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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국보 제31호 경주첨성대
글쓴이 tntv 등록일 [201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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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의 모양과 구조는 천문대임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상원하방(上元下方)의 우아한 형상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元地方)설을 상징하고, 첨성대를 만든 365개 안팎의 돌은 1년의 일수를 나타낸다.

27단의 몸통은 선덕여왕이 27대 왕인 것과 관계가 있고, 꼭대기 우물 정(井)자 모양의 돌을 합치면 29단과 30단이 되는데 이는 음력 한 달의 날수와 일치한다. 가운데 창문을 기준으로 상단 12단과 하단 12단으로 나뉘는데 이는 각각 1년 12달, 합치면 24절기에 대응한다.

고대 문헌기록도 첨성대가 천문대의 역할을 했다고 전한다. ‘세종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첨성대 안을 통해 사람이 오르내리면서 천문을 관측했다는 기사가 있고, ‘서운관지’와 ‘문헌비고’에도 첨성대가 천문대의 역할을 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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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첨성대의 건립에 대하여는, 《삼국유사》「선덕왕 지기삼사(善德王 知幾三事)」조(條)에 「별기운시왕대연석축첨성대(別記云是王代鍊石築瞻星臺)」라고만 나와 있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선덕왕 재위 시(632~646)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첨성대는 별을 살피던 천문대였을까?.
선덕여왕이 자연신앙인 별을 향해 제를 지내던 재단이었을까?.
어쩌면 두 가지 기능을 모두 행하던 신성한 장소였음에는 틀림이 없다.

 

첨성대가 있는 곳은 김알지의 탄생지였던 계림으로 불리던 곳이고, 주변에서 네 구의 지진구가 출토되기도 했다.
지진구란 절이나 탑을 세울 때 지기를 다스려 조성된 건조물이 오래도록 보존되게 하기 위해 묻는 물건이다.

 


첨성대를 세운 선덕여왕 대를 기준으로 기록을 분석해보면, 천문기록의 양이 무려 4배나 늘었고, 특히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 오행성에 관한 기록도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천문관련 기록을 통해 첨성대에서 천문을 관측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고,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역시 첨성대를 통해 하늘을 바라봤을 가능성이 높다.
‘막대를 세워 그늘을 재고 해와 달을 관측한다. 대 위에 올라가 구름을 보며 별을 가지고 점을 친다’는 고려시대 시 한 수만 전할 뿐 첨성대에서 어떻게 천문을 관측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하지만 첨성대는 하늘을 알고자 했던 신라인의 지혜가 담긴 천문관측과 선덕여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건축물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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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백제에도 첨성대가 있었다

‘삼국사기’를 보면 일식이나 혜성 등 천문 현상에 대한 관찰 기록이 많이 나와 있다. 신라는 965년에 걸쳐 29회, 백제는 606년에 걸쳐 26회, 고구려는 445년에 걸쳐 11회의 일식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혜성에 관한 관측 기록도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를 통틀어 57회나 된다.


이처럼 삼국 시대에 천문 현상에 대한 관찰 기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세 나라에서 천문학자들이 천문 관측을 날마다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첨성대라는 천문대가 있었던 신라에서는 천문박사·사천박사 등 천문에 관한 일을 하는 관리가 있었다. 고구려에는 일자, 백제에는 일관부 등 천문 계통 관직이나 부서가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평양성에는 아홉 연못이 있는데, 못가에 첨성대가 있다”는 기록이 나오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평양부’에는 “평양성 남쪽 3리에 첨성대 옛터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일본 역사책인 ‘일본 서기’에는 “백제의 천문학자들이 675년에 일본에 와서 첨성대를 세워 주고 천체 관측을 가르쳐 주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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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는 한복치마를 입은 여성의 몸 형체를 이루고 있다. 출입구처럼 보이는 방형의 구멍은 사람의 몸 배꼽부분이며 여성의 몸체에서는 아기씨를 탄생시킬 수 있는 자궁이 위치하는 곳이다. 27단 위에 올려진 우물정자의 정자석이 하나가 아닌 두 개인 것은 아기씨에서 아기가 탄생한 후 출생했을 시 모유를 먹일 수 있는 산모의 가슴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첨성대가 있는 곳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왕비 알영이 탄생한 우물이 있던 곳이며 김알지왕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다. 첨성대가 있는 곳은 김씨왕가가 탄생한 신성한 장소인 곳이다. 이곳에서 조상에게 제를 지내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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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일본 천문기상학자 와다(和田)는 첨성대를 동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꼽았다. 그는 910년 ‘조선관측소 학술보고’에 ‘경주첨성대 설’을 내놓으며 목조건물과 혼천의 등을 첨성대 위에 설치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첨성대를 살펴보면 남쪽 창문 아래턱에 사다리를 걸어놓았을 것 같은 자리가 있다. 학자들은 여기에 사다리를 대고 첨성대 내부로 들어간 뒤에 위로 오르내렸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관측을 위해 매일 교대로 오르내리는 데 불편한 점이 많고, 그 위에 목조건물을 세운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만일 우물 정(井)자 모양의 꼭대기에 널판을 깔고 위에 혼천의 등을 설치했다면 관측자가 올라갈 계단이나 사다리를 따로 만들어야 하므로 상설 천문대로 사용했다는 의견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1930년대 사진...당시는 개방상태여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넝쿨처럼

매달려 있다.

그 당시 이렇게 함부로 드나들었어도 무너지지 않은 것은 그만치 정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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