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 마셴(麻線)향 마셴촌에서 발견된 ‘지안고구려비’의 탁본. ① 탁본 판독 결과 새롭게 밝혀진 글씨인 ‘정묘년(丁卯年)’. 중국 문물국이 올해 1월 비석 관련 보고서를 낼 때 이 글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② 새롭게 밝혀진 글씨인 ‘강상태왕(岡上太王)’. 광개토대왕의 시호를 줄여 쓴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중국 문물국 보고서엔 나오지 않았다. [사진 한국서예금석문화연구소]비석은 올 1월 국내에 알려질 땐 ‘제2의 광개토대왕비’로 추정됐다. 내용 일부가 기존 광개토대왕비와 겹치기 때문이다. 광개토대왕비보다 앞서 세워졌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런 가운데 비석 자체의 위각(僞刻) 가능성도 제기됐다.
탁본이 확보됨으로써 비석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새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위각 가능성을 제기한 우리역사연구재단 책임연구원 문성재 박사와 한상봉 소장, 서지 전문가 김영복 옥션 단 대표가 탁본 판독에 참여했다. 이들은 중국 측이 당초 내놓은 140개 글자보다 30여 자를 더 알아냈다.
새로 찾은 글자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정묘년(丁卯年)’이다. 광개토대왕 재위기에는 정묘년이 없다. 그의 아들 장수왕 시기에는 두 번의 정묘년이 나온다. 427년과 487년이다. 둘 다 광개토대왕비가 세워진 414년 이후다. 비석의 건립 시기를 둘러싼 그간의 논란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비석 형태·서체 특이
문제는 중국 측이 비석 관련 보고서를 연초 홈페이지에 올릴 때 ‘정묘년’ ‘강상태왕’ 같은 글자를 빠뜨린 점이다. 탁본을 펼치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글자들이다.
문 박사는 “중국의 권위 있는 학자들이 6개월 동안 비문을 분석한 결과를 올 1월 발표하면서 왜 육안으로도 빤히 보이는 ‘정묘년’이나 ‘강상태왕’이란 글자를 찾아내지 못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한 소장은 비석의 형태와 서체상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삼국시대의 비석은 대부분 자연석을 사용했고 이번과 같은 규형비(圭形碑)는 없었다는 것이다. 또 김영복 대표는 탁본에 나타난 ‘선성(先聖)’ 같은 글자를 예로 들며 “이렇게 세련된 형태와 필획은 광개토대왕비보다 훨씬 후대의 서체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실물을 보면 그 자리에서 즉각 비석의 진위는 밝혀진다”고 했다.
문 박사도 “중국 측이 비석을 공개하고 양국 학자가 공동 연구하면 관련 의문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영대 기자
◆ 광개토대왕비와 새로 출토된 비석 비교
● 광개토대왕비
-건립 연도: 장수왕 재위기인 414년
-높이: 6m39㎝
-석재: 석회암
-글자 수: 1775자
-형태: 자연석을 그대로 활용
● 새로 출토된 비석-탁본을 통해 재구성
(비석이 가짜가 아닐 경우)
- 건립 추정 연도: 장수왕 재위기의 정묘년(丁卯年·427년 혹은 487년)
-높이: 1m73㎝
-석재: 화강암
- 글자 수: 중국 문물국 보고서에는 140자만 나와 있지만 탁본 판독 결과 중국과 다르게 30여 자 더 알아냄
- 형태: 깎아놓은 규수비(圭首碑). 중국에선 규형비(圭形碑)라고 부름
● 탁본 글자 판독 결과
- 새로 밝혀진 특이한 점: ‘정묘년’ ‘강상태왕’ 같은 글자가 육안으로도 확인됨.
이 비석의 건립 시기와 주체를 밝힐 수 있는 말들인데 중국 문물국 보고서에는 없었음
- 비석의 위각 가능성: 탁본을 본 전문가들은 비석의 형태와 글씨 모양 등의 문제점 지적
- 실물을 보는 즉시 진위 판단이 가능하다고 함








