하고
짧은 천수를 안타까워 하는 이유이다.
그녀가 죽은 뒤에 묘자리도 바뀌었는데
서울 서초구 내곡동 수릉(壽陵)에 묻혔으나
세조 맏아들 의경세자가 19살에 죽자
조정에서 수릉의 묘자리 탓을 했다.
이장을 준비하다 세조가 죽고 예종 1년에
'여흥부'를 '여주목'으로 승격시키고
여주로 이장하며 영릉(英陵)이라 고쳤다.
원문보기
http://news.joins.com/article/217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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