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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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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출신 독립운동가의 육아일기...양우조, 최선화 부부가 쓴 ‘제시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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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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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tv |
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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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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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출신 독립운동가의 육아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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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우조, 최선화 부부가 쓴 ‘제시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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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광복절이 얼마 안 남았다. 일제로부터 독립을 기념하는 날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이루기까지 무수한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중 독립운동가 양우조, 최선화 부부는 인천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양우조 선생은 광복후 인천 재마방직회사에서 근무했고, 최선화는 인천 출생이다. 이들 부부가 쓴 육아서적 ‘제시이야기’를 통해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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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시이야기를 쓴 양우조, 최선화부부와 그들의 딸 제시 | | 중일전쟁 속 중국에서 태어난 한국 아이, 제시 1919년 3·1운동 직후 일본 식민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1945년 8·15광복까지 상하이(1919)·항저우(杭州, 1932)·전장(鎭江, 1935)·창사(長沙, 1937)·광저우(廣州, 1938)·류저우(柳州, 1938)·치장(綦江, 1939)·충칭(重慶, 1940) 등지로 청사를 옮기며 광복운동을 전개했다. 임시정부가 중국대륙의 동쪽 전장에서 둥띵호를 거쳐 창사에 도착한 것은 중·일 전쟁이 발발한 1937년 12월. 이듬해 그곳에서 이탈리아 의사, 프랑스 수녀와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는 바로 독립운동가 양우조, 최선화 부부의 맏딸 제시. 집안의 돌림자가 ‘제’자인데 미국에서 수학한 아버지가 문득 떠올린 이름이 바로 영어 이름 제시였다. ‘아이가 자랐을 때 조국이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제 몫을 하기 바라는 마음과 아이가 여러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한국인으로서 활약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그렇게 지은 이름이었다. 출판사 우리나비가 주 상하이 대한민국 총영사관의 지원을 받아 출간한 ‘제시이야기’는 지난 1999년 출간돼 이듬해 KBS ‘한국의 유산’ 캠페인으로 제작된 ‘제시의 일기’를 그래픽노블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제시의 일기’는 제시가 태어난 1938년부터 광복 후 귀국하던 1946년까지 부부가 무려 8년간 썼던 일기의 모음이다. 역사적 고증 하에 박건웅 작가는 특유의 판화체 화풍과 한자 한자 수기한 대사 및 지문으로 ‘제시이야기’를 완성했다.
현재 한국에서 판매 중인 이 책은 지난해 12월, 주 상하이 대한민국 총영사관 주최로 열린 ‘한중우호의 밤’에 소개돼 호평을 얻었다. 한소원 우리나비 대표는 “박건웅 작가가 참석해 사인회를 열었는데, 한중 내외빈의 관심이 뜨거웠다”며 “상하이오리엔탈퍼블리싱그룹에서 중국 내 출판을 희망했는데 한한령이 고조되면서 불발됐다”고 아쉬워했다. “이 작품에 드러나듯 한중이 한일투쟁을 함께 하면서 양국 간 우정이 돈독해졌다는 점을 주목했고 무엇보다 보편적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고 전했다.
삶과 죽음 속 독립운동가의 간절한 염원과 고단한 일상 박건웅(朴健雄) 작가는 이번 작업을 위해 난생 처음 상하이를 찾아 윤봉길 의사가 일본전승기념일에 수통폭탄을 던졌던 홍커우공원과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이름 모를 독립운동가가 묻힌 추모공원을 둘러봤다. 그는 책의 말미에 “글로만 봤던 역사가 어느새 가슴으로 다가왔다”며 “평범함 속 용기가 이국만리 수십만 킬로를 걸으며 꺼져가던 독립운동의 불씨를 살렸다는 것이 이제껏 알지 못했던 독립 운동가들의 삶이었다”고 회상했다. “화창한 날에는 폭격이 있을까봐 늘 불안에 떨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 그러나 전쟁과 폭격 속에서 모든 것이 죽어가고 파괴되어도 아이는 성장하고 자란다는 사실. 하나의 생명을 지키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 작은 생명이 미래의 희망이요, 곧 대한민국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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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구와 양우조, 양우조선생은 맨 뒷줄 오른쪽 끝에 있다. | | 조흔정(曺欣貞) 上海真应文化传媒有限公司 한국부 대표는 ‘제시이야기’에 대해 “제시를 바라보는 부모의 애틋한 사랑, 독립운동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의연함, 한국 동포들 사이의 따뜻한 정뿐만 아니라 한중 정치인들의 우정과 한국인들에 대한 중국인들의 도움과 배려 등의 이야기가 세세히 기록돼있다”고 호평했다. 그렇다. <제시이야기>는 그저 추상적으로 알고 있던 임시정부의 활동과 독립운동가의 삶 그리고 그 어려운 시기에 아이를 낳아 기른 부모의 마음을 생생하게 전한다. 또 일본이라는 같은 적을 뒀던, 중국 정부의 도움과 피난길에서 ‘뜻밖의 선물’처럼 만난 아름다운 산수 그리고 한국인과 다른 중국인들의 기질도 엿볼 수 있다.
제시의 부모는 독립운동가 양우조, 최선화 부부 ‘제시이야기’의 원작인 ‘제시의 일기’를 쓴 독립운동가 양우조 최선화 부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1937년 백범 김구 선생의 주례로 결혼한 두 사람은 임시정부 내에서도 손꼽히는 지식인이었다. 평양에서 성장한 양우조(1897∼1964)는 19살에 상하이로 망명했다. 독립운동가 신규식 선생의 도움으로 20대에 미국 유학길에 오른 인재로 31살에 귀국했으나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헐벗은 동포들을 먹고 입히기 위해서는 우선 독립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1929년 상해로 다시 망명, 독립운동에 합류했다. 독립 쟁취에 필요한 사상집을 번역했는데 쑨원의 ‘삼민주의’도 그 중 하나다. 임시정부의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임시정부의 자금을 모으고, 유학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지원해 외국으로 보내는 업무를 수행했다. 또 민족진영 인사들과 함께 한국독립당 결성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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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한자리에 모였다. 아래 최선화, 오른쪽 제시, 왼쪽 손녀 김현주씨
이화여전 영문과 출신인 최선화는 모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양우조와 결혼하기 위해 1936년 상하이로 건너갔다. ‘제시이야기’에 따르면 동경제대를 졸업한 아버지와 함께 중국으로 연인 양우조를 만나러갔는데 만남 도중 일본 순경이 보이자 양우조가 갑자기 다락으로 숨었다. 최선화의 아버지는 “이런 애국 젊은이라면 내 딸을 맡겨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네”라며 딸만 남겨두고 홀로 귀국했다. 14살의 나이를 극복하고, 단신으로 중국에 망명한 최선화의 용기에 김구 선생이 이례적으로 주례를 섰고, 제시를 임신했을 때 두 부부에게 보양식을 사주기도 했다. ‘제시이야기’에는 ‘주변에 하나같이 어린애가 없는 집들이라 제시는 김구나 이시영 선생을 비롯한 여러분께 귀여움을 받으며 지낸다’는 내용도 있다. 양우조는 1964년, 최선화는 2004년 작고했다. 양우조는 유언에서 “고인의 미진한 애국애족 정신, 즉 전체 동포의 위복을 위하여 노력하는 동시에 개인의 일도 잊지 말아라”고 당부했다. 그는 “개인은 전체의 일분자요, 일분자가 모여 대체가 되는 법이다. 그러나 비겁은 취하지 말고, 절대 자존심을 굽히지 말아라”고 덧붙였다. 한편 두 부부는 인천과 인연이 있다. 미국 유학 당시 방직공학을 전공한 양우조는 일본이 패망하자 귀국해 1947년 인천 제마방직회사와 조선방직협회의 이사로 활동했다. 부인 최선화는 출생지가 바로 인천이다. 임시정부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을 결성한 그는 광복 이후 한국애국부인회의 서무부장에 선출됐다.
원고출처 인천시 중문잡지 ‘인천지창’ 제공
| | 원문보기 http://enews.incheon.go.kr/publish/php/articleview.php?idx=12356§ion=11&diaryDate=2017-08-10&chapter=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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