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남관은 조선시대 수군의 본거지로 사용하였고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의 중심 건물로 삼
았던 곳이다.
임진왜란 뒤인 선조 32년(1599) 삼도통제사 이시언이 객사로 다시 지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선조 42년
(1609) 불타 버린 것을 숙종 42년(1716) 수사 이제면이 고쳐 짓고 이후 여러 차례 수리한 것이다.
규모는 앞면 15칸·옆면 5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인데, 그 구조와 형태가 간결하면
서도 화려하다. 건물에 벽이나 창호를 달지 않았으며, ‘진남관(鎭南館)’이라는 현판이 달린 양쪽
기둥 위에는 용머리를 조각하여 걸어 놓았다.
큰 기둥이 68개나 서 있는 긴 건물로 해인사장경판전(국보 제52호)과 함께 가장 큰 건축에 속한다. 안쪽
천장은재료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건물의 규모가 커서 외관이 웅대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단층 목조건물 중 하나이다
2001년 4월, 국보 제304호로 지정됐다.

마루현황
이곳에는 석인상이 있는데 전하는 이야기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드느라 한창일 때
왜구의 공격이 심하자 이를 막기 위해 7개의 석인을 만들어 사람처럼 세워 놓았는데, 이로써 적의 눈을
속이어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되었다 한다. 석인상은 이충무공의 일종의 의인전술이라 할 수 있다.
원래의 7기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 하나만 남아있다.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손은 팔짱을 꼈고 도포자락이
늘어져 있는 모습으로, 마치 지금도 적을 바라보는 듯 하였다.
또 석주화대가 있는데 이충무공 휘하 수군들이 야간 조련을 할 때 화대를 설치했던 유물로 당시에는
4개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두개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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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주화대 석주화대 현재 2기가 마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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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오른쪽에는 진남관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유물전시관이 있는데 내부에는 국보 제76호인
충무공의 서간첩과 난중일기 등과 다양한 무기 등도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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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남관 유물 전시관 이곳에는 관련 유물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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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는 이양 장군 방왜축제비를 비롯하여 각종 비석들이 줄지어 서 있다는데 철로 만든 비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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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에 비석 중 철비 비석들이 여러개 있는데 그중 철비가 눈에 들어온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